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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Table] 길에서 만난 민폐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6.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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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길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자꾸만 
민폐 이야기로 빠진다.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길이란 건 종종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정리 <트래비> 취재부 

●걷기 좋은 길
 
손- 다녀온 길 중에 좋았던 길은?
양-첫 출장으로 규슈 올레길에 갔는데 세 코스를 이틀 동안 하루 종일 걷고… 아무튼 엄청 힘들었다. 
편- 걷는 것 별로 안 좋아하나?
양-좋아한다.
고- 힘들었다며?
양- 걷는 것 좋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하지만 좋았다. 그 길을 걸으면서 제주도 올레길도 걸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all- 다중이 같다ㅋㅋㅋ
고- 얼마 전 다녀온 크로아티아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해변의 리바Riva라는 거리였다. 그 위를 한가롭게 걷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더라. 또 두브로브니크 성곽 길이 정말 잘 보존되어 있어 놀랐다.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성곽 길 중 하나라고 하더라.
김- 난 2000년에 갔었는데 플리트비체 산책로 나무데크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all-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나ㅋㅋㅋ
차- 5월에 제주도에 가서 올레 7코스에 도전했다. 완주가 목표였는데 시작 지점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너무 어두워져서 전체 코스의 2/3 정도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빗속에서 3시간을 걸었다. 최고였다. 비 내리는 길이라니! 이상한 황홀경이었다.
정- 최근에 김포공항역부터 인천 박촌역까지 따라 걷는데 활주로 앞이라 비행기 구경도 하고 좋았다. 계양산 해 넘어가는 풍경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혼자서 15km 걸었다. 
천- 남들 안 가는 길을 잘 걷더라. 왜 걸었을까 싶은 길을 걷는 게 취미란다.
정- 마포에서 볼 일 보고 9호선 타러 한강다리 건널 때도 한 번은 양화대교, 한 번은 가양대교, 한 번은 성산대교로 건넜다.
편- 걸어서 다리 건너는 거 재밌다. 마포대교라든가.
김- 거기 자살 방지 문구들 덕에 중딩들이 성지처럼 다녀온다. 
all- 헐!!
편- 자살 방지하려고 만든 건데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면 자살 하기는 어렵겠다. 

●나만의 잘 걷는 노하우
 
고- 평소에 방향치라 길을 잘 못 찾는다. 그런데 스마트폰 지도 어플이 나온 뒤로 신세계가 열렸다. 이제는 주소만 있으면 되더라. 첫째, 와이파이를 활성화해서 현재 위치 정확도를 높인다. 둘째, 목적지의 주소를 입력한다. 셋째,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내가 있는 지점을 표시하는 화살표를 보고 목적지 방향을 찾는다. 넷째, 그 방향으로 쭉 걷다 보면 목적지 도착! 국내에서는 네이버 지도가 유용하고, 해외에서는 구글 맵스 정확도가 가장 뛰어난 듯.
예- 나는 심지어 어플 켜 놓고도 반대로 걷기 일쑤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냐ㅠㅠ
양- 그래서 동행자가 필요하다. 나랑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은 오래 걷지도, 즐겁게 걷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 중에 나랑 걷는 속도가 딱 맞는 친구가 있는데, 둘 다 걷기를 좋아해서 만날 때마다 4~5정거장은 기본으로 걷는다.
천- 맞다. 예전에 지리산 종주할 때 동행자가 산을 마구 뛰어다녀서 속도 맞추느라 죽는 줄 알았다. 먼저 가라고 했더니,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하더라. 슈퍼맨인 줄.
차- 산에 갈 때 나는 요즘 부쩍 신발의 중요성을 느낀다. 가볍고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이 좋더라. 발이 피로감을 느끼면 마음은 계속 걷고 싶어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천- 오래 걸을 때는 반드시 한 치수 큰 신발을 신어야 한다. 지난번 유럽에서 꽤 좋은 신발이 있는데 딱 맞는 치수로 한 켤레밖에 없어서 샀다가 지금도 고생 중. 버리긴 아깝고, 신자니 발 아프고ㅠㅠ
차- 나한테 달라.
천- 나 발 크기 225mm인데….
정- 발 아프면 만사가 귀찮은 법이다. ‘힘이 들면 잠깐 쉬어 가라’고 가수 이적이 말했지, 아마. 야외에 나갈 땐 최대한 몸도 마음도 가볍게 나가야 한다.
예- 1시간 이상 걸을 작정이라면 몸무게(?)를 가볍게 해야 한다. 욕심내서 괜히 카메라도 챙기고 음료수도 챙기고 책도 한 권 챙기고. 그러다 보면 결국 무거워서 쉽게 지친다. 걷는 데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손- 그래서 나는 오래 걷겠다 싶으면 에코백을 들고 나간다. 가볍기도 하고 용량도 넉넉해서 DSLR 카메라까지도 한 방에 해결 가능. 예전에 멋 부린다고 가죽가방 들고 도보 여행하다가 며칠 동안 한의원 들락거렸다ㅠㅠ 
차- 나는 원래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걸 싫어하다보니 걸을 때 사진은 핸드폰으로 해결한다. 이래서 사진 실력이 안 느는 건가. 
김- 그러지 말고 돈을 좀 써 봐라. 가볍고도 유용한 장비들이 많다. 체중 분배는 물론이고 들개를 만났을 때 호신용 무기가 되는 스틱부터 초경량 초미니 테이블, 깔판까지. 가벼울수록 비싸니 문제지.
고- 들개라니ㅋㅋㅋ
 
