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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집’ 구하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6.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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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방? 남겨 둔 방!
 
베를린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한 것은 지난해 12월 파리에 이어 두 번째다. 파리에서는 퐁피두센터 바로 앞의 아파트를 빌렸다. 아파트 문을 나서면 왼편으로 손이 닿을 듯 가까운 퐁피두센터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내가 파리에 왔음을 실감했다. 퐁피두 아파트 전에는 1박에 170유로 정도 하는 호텔에서 지냈는데 좁고, 욕조는 없었다. 반면 퐁피두 아파트에는 욕조, 세탁기, 넓은 주방이 있었다. 높은 사면의 벽에 둘러싸인 아파트 중정은 한껏 이국적이었고, 집주인 덕분에 파리 최고의 에스프레소도 맛보았다.
 
주인 말대로 침대 매트리스와 침구류는 최고였다. 난 여기 묵기 전까지만 해도 에어비앤비는 집에서 남는 방을 대충 내주는 건지 알았다. 그런데 에어비앤비 아파트가 특급호텔보다 좋을 수 있다는 걸 파리에서 알았다. 가격은 제법 나갔지만 처음 이용해 본 에어비앤비는 만족스러웠다. 슈퍼에서 장을 봐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점은 호텔과 비교했을 때 큰 장점이었다. 

베를린에서도 파리 아파트처럼 좋은 집을 구할 거라 기대했다. 얼핏 보았을 때 베를린에만 300개 이상의 에어비앤비가 있었다. 수많은 집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는 일은 뜻밖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 좋은 위치에 더 좋은 집이 있지 않을까 해서 손가락이 저리도록 마우스를 클릭했다.
 
하지만 나는 적잖은 시간을 들여 제일 먼저 고른 두 집을 예약하는 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골랐지만 내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하루 이틀 예약을 미루는 사이 다른 사람이 날름 예약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한 집에서 4~5박 이상을 할 예정이었는데 4~5박 동안의 날짜 사이에 하루만 손님이 있어도 예약이 안 되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하루 이틀 숙박할 게 아니라면 가능한 일찍 예약하는 게 좋다. 좋은 집은 당연히 빨리 나간다. 두 집을 그렇게 놓친 후에는 집을 고르는 게 아주 힘들었다. 자꾸 처음 두 집과 비교하게 되면서 아무리 많은 집을 살펴봐도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 찾은 첫 번째 집이 흔히 ‘베를린의 멀티 컬처 지역’으로 불리는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의 아파트였다.
 
내가 묵었던 집의 창밖 풍경. 낡았지만 따뜻하게 기억에 남은 한 장면이다
아침이면 창문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거실은 복도를 한편에 두고 독립적인 방처럼 되어 있다
침대 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문 앞 좌측의 복도를 따라 거실과 욕실이 있다

베를린에 우리 집이 생겼다
 
베를린의 첫 번째 집은 오반 거리Urbanstraße 124번지, 6층 건물의 3층(우리 식으로 하면 4층)에 있었다. 베를린에서 공동주택은 아파트가 아니라 플랏Flat이라 불린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니 채 20분이 안 걸렸다.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일단 공사 중인 건물의 입구처럼 아파트 현관이 허름했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에어비앤비의 표현대로 하자면 호스트, 즉 집주인 대신 나타난 호스트 여자 친구에게 집 열쇠를 받았다. 

집은 예약 때 본 사진과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간 후 집안을 살펴보니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보이는 곳은 깨끗한데 침대 머리 쪽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는 잡동사니가 숨어 있고, 먼지가 자욱했다. 냉장고와 주방에는 유통기한 지난 음식이 방치되어 있었다. 호스트가 집에서 밥을 자주 안 해 먹는 거야 상관할 바 아니나 게스트가 오기 전 냉장고를 정리해야 하는 건 기본적인 예의 아닌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던 호스트의 여자 친구는, “집에 있는 음식은 다 먹어도 돼요” 하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집은 넓은데 내 짐을 놓을 공간이 없었다. 이를테면 옷장은 있는데 내 옷 넣을 공간은 없었다. 모든 수납공간을 호스트 짐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 짐은 침실 바닥의 캐리어 옆에 풀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자 왠지 불만이 사라졌다. 불편한 점이 별로 없었다. 내가 베를린에 산다면 이런 집에 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점점 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버스 정거장은 바로 집 앞에, 지하철은 걸어서 6분 거리에, 슈퍼마켓은 아파트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을 터키 사람들의 거주지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옛날 얘기였다. 지금 크로이츠베르크는 베를린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미테보다 더 ‘핫한’ 지역으로 꼽힌다.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자체가 넓기에 여전히 터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구역도 있고, 주말이면 터키 마켓도 열리지만 터키 커뮤니티는 크로이츠베르크의 일부일 뿐이다.

첫날 짐을 대충 풀고 돌아본 동네 분위기가 내가 막연히 상상해 온 베를린과 딱 들어맞고, 호스트 여자 친구 라헬Rahel이 체크인 할 때 콕 찍어 알려준 동네 카페 ‘카페바Kaffee Bar’가 썩 마음에 든 점도 ‘우리 집’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한 이유다. 우리 집, 그렇다. 베를린에 우리 집이 생긴 것 같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방이 아니라 집을 빌렸더니 한국의 친구와 통화를 하다 나도 모르게 금방 ‘우리 집’, ‘우리 동네’를 운운한다. 관광객이 묵는 호텔이 아닌 현지인이 사는 집에서 지내며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대를 펼쳐 옷가지를 널고, 한국에서 가져간 누룽지를 끓여 먹으니 순간이나마 여기 사는 것 같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빌리니 이런 점이 제일 좋다.  

