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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달인] 은둔형 외톨이, 여행사진가 되다 ‘찍기’의 달인 김성래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6.04.05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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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큼은 도가 튼 은근한 고수들

은둔형 외톨이, 여행사진가 되다
‘찍기’의 달인 김성래
 
소심하고 폐쇄적인 외톨이 길치. 
그런 사람이 여행만 떠나면 적극적이고 
사교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했다. 
여행이 그에게 무슨 마법을 건 걸까. 

작년 트래비아카데미 마카오 원정대에 참여했었다. 첫 미팅 자리에서 본인 소개가 기억나는가? 안 난다. 여행을 가기 위해 매년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었다. 충격적이었다. 하하, 그랬나? 진짜 여행을 가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나? 그랬다. 3번 정도 그만둔 것 같다. 직업이 뭐길래? 게임기획자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몇 개의 온라인 게임 제작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직업의 특성상 경력을 인정받아서 새로 취직하기가 쉬운 편이긴 하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나는 사진을 찍는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계속 떠나게 되는 것 같다. ‘팔자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여행간다는 이야기를 잘 안 한다. 여행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도 많다. 숙소는 잠만 자니까 저렴한 곳을 고른다. 또 여행 때 쓰는 휴대폰도 따로 가지고 있다. 여행이 길다 보니 데이터로밍을 하면 한달에 40~50만원씩 나가는데, 현지 유심카드를 사용하면 20유로 정도만 지불해도 한 달 동안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원래 여행을 좋아했나? 아니다. 29살까지 서울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했지 여행은커녕, 다른 곳에 가질 않았다. 국내 여행도 한 번 안 했다는 건가? 그렇다. 내 방이 제일 좋고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을 좋아했다. 약간 은둔형 외톨이 같았달까. 나 혼자 오롯이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뭔가? 29살 때 첫 해외여행을 갔다. 5~6년차 직장인이 되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 밖이 처음 궁금해졌다. 가까운 곳을 가야겠는데 중국은 싫었고, 그래서 오사카 4박 5일 여행을 했다. 
 
그게 늦바람의 시작이었나? 글쎄, 처음부터 여행의 재미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일본에 갔는데 한국이랑 별 차이가 안 느껴지더라. 언어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한국과 자동차의 진행 방향이 다르다는 것 정도. 그러다가 두 번째 여행으로 도쿄를 갔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더라.
 
뭐가 달랐나?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사람들 캐릭터도 많이 다르더라. 처음엔 얼어 있었는데 차츰 적응이 되어 갔다. 더 알고 싶어서 일본어를 공부했고 그 이후 일본을 20차례나 다녀왔다. 유럽은 4번 정도. 한 번 가면 길게 있다가 온다. 작년 가을엔 45일 정도 있었다. 유럽도 처음엔 다 비슷해 보였지만 오래 보니까 다르더라. 파리에만 2달을 있었던 적도 있다. 
 
안개 자욱한 체코 프라하의 도심. 여행과 사진을 통해 긍정하는 법을 배웠다. 언제나 파란 하늘을 기대하지만 안개 자욱한 흐린 하늘 아래 프라하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배운 셈이다
동굴을 가득 채우는 무희의 구둣발 소리가 귓가에 증폭되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를 추고 있는 여인의 발소리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 느린 셔터 속도로 여인의 발걸음에 맞춰 사진기를 움직였고, 나의 사진기도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스위스 베르니나 특급열차가 지나는 란트바써 비아둑트Landwasser viaduct 수도교를 지나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장대비 속을 걷고, 질퍽거리는 산길을 올랐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사진이 아니었다면 내게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사진은 언제부터 찍었나? 고등학교 때 시작했다. 흔히들 그렇듯 아버지의 FM2 카메라로 시작했다. 취미라고 하기엔 처음 시작할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많은 장비를 보유하게 되었다. 사실 내 여행의 9할은 사진이 목적이다. 사진을 찍으면 보통 여행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예를 들면? 일단 시야가 달라진다. 도교 때가 그랬던 것 같다. 눈으로 봤던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다녀와서 사진을 리뷰하다 보면 내가 눈으로 놓친 것들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러면 후회가 되기도 하고 다시 가서 내 눈으로 그걸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자꾸 여행을 가게 되고, 사진을 찍게 된다. 사진을 배웠나? 독학했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좋아하는 촬영 스타일이 있나? 장노출 사진을 좋아한다.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다. 사진이 가진 거의 유일한 마법이 아닌가 싶다. 빛의 줄기가 생긴다. 단점은 장비가 많아진다는 것. ㅠㅠ 장비는 얼마나 가져가나? 카메라 바디 1개에 렌즈 5~6개 정도다. 삼각대는 큰 거, 작은 거 2개를 가져가고 필터를 여러 개 챙긴다. 노트북과 외부저장장치도 필요하다. 강박증이 좀 있는 것 같다. 어깨 무너지겠다. 대신 옷을 최소화한다. 입고 버릴 수 있는 옷을 가져가기도 하고. 
 
