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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 Point] 참 좋은 시절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3.3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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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 Point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결정적 한 수

참 좋은 시절
 
타이베이 여행 중 우연찮게 찾아간 한 음식점은 1960년대 분위기를 재현해 놓은 독특한 파스타 집이었다. 주인장은 옛날 우편배달부 유니폼을 입고 주문을 받는다. 포스터, 턴테이블, 거울부터 찬합까지 당시 소품들도 하나하나 모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비슷한 테마의 박물관Taipei Story House이 있다. 그러고 보면 허우샤오시엔 감독도 영화 <쓰리 타임즈Three Times>에서 1960년대의 가오슝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연애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의 원어 제목처럼 그때가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시절最好的時光’이었던 걸까? 
 
타이완 가오슝 치진섬
 
 
타이베이를 여행한 후에는 남부 도시 가오슝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의외로 조금 시골 같은 분위기였다. 타이완 제2의 도시라기에 부산 같은 화려함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촌스러운 느낌이 났다. 나는 항구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서 족발 국수를 먹은 후, 배를 타고 5분이면 도착하는 작은 섬, 치진旗津으로 향했다. 이 섬은 지금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누군가 여길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심히 망설여질 것이다. 바다 색깔은 어둡고 눈에 띄는 예쁜 가게도 없어서 취재차 갔던 나는 낭패감을 느꼈다. 다행히 바닷가에 연인들이 많아서 로맥틱한 사진 한 컷은 건질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온갖 커플에 대고 쉴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배 나온 중년 부부, 셀카 찍느라 본인들이 찍히는 줄은 모르는 20대 연인들, 두 뼘 정도 사이를 두고 앉아 말없이 파도만 보는 풋풋한 10대 등등. 지금도 치진을 생각하면 뷰 파인더 속 연인들이 먼저 떠오른다. 풍경은 볼품없고 사람들은 촌스러웠지만 그들에게는 흑백 사진 같은 정겨움이 넘쳤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영화 <쓰리 타임즈>를 봤다. 이 영화는 연결 고리가 있는 세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감독의 실제 경험담이라는 첫 번째 이야기 ‘연애몽’이다. 1960년대 치진의 한 무허가 당구장에서 군입대를 앞둔 청년과 점수 매기는 아가씨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아가씨가 청년이 보낸 편지를 읽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편지를 읽는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오후의 텅빈 당구장엔 청년이 적어 준 노래 ‘Rain and Tears’가 흐른다. 60년대는 가슴 떨리는 연애 편지와 시적인 문장으로 가득한 올드팝의 시대였던 것이다. 
 
‘Rain and Tears’. 이 감미로운 올드 팝송은 딱 치진의 분위기 자체다. 달콤하고 촌스러운 그리고 행복한 연인들. 1960년대와 달리 지붕 없는 연락선 대신 튼튼한 페리가 다니고, 사람들은 연애편지보다 디지털 채팅에 익숙하지만 연애 감정만큼은 언제나 아날로그다. 시대를 막론하고 연애라는 건 필연적으로  촌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참 좋은 시절은 늘 그 복잡하고 촌스러운 아날로그 속에 있었다. 

에디터 김기남 기자
 
*글을 쓴 도선미 작가는 원고를 마친 후 문득 부치지 못한 연애 편지가 생각나 뒤져 보았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한 가지를 새롭게 추가했다. 전통 한지 위에 세로 쓰기한 이상한 편지라니… 역시 지나치게 아날로그 한 것도 문제가 되는 법이다.


▶영화 <쓰리 타임즈> 
    by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음악 <Rain and Tears> 
    by Aphrodite’s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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