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Gate of Silence 침묵의 문 앞에서
이스라엘-Gate of Silence 침묵의 문 앞에서
  • 천소현
  • 승인 2016.06.07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srael 
Gate of Silence 침묵의 문 앞에서
예루살렘에는 평화의 열쇠가 있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공존의 방법을 찾는 일. 
그것은 지금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숙제다. 
 

예루살렘 여행자의 특권
째깍째깍 3,000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예루살렘은 ‘모색’ 중이다. 유대인 쿼터, 크리스천 쿼터, 아르메니안 쿼터, 무슬림 쿼터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이곳에서 모든 구역을 ‘눈치 없이’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자유는 오로지 여행자만의 면책특권이다. 
 

시온 게이트 쪽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모영면교회Dormition Church의 시계탑.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이곳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고 믿는다
 
 
어느 유대인 가이드와의 동행

그는 친절하지 않았다. 그건 괜찮았다. 문제는 그가 공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가 죽고 부활했다는 곳, 그래서 기독교 최고의 성지인 성분묘 교회에서 그는 내내 한심하다는 눈으로 순례객들을 바라봤다. 구약성경만을 인정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저 한 명의 선지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관없다. 그는 유대교도니까. 하지만 그의 냉소는 들키기 쉬운 반감이었고, 은근한 폭력이었다. 인정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왜 모를까.
 
성분묘교회 내부의 순례자들
 

예루살렘에서 모자를 쓴다는 일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복색이 신분이다. 검은 모자와 검은 양복을 입은 랍비들, 키파를 쓴 아이들, 초콜릿색 망토에 허리띠를 두른 수도사들, 타끼야Taqiyah를 쓴 아랍 남자들과 차도르를 쓴 여인들을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복장만으로 그들의 아침식단에 무엇이 오르고, 몇 시에 기도를 하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니, 정보는 전지전능하다. 하지만 때로는 ‘안다는 생각’이 벽이 되고, 오해가 된다. 어떤 모자를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내일 저녁 테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믿음의 땅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게 된다. 그것은 진실일까 오해일까.
 

무슬림들의 기도 모자 ‘타끼야’
 

닫힌 문, 열린 문

예루살렘에서 문은 그냥 문이 아니다. 어떤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그 공동체에 허락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백년 동안 게토Ghetto, 유대인 격리촌 안에서만 허락되었던 사람들. 유대인들은 다시 이 땅에 모여 거대한 게토를 형성하고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담을 둘러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장벽이 허물어지고 문이 열리는 날까지 얼마나 오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굳게 닫혀 있는 황금문이 열리는 날이 그날일까. 시온문에 남아 있는 무수한 총탄의 흔적은 문을 여는 방법이 총 끝에 있지 않음을 알려 준다.
 

시온 게이트

야파 게이트

성분묘교회
 
랍비 아빠의 기도 

<탈무드>의 지혜를 듣고 싶었지만 랍비들은 항상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경계하고 멀어진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 랍비들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빠, 책임감 있는 남편이다. 보호가 본능이 되어 버린 사람들. 기도 시간이 되자 비행기의 좁은 통로를 막아선 채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랍비와 그를 향하던 승객들의 야릇한 긴장이 허물어졌던 순간도, 아이가 울고 그가 다시 아빠로 돌아갔을 때였다. 
 

성모영면교회
통곡의 벽을 향해 기도하는 랍비
벤예후다 거리의  부녀
 

모든 곳에 내려진 신의 가호

가이드는 ‘통곡의 벽은 하느님과의 직통전화’라고 했었다. 이 벽에 대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리라는 믿음은 서신으로도 통하는 모양이다. 나는 소망을 들어준다는 모든 것에 희망을 걸어 본다. 수 천년된 나무와 바위, 불상과 신상, 도시마다 꼭 있는 동전 분수대에도 마음을 기댄다. 정성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 오랜 시간을 견뎌온 모든 것에 신의 가호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게 벤예후다 시장의 계단은 통곡의 벽만큼이나 의미가 있었다. 가만히 앉아 견뎌 온 시간들. 닳고 닳은 그 계단에 시선을 멈추고 정성을 더한 누군가에게도 신의 가호가 있기를. 
 

통곡의 벽

벤예후다 거리의 계단
 
 
안식일이 필요한 이유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이었다. 정통유대인들은 모두 통곡의 벽으로 모여들었다. 토라를 암송하고 노래를 부르며 안식일을 경축하기 위해서다. 하느님이 그러했듯 모든 ‘창조 행위’를 멈추고 경건하게 보낸다는 25시간(안식일을 확실히 지키기 위해 1시간을 더했다고 한다). 음식도 조리하지 않고, 불도 사용할 수 없기에 철저한 ‘무위無爲’가 강요된 그 시간에 그들은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고 신앙을 점검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안식일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이 필요하다. 하루쯤은 어떤 노동도, 어떤 (창조라는 이름의) 민폐도 더하지 않고 살아 보는 날. 오로지 ‘나는 잘 살고 있는가’만을 생각해 보는 날. 
 

안식일날 저녁의 통곡의 벽과 그 너머 황금돔(바위사원)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유운상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www.goisrael.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중구 무교로 16, 5층 (주)여행신문
  • 대표전화 : 02-757-8980
  • 팩스 : 02-757-89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홍렬
  • 법인명 : (주)여행신문
  • 제호 : 트래비 매거진
  • 등록번호 : 서울 라 00311(2009-10-13)
  • 발행일 : 2005-05-30
  • 발행인 : 한정훈
  • 편집인 : 김기남
  • 트래비 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트래비 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tktt@traveltime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