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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달인]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는 ‘떠나기’의 달인 이원근

  • Editor. 고서령
  • 입력 2016.03.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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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 없단다. 
그러면서 정동진 여행을 150번이나 다녀왔단다. 
심지어 매번 다르게 느껴져서 지겹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단다. 
그런 사람이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는 책을 썼다. 
혹시 주말여행의 달인? 그를 만나러 갔다
 
정선 함백산에서
.
 
"여행은 떠남 그 자체다"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주말여행의 달인을 만나러 찾아왔다. 달인이 맞나? 주말여행에 달인이라는 게 있나? 잘 모르겠지만 난 아닌 것 같다. 주말마다 어딜 가긴 했는데 놀러 간 게 아니라 일하러 간 거였다.
 
엥? 그럼 내가 책 제목에 속은 건가? 달 출판사 대표인 이병률 작가와 친한 사이인데, 같이 경북 예천을 여행하다가 ‘아무데나’라는 식당 간판을 봤다. 한참 걷다가 “형님, 보셨어요?” 했더니 “너도 봤니? 네 책 이름에 꼭 넣자”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말’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라는 제목이 됐다. 사실 내가 끝까지 밀었던 책 제목은 따로 있었는데.
 
뭐였나? ‘불편한 여행’이었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거의 다 시골 오지마을 소개다. 얼마나 사실적인가! 사실적이긴 한데 책 제목으론 진짜 별로인 거 같다. 음…, 결과적으론 전문가에게 맡기길 잘한 것 같다.
 
근데 주말마다 일하러 어딜 갔다니. 무슨 일을 했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승우여행사에서 국내 걷기 여행 가이드를 했다. 주말마다 손님들을 인솔하거나, 새로운 여행 코스를 발굴하러 답사를 다녔다. 1999년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여행 일을 한 지 18년째다. 지금은 아버지께 잠시 유학 다녀오겠다 말씀 드리고 여행박사 국내 여행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승우여행사? 어떤 곳인가. 국내 걷기 여행 전문 여행사다. 주요 일간지 여행 전문 기자들이 국내 여행을 취재할 때 가장 도움을 많이 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산악인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1944년생, 올해로 73세이신데 지금도 현직에 계신다. 혼자 서울에서 포항까지 당일 답사를 다녀오실 정도다.
 
아! 아버지를 찾아갔어야 했나? 솔직히 달인은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여행지를 다 가 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직업과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달인의 길로 접어든 건가? 달인 아니라니까~ 나 달인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나? 그냥 남들보다 전국 구석구석을 많이 다녔을 뿐이다.
 
어찌됐든 아버지 때문에 시작한 일을 지금껏 하는 걸 보면 여행을 많이 좋아하나 보다. 사실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 없이 그냥 다녔던 거 같다. 근데 손님들이 “이원근 가이드님은 여행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 같이 보여요”라는 말을 되게 많이 한다. 정작 스스로는 그런 생각 없었는데? 그렇다. 손님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여행을 좋아하나?’ 하고 한 번 생각해 보는 정도다.
 
책의 서문을 보니 다녀왔던 여행지를 반복하여 다녀왔다고 적혀 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갔던 곳은 어디인가? 정동진-동해 무릉계곡-정선 된장마을(지금은 사라졌다)-아우라지. 이게 무박 2일 여행 코스였다. 여기를 150번 넘게 갔다.
 
헉! 어쩌다 거기만 150번이나 갔나? 승우여행사에 입사하고 처음 3년 동안 아버지가 이 코스만 매주 2번씩 보내셨다. 나중엔 정동진에 사는 강아지도 나를 보고 꼬리를 치더라. 그곳의 동네 슈퍼마켓, 민박집 아주머니들과도 친해졌고, 정동진 지리가 손바닥 위에 있을 정도로 훤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시키신 이유가 있었나? 정확히 물어보진 않았다. 아마도 가이드 일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시려 그랬던 거 같다. 아니,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즐거움 아닌가? 똑같은 곳을 150번씩 가는데 어떻게 즐길 수 있나? 솔직히 처음엔 같은 곳을 가고 또 가는 게 지겨웠다. 근데 1년이 지나고 2년째 접어들었을 때쯤부터 똑같은 곳을 또 가도 그날의 날씨, 동행한 사람들, 나의 가이드 멘트 등에 따라 너무 다르게 느껴지더라. 그때 깨달은 건 내가 즐겨야 손님들도 즐거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정말로 가이드일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요즘도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나? 그렇다. 처음엔 새로운 여행 코스를 만들기 위해 답사를 가고, 그 다음엔 손님들을 모시고 가서 길을 만들고, 또 다른 손님들을 모시고 가고, 그런 식이다. 요즘엔 제주도를 제일 많이 간다. 
 
남원의 꽃길에서
 
책에 소개된 곳들이 대부분 지나가는 버스도 없고, 가게도 없고, 주변에 건물도 없는 오지마을이다. 오지마을 여행을 즐기는 달인만의 방법이 있나? 그런 거 없다. 그냥 그곳에 가는 길이 좋고, 그곳에 있는 게 좋다. 뭘 봐야겠다, 해야겠다는 목적을 갖고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걷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이상 쉽게 다녀오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불편한 여행’이라고 책 제목을 지으려 했던 거다. 