●걷다가 마주친 민폐
 
편- 얼마 전에 뉴스에서 북촌 주민들이 관광객들 때문에 불편을 많이 겪는다고 들었다.
김- 내가 북촌에 산다면 아마 다 쫓아내고 싶을 거다. ‘정숙 관광’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편- 근데 그런 길 걷다 보면 문득 사람 사는 집에 쑥 들어가 보고 싶지 않나?
양- 맞다. 오키나와 갔을 때 코스투어 하고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가이드가 현지인들의 생활을 볼 수 있는 조용한 마을을 데려 갔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야말로 진짜 시골동네였다. 아기자기한 초가집들이 줄줄이 있는데, 들어가 보고 싶었다.
찬- 제주도는 지금도 아줌마들이 제일 먼저 아침에 하는 일이 대문 여는 일이다. 밤에 제일 늦게 하는 일이 대문 닫는 일이고. 기웃기웃 해도 싫어하진 않던데…
편- 옛날 일이지, 그것도.
천- 그런가… 나는 사실 우리 집이 기웃기웃 할 만한 집이라면 사람들한테 그냥 구경하라고 할 것 같다. 기껏해야 마당에서 기웃거리는 건데. 글쎄, 그게 반복되면 민폐긴 하겠지.
손- 주제를 ‘민폐’로 바꿔서 진행하는 게 어떠냐ㅋㅋㅋ
고- 그럼 등산복 얘기를 해볼까? 요즘 방송에서 꽤 크게 등산복 자제 관련 보도를 할 정도다.
김- 노르웨이 국립박물관 갔더니 뭉크의 ‘절규’ 앞에서 등산복 입은 단체가 뭉크를 점령해 창피했다.
고- 문제는 등산복을 입는다는 사실 자체보다 등산복을 입고 진상 행동을 일삼는 경우가 문제다.
편- 레스토랑이나 크루즈 같은 드레스 코드가 있는 장소에도 무조건 등산복만 입고 다니는 게 문제가 되는 듯하다.
고- 각 장소에 적절하게 입어 주는 게 매너인 듯. 에티켓의 문제다.
편- 길을 걸을 때도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자. 서대문에 있는 안산 자락길*은 휠체어나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데크를 깔고 잘 조성해 놓아서 노약자나 아이들도 많이 이용한다. 뛰지 말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있는데 길을 걷다 보면 조깅 코스로 생각하고 쌩쌩 달리는 양반들이 꼭 있다. 뛰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뛰지 말라면 뛰지 말자.
손- 그런데 진짜 주제가 길인 거냐 민폐인 거냐?
all-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ㅋㅋㅋ

