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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 Point] 그녀의 목소리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3.0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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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 Point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결정적 한 수
 
 
과격한 엄마와 주의력 결핍 아들, 말더듬이 옆집 여자. 이 셋이 붉은 햇살 가득한 주방에서 춤을 춘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프랑스어 노래를 열심히 흥얼거리면서. 카메라는 한 곡이 온전히 플레이될 때까지 그들을 행복한 리듬 속에 내버려둔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본 영화 중 최고로 꼽는 <마미Mammy>의 한 장면이다. 구제불능의 애정 결핍 환자들이지만 그들의 춤, 아니 허우적대는 몸짓은 이상하게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 아이러니함이 나를 북받치게 했을까. 눈물이 막 났다. 배경 음악인 프랑스어 노래도 한몫했다. 노랫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해 준 친절한 한글 자막도. ‘사람은 변하지 않아. 다른 옷을 입을 뿐이지On ne change pas, On met juste las costumes d’autres et voila’. 우아하고 단단한 목소리에 눈물이 더 났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나를 힐끔거렸다. 

영화 <마미> 속 배경은 캐나다 퀘벡이다. 캐나다 속 리틀 프랑스Little France라 불리는 퀘벡은 주민의 80% 이상이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전통을 지키며 살아간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프랑스어를 쓰는 것은 그런 이유다. 감독인 자비에 돌란Xavier Dolan, 영화 속 프랑스어 노래 <On ne change pas>를 부른 셀린 디옹Celine Dion도 모두 퀘벡 사람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퀘벡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퀘벡주의사당이나 샤토 프롱트낙호텔, 쁘띠 샹플랭 거리 따위는 이 영화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나오니 찬 바람에 코끝이 시렸다.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영화 속 셀린 디옹의 노래를 찾아 한참 들었다. 그제서야 퀘벡이 조금씩 떠오른다. 몇 해 전 가을, 나는 멋진 중세풍 건물과 작은 숍이 늘어선 퀘벡 시티 구시가를 걷고 있었다. 단풍이 절정인 10월 초였지만 날씨도 우중충하고 꽤 쌀쌀했다. 루아얄 광장Place Royale의 오래된 프레스코 벽화Fresque des Quebecois 앞이 기억난다. 늙은 악사가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 그 애잔한 선율이 뭐였더라? 여행의 기억은 소리 없이 희미하기만 했다.

다시 들려오는 우아하고 단단한 목소리가 음소거된 기억을 채워 준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다른 옷을 입을 뿐이지On ne change pas, On met juste las costumes d’autres et voila’. 어쩌면 그때 퀘벡에서 들은 것이 이 노래였다 해도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셀린 디옹의 목소리는 기억 속 루아얄 광장에 가득 퍼지고, 어디선가 애정 결핍 환자 셋이 나타나 허우적대며 춤을 춘다. 잿빛 하늘도 한낮의 주방처럼 붉은 햇살로 가득 찬다.

퀘벡 여행의 결정적 한 수는 바로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셀린 디옹의 목소리다. 물론 나는 퀘벡에서 그녀와 함께 여행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셀린 디옹은 영어보다 프랑스어 앨범을 더 많이 냈다는데 왜 여태 몰랐을까. 음악 속에 새긴 기억은 그 어떤 사진보다 강력하다. 그때 이 노래를 알았더라면 퀘벡을 좀더 잘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퀘벡을 여행할 누군가가 미치도록 부럽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을 쓴 도선미 작가는 여행하고 글쓰는 사람. 가끔 영화와 음악으로 여행의 빈틈을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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