총 55곳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달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딘가? 걷기 여행지가 아닌데 생뚱맞게 소개된 절이 하나 있다. 경북 문경의 ‘봉암사’다. 2011년 5월10일 석가탄신일, 손님들을 모시고 이곳에 갔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 알았다. 나와 아버지의 여행은 어머니에게 외로움이었으리라는 것을. 주말마다 가이드로 여행을 떠나는 남편과 아들 때문에 항상 혼자이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날마저도 혼자셨다. 한동안 이 직업과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냥 이렇게 현실을 살고 있다. 그날 이후 봉암사를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내 마음 속에 가장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장소다.
 
그렇다면 걷기 여행지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강원도 삼척의 ‘지구렁이마을’이다. 아버지와 아리수길을 답사하다 우연히 찾은 마을인데, 광동댐 호숫가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언젠가 이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
 
해외여행은 안 가나? 회사 워크숍 같은 걸 빼면 작년에 처음으로 일본 삿포로에 다녀왔다. 그동안 해외는 거의 다녀 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 주말마다 가이드로 여행을 갔고, 휴가를 쓰더라도 1박 2일, 2박 3일 정도만 가능했으니.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여행하는 가장 큰 기쁨은 좋은 곳을 찾아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어서인데 해외는 그렇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외여행도 많이 가볼 생각이다. 특히 여자친구가 생기면 꼭 해외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푸하핫! 왜? 제주도에서 혼자 여행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합류한 적이 있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데려가서 보여 줬는데, 친구들이 “우와! 우와!” 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다. 여자친구랑 여행할 때는 나도 그런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국내는 너무 많이 다녀서 어디를 가도 그런 느낌을 못 가질 것 같다.
 
달인에게 여행이란? ‘떠남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집 앞마당 가는 것도, 동네 편의점 가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원근 달인
1976년생. 국내여행을 개척한 ‘승우여행사’ 대표의 아들로, 스물세살부터 지금까지 줄곧 국내 여행지를 개발하고 여행객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해 왔다. 지금은 ‘여행박사’의 국내 여행 팀장을 맡고 있다.  
 
●이원근 달인이 추천하는
봄·여름·가을·겨울 여행지
 
 
봄▶산수유 꽃으로 물드는 현천마을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은 매화, 그 다음이 산수유 꽃이다. 전라도의 대표적인 산수유 마을인 구례 상위마을과 하위마을은 산수유 꽃철에 차량 정체가 심하고 사람들이 북적댄다. 하지만 지리산 자락의 현천마을은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조용하다. 3월 말이면 산수유 꽃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 예쁘고, 작은 호숫가 주변에도 산수유가 피어나 그 반영이 굉장히 아름답다. 여유롭게 마을을 거닐면서 담장 사이에 자란 산수유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
 

여름▶숨겨진 계곡이 시원한 법수치리마을

구룡령을 안고 있는 응복산 자락의 법수치리마을은 오지마을로 유명하다. 널리 알려진 법수치리 계곡은 소문대로 명불허전. 그저 물이 맑고 사람 숨어 살기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법수치리 마을을 답사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광불동 계곡’은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마을을 잘 아는 사람들은 꼭 추천하는 계곡이다. 이끼 계곡과 숲을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다. 저녁에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해 회를 먹고, 다음날 아침 법수치리 마을로 가서 광불동 계곡 트레킹(약 2시간 30분 소요)을 하는 일정을 추천한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
 

가을▶우리나라 최고의 단풍계곡 연가리마을

연가리마을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최고의 단풍계곡이 있다. 그 어떤 단풍 명소도 이곳 단풍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길의 폭이 좁고,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다. 또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멋진 이끼와 폭포도 있다. 깊은 골이지만 스산하거나 습하지 않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다. 맑은 물에는 열목어도 살고 있다. 운이 좋으면 천연기념물인 수달, 족제비, 하늘다람쥐도 볼 수 있다. 가을에 찾아가면 단풍과 계곡을 정말 실컷 즐길 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고향식당’의 손두부와 ‘진동산채가’의 산채비빔밥이 맛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겨울▶순백의 눈을 밟는 기분 승부마을

승부마을에 간다면 환상선 눈꽃열차를 타는 것도 좋지만, 마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낙동강변을 따라 걷는 것을 추천한다. 낙동강 최상류의 맑은 물을 볼 수 있고 시원한 공기도 마실 수 있다. 승부마을은 도보 여행으로 즐겨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날이면 승부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홍재남씨 가족을 주축으로 그해 두 번째 수입을 낸다. 환상선 눈꽃열차에서 내리는 여행객들에게 1년간 수확한 농작물과 맛있는 음식을 판다.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가마솥에 끓인 시래깃국과 육개장. 육개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이 지역에서 나는 것이어서 말 그대로 믿고 먹을 수 있다. 두툼한 돼지고기를 꽂아 숯불에 구워 주는 꼬치의 맛은 도시에서 먹는 꼬치와 차원이 다르다.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이원근 달인과 그의 아버지가 지난 17년간 함께 다닌 국내 여행지들을 소개하는 책. 강원도 32곳, 경상도 10곳, 전라도 8곳, 충청도 3곳, 경기도 2곳 등 55곳의 걷기 좋은 시골마을들을 선별해 묶었다. 여행지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만을 소개하지 않고, 마을의 냄새와 맛과 소리와 동네 어르신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동네 사람들이 겪은 일 등을 덧붙였다.
벨라루나|1만4,500원
 
글 고서령 기자 사진제공 이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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