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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아, 광년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4.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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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할 일행이 절실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여행의 추억은 분명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정신없던 이스탄불을 뒤로하고 한적한 카파도키아행 장거리 야간버스에 오르는 시간. 더더욱 누군가가 절실했다. 
 
급한 대로 ‘헌팅’을 작정하고 버스터미널 돌기를 두 차례. 역시 헛탕이다. 어쩐 일인지 이번 여정에서는 여행자가 눈에 띄질 않는다. 그만 포기해야 하나 싶던 바로 그때! 금발의 여성 여행자 한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여행자끼리는 알게 모르게 유대감이 있다. 내가 자연스럽게 일행을 만드는 노하우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그렇기는 하나, 배낭을 세워 두고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에는 너무 뜬금없는 분위기. 잠시 머뭇거리던 이 상황도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친구의 등장으로 급하게 종료되고 말았다. ‘안 가길 잘했다….’ 중얼거리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그러나 얼마 뒤, 버스 승차장에서 그들과 다시 마주쳤다. 역시 일행이 될 인연이었던 걸까! 이번에는 마음 놓고 수작(?)을 걸었다. “여기가 카파도키아행 버스 타는 곳 맞죠?”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이튿날 아침,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더욱 끈끈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영국에서 휴가를 온 커플이었는데, 최종 목적지가 마침 내가 가려던 괴레메Goreme였기에 교통편과 숙박을 함께 알아봤고 결국 같은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그렇게 외로움도 탈출하고 일이 술술 풀리나 싶었지만 주인장에게 동부지역 투어를 알아보던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2박 3일짜리 투어가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데, 방금 출발했다는 것이다. 짧은 일정으로 온 내게는 참여할 기회가 막 날아갔다는 의미였다. 지금이라도 원하면 자기 차로 투어 차량을 따라잡아 주겠다니 이건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랴부랴 다시 짐을 챙겨 나설 수밖에. 그나저나 어렵게 만든 나의 일행, 영국 커플은 어쩌란 말인가. 친해진 지 불과 1시간 만에 굿바이를 해야 했다. 아쉬운 나머지 셋이서 기념사진까지 남겼다. 
 
그렇게 3일간의 동부지역 투어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보니 앞마당이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 무리가 있어서 끼어들고 보니, 아직도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 ‘광년이가 어쩌구’ 하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 놓고 있었다. 도대체 광년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 데이투어에 함께했던 영국 커플 중 여자에게 지어 준 별명이라고. 엽기적인 행동과 좌중을 웃기는 말로 인기 폭발이었는데, 아쉽게도 오늘 아침 떠났단다. 계속 듣다 보니, 이럴 수가!!! 그 ‘광년이’는 바로 3일 전 헤어졌던 나의 일행이었다. 
 
“아, 광년아…!!”  
 
2003년, Cappadocia, Turkey
 
*글을 쓴 유호상은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다. 현재 여행 커뮤니티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
 
▶tip
낯선 여행지에서는 정보나 안전에 대해 서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자들끼리 유대감이 커진다. 특히 여행 인프라나 치안이 취약한 지역일수록 더 그렇다. 마음만 먹으면 이래저래 친해지기 쉽다는 얘기다. 일행은 생기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교통이나 숙박 등 이미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상대 여행자에게 물어보면서 접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써먹는 ‘수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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