●돌아돌아 다시 걷는 성곽 길
 
고- 우리나라에도 좋은 성곽 길이 있는데 외국 관광객들이 그저 청계천 소라탑 앞에서만 모여서 사진 찍는 게 안타깝다. 여행이란 게 원래 남의 시덥지 않은 일상을 경험하는 거니까 우리도 성곽 길 걷기투어를 적극적으로 밀어 보는 게 어떨까.
김- 해외에서도 시덥지 않은 건 시덥잖더라.
천- 때로는 시덥지 않은 길이 매력적일 때가 있다. 강릉 바우길 같은 경우에 막 열심히 올라가서 보면 나오는 게 결국은 도로다. 허무하긴 하지만 그래도 걷는 동안 좋았다. 옛날 옛적에 과거 보러 가거나 보부상들이 다녔던 길을 걸으면서 ‘옛날 사람들이 진짜 이 길을 다 걸어 다녔단 말이야?’ 이런 생각도 하고.
고- 유배길도 그런 맥락 아닌가.
김- 그게 삼남길*이다. 최근에 누가 그 길 완주하려고 도전했는데 들개가 나타났다더라. 개조심해야 한다. 삼남길 걷고 싶다 생각했는데 들개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그 대신 해파랑길*을 걷고 싶다. 770km로 국내 최장이란다. 하루에 70km씩 걸으면 될 듯.
천- 헐 하루에 70km를 어떻게 걸어.
김- 아, 그건 자전거 기준이다. 걷기론 하루에 10km. 아 뭐야 그럼 77일이나 걸린다는 건가? 아니다, 하루에 걷겠다.
고- 그러면 다음에 도전기 한 번 써 보는 건 어떠냐. 하루 70km 걷기.
손- 내 친구는 대학생 때 국토대장정 하러 갔다가 남자친구 생겨 왔는데.
김- 아무튼 기승전 ‘연애’다.
천- 민폐야, 그런 애들.

●걷고 싶은 길을 걷는 의미
 
천- 걷기 좋은 길, 걷는 노하우, 길에서의 에티켓도 이야기했고. 그럼 이제 걷고 싶은 길?
양- 제주 올레길 한 번씩은 다 걸어 보고 싶다.
고- 나는 서울 성곽 길!
차- 걷고 싶은 ‘질감’도 중요하다. 큰 도로 주변보다는 골목길이 좋고, 아스팔트나 데크가 깔린 길보다는 흙길이 좋다. 자박자박 밟히는 흙의 질감을 정말 사랑한다. 아쉬운 것은 요즘 만들어지는 길이 흙길이 아니라 데크 등 작업을 해 놓은 길이라는 것. 
천- 혹시 다들 길을 완주한다는 데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나? 나는 이전에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나 안나푸르나Annapurna* 트레킹을 할 때도 ‘다 걸었다’는 표시로 도장 찍어서 자랑하는 데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제주도 올레길도 다 걸어 보면 재밌겠다고 몇 번 생각은 했지만, 몇 번 걸어 보고 나서는 그냥 가고 싶은 오름을 정해서 올라가게 되더라. 
고- 길 완주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은근히 꽤 많다. 나도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천- 그냥 걷고 싶은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로 좋은 게 아닐까.  

Travie Dictionary 
*안산 자락길 | 서대문에 위치한 7km 구간의 원점 회귀 코스. 정상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삼남길 |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삼남지방을 관통하는 길. 경기도를 거쳐 충청, 전라, 경상도로 이어진다. 정도전과 정약용이 나주와 강진으로 유배를 가면서 걸었던 길로 알려져 있다.
*해파랑길 |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길. 동해안을 따라 770km의 노선을 잇는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로 가는 순례길.
*안나푸르나Annapurna | 네팔 안나푸르나 산군의 최고봉으로 그 높이가 8,091m에 달한다. 일반인들도 베이스캠프까지는 트레킹할 수 있다.
 
ROUND TABLE
천소현 기자,차민경 기자,김선주 기자,손고은 기자,고서령 기자,김기남 편집장,양이슬 기자,정현우 인턴기자,김예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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