지난번에 마카오에서 보니까 새벽부터 밤까지 사진을 찍더라. 그건 거의 노동에 가깝던데. 맞다. 여행이 노동이 되기도 한다. 하루 일과가 해 뜨기 전에 일어나서 일출을 찍으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자정 넘어서까지 찍을 때도 있다. 하루에 5~6시간만 자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계속 사진을 찍는다. 체력적으로는 서울에서보다 더 힘들다. 작년에 스위스에서 하이킹을 했을 때는 하루에 20km씩 걸어 다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아레나Arenas. 한때 투우장이었던 곳을 개조해 지금은 쇼핑몰이 되었다. 아주 높지는 않지만 에스파냐 광장의 야경을 보기에 최고의 장소. 게다가 무료
 
결국 ‘여행=사진’이라는 건가? 여행의 목적은 사진이 맞다. 그리고 여행은 나를 바꿔 주기도 했다. 밖에 전혀 나가지 않던 내가 여행을 통해서 바뀔 수 있었다. 여행이 사람을 바꾼다? 동의하기 어려운데. 나는 진짜 소심한 사람이다. 인연을 쌓지도 않는다. 그런 내가 여행을 가면 현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다. 그러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지난 여행에서는 스페인에서 우연히 만난 폴란드 커플과 친구가 되었다. 마침 폴란드 일정이 있어서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났고 친구집에 묵으면서 여행했다. 여행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기차나 비행기를 타야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집밖으로 나가면서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것 같다.
 
왜 그런 변화가 생기는가? 사실 내가 심각한 길치다. 그렇다고 여행을 사전에 준비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시간이 넉넉하면 지도도 잘 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더 용감해지고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진다. 동행자가 없어야 가능하겠다. 혹시 외톨이 여행의 달인? 그럴 수도 있겠다. 가끔은 외롭다. 밤에 별 사진을 찍는다고 3~4시간씩 앉아 있으면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폐쇄적이었던 한 아이가 여행과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된 거네. 그렇다. 인터넷 카페다 동호회 등에 사진을 올려 보니까 예상 밖의 칭찬들이 올라오는 거다. 여전히 소극적인 성격이라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진 않지만 이게 매우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혼자서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좋아서 찍어 온 사진이지만 블로그도 만들고 글 연습도 하면서 ‘증폭’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원정대가 벌써 반년 전의 일이다. 그 후에 유럽도 다녀오고 일본도 다녀왔다. 앞으로의 계획은? 여행 중에 만난 친구들이 많으니 앞으로 그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될 것 같다. 남미도 가보고 싶긴 한데 카메라 장비 때문에 막연히 두려운 부분도 있다.
 
당분간은 다시 취직할 계획이 없나 보다. 혹시 본격적인 여행사진가의 길로? 지금은 깜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세상이 나를 알아봐 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 ㅋㅋ 빅 샷Big Shot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삶의 모토가 오늘 행복하자는 것이다. 은퇴 후에 걷기도 힘들어졌을 때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인생은 어차피 살아지는 것이더라. 아등바등해도 살고, 안 그래도 살고. 불안하지 않기 위해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내가 불안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 나는 여행을 통해 염세와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별이 쏟아지는 마터호른. 한여름의 알프스를 너무 얕본 탓일까 깊은 밤, 산바람은 매서웠지만 별이 쏟아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의문이 풀린 날이었다
 
눈 속에 자취를 감춰버린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Bled Lake와 섬. 고고하게 호수 가운데 있어야 할 작은 섬을 기대했기에 난감했지만, 선물같이 한 커플이 사진 속으로 들어왔다
 
에펠탑 아래로 드러나는 파리의 황금 들판. 파리에 머물던 두 달여의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이곳에 왔지만 내가 본 것은 매일 다른 풍경이었고 마침내 내가 그린 풍경을 마주했을 때 마음속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제공 김성래 

김성래 달인
1977년생. 이제 막 마흔 줄에 들어선 김성래씨는 말하자면 전직 게임기획자, 현직 백수 혹은 여행사진가다. 불안이 전염병처럼 퍼진 한국 사회에서 일시적일지라도 여행자로 사는일에는 꽤나 용기가 필요해 보였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그는 그저 그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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