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우연히 행복하기
[내 인생의 책] 우연히 행복하기
  • 트래비
  • 승인 2016.03.3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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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나는 3년간 준비했던 시험에서 낙방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잃어버렸던 참이었다. 
내 방 속에 나를 스스로 가둔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게 내 하루 일과였다. 부모님도 친구도 모두 보기 싫었다. 

등에 굳은살이 배길 만큼 많은 시간들이 흘렀다. 참으로 ‘지루한 나날들’이었다. ‘일시정지’된 것만 같은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차마 부모님 얼굴 볼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었기에 내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던 중, 책장 구석에 박혀 있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발견했다. 스웨덴에 사는 100세 노인 알란. 그는 양로원에서 열리는 자신의 100살 생일파티가 싫어 창문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그때부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100세 노인의 여행기가 시작된다. 알란의 여행기는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며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100세의 꼬부랑 노인이 창문을 뛰어넘었다는데, 내 방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조차 힘들었던 25살의 나는 우연히 읽은 알란의 여행기로 일상에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알란의 여행에는 ‘우연’이 넘쳐났다. 우연에 우연을 더해 알란이 움직이는 모든 곳에는 ‘대형사건’이 터졌다. 지극히 평범했던 ‘폭약 전문가’ 알란은 단지 술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시작한 여행에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친구를 맺기도 하고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과 저녁만찬을 같이하기도 한다. 

한 번은 북한의 국경을 넘어온 그와 그의 친구가 남한 여행이라는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일도 있었다. 그 모든 여정들 가운데 그는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이기도, 전쟁을 일으키기도, 세계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알란은 이 모든 엄청난 일들을 단순한 우연으로 만들어 냈다. 바로 그의 여행길에서 말이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방콕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래 내가 시험에서 떨어진 것은 그냥 그것뿐이야.’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깐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리자’고 말하는 100살 할아버지 알란.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25살은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내 방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방콕에서 시작한 배낭여행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과 친구를 맺거나,
푸틴 대통령과 보드카를 마시거나, 세계의 역사를 바꿀 만한 행동은 하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50일의 여정 중 나와 우연히 만난 이들의 역사, 그리고 나의 역사는 아주 우연히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50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조금 까매졌고, ‘ 인생샷’을
몇 장 건졌으며, 소중한 순간들을 조금 더 즐길 줄 아는 능글맞음도 덤으로 얻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우연히 행복해졌다.   

글 트래비스트 강신애  에디터 천소현 기자   

After▶ 28살이 된 지금. 알란의 여행기와 나의 여행기를 돌이켜 보면서, 나는 다시 ‘직장-지하철-집’이라는 쳇바퀴 속에 나를 가둬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든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좋아요’만 누르지 말자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저 | 임호경 역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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