집 구석구석에 먼지가 좀 쌓여 있고,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식품이 방치돼 있던 것도 3일째가 되니 왠지 마음이 바뀌어 그러려니 하고 만다. 호텔 아닌 집에서 느껴지는 사람 사는 공기가 좋았던 것 같다. 여기서 5일을 지내고 떠날 시간이 되자 무척 아쉬웠다. 다시 여기 올 수 있을까 하는 괜한 감상에도 빠졌다. 어떤 점에선 한국의 우리 집보다 더 편하게 지냈다. 이 집은 베를린이 내게 건넨 선물 같다. 오랜 시간 잊지 못할 선물이다.
 
AU 스튜디오에서는 긴 테이블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소파는 외형만으론 근사했지만 실용적이진 않았다

에어비앤비가 만들어 준 독일 친구
베를린에서 열흘간의 여행을 계획할 때 한 지역에만 있고 싶진 않았다.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동네 분위기를 느껴 보고 싶었다. 크로이츠베르크에 이어 어디에 묵을까 했을 때 프렌츠라우어베르크 지역을 추천한 건 일본 친구 유미였다. 

“한때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난한 예술가들이 사는 동네가 아냐. 베를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야.” 

유미 말대로 프렌츠라우어베르크Prenzlauer Berg 지역은 크로이츠베르크 지역보다 한결 세련되고 정갈하다. 얼핏 블록에 따라선 부자동네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심하게 파괴되었던 지역이기에 상대적으로 새 건물이 많아 깔끔하게 느껴졌다. 

크로이츠베르크에서는 편안한 아파트에서 지냈으니 이번에는 좀 분위기를 바꿔 보고 싶었다. 그러다 내가 고른 곳은 갤러리, 또는 작업실 스타일의 스튜디오였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베를린의 두 번째 숙소는 ‘스튜디오’라고 했지만 작은 침실이 따로 있는 1층 아파트다. 크로이츠베르크의 집이 베를린 남쪽에 있었다면 두 번째 집은 베를린 북쪽에 있다. 이사는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트램을 타고 30분 만에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Hiddenseer Straße 1번지, AU 스튜디오 갤러리. 그런데 이번에도 호스트인 프랭크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얼핏 AU 스튜디오 갤러리의 스타일은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기다란 테이블이 마음에 들었고, 길가에 면한 1층이란 점도 좋았다. 이 앞을 지나다 보면 누구나 자연스레 들여다볼 만한 호기심을 주는 공간이다. 누군가 이곳을 들여다보면 나는 이렇게 말할 요량이었다.

“안녕하세요. 들어와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영락없는 갤러리의 호스트 노릇을 해볼 심산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베를린 이곳저곳을 구경 다니느라 호스트 노릇은 못해 봤지만 스튜디오가 위치한 동네는 좋았다. 슈퍼도 약국도 가깝고 유미가 추천해 준 동독의 가정집 스타일인 ‘본 찌마Wohn Zimmer’ 카페에도 걸어 갈 수 있다. 인근의 코르비츠 플랏츠Kollwitzplatz에서는 매주 목, 토요일 유기농 마켓이 열려 점심을 먹거나 물건 사기에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욕실이었다. 주방을 지나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욕조가 없다는 건 진작 알았지만 샤워 공간이 너무 비좁다. 스타일만 찾다가 기본을 놓치고,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코다친 셈이다. 동그랗게 샤워 커튼을 두르고 샤워부스를 어설프게 만들어 놓았는데 좁아도 너무 좁다. 샤워를 하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샤워 커튼의 차가운 기운이 몸에 척척 감겨 소름이 짝짝 끼친다. 샤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그 안에선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들지 않는다. 더욱 어이없는 건 욕실에 붙어 있는 화장실 변기가 정면의 유리창을 통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사실이다. 창문 밖은 이 아파트의 현관 복도 같은 곳이니 사람들이 빈번히 드나든다.
 
1박에 100유로 정도 하는 숙소가 밖에서 들여다보이는 화장실이 웬말이람. 설상가상 다음 날 아침 7시, 나는 엄청난 기계 소음에 잠에서 깨어야 했다. 공사판 소음 같은 진동이 천장을 울렸다. 소음에서 탈출하듯 집을 나가 저녁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침실과 주방의    불이 안 들어왔다. 아, 그 순간에는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집으로 옮길 수 없을까 궁리했지만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야 한다니 그건 그리 간단치 않았다. 더욱이 ‘화장실이 밖에서 들여다보여요’ 하는 식의 컴플레인이 과연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도 없었다. 

욕실만 보면 100유로 정도의 요금이 적절한지 의문이지만 요금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호스트의 재량이고, 무엇보다 집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에어비앤비는 관광지보다 ‘로컬’을 찾는 ‘Being Local’이란 새로운 여행 방식에 부합하지만 한편 위험할 수도 있다. 1년에 연인과, 부모님과, 아이들과 한 번 가는 해외여행에서 숙고 끝에 고른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큰 문제 아닌가! 베를린에서 주어진 시간이 넉넉지 않은 나로선 집을 바꾸는 데 시간을 낭비하곤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호스트에게는 이런 사정을 전했다. 

나의 컴플레인에 늦은 시간이지만 호스트의 친구, 페트라가 찾아왔다. 스튜디오 부근에 산다고 했다. 다행히 전기가 나간 이유는 간단했다. 두꺼비집이 내려갔다. 나로선 스튜디오 전체가 나간 게 아니라 일부만 전기가 나갔기에 두꺼비집 문제라곤 생각지 못했다. 나는 페트라를 이렇게 알게 되었고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 묵었고, 문제가 있었기에 만날 수 있는 친구가 페트라였다. 나는 그녀에게 욕실과 스튜디오, 페트라의 친구인 호스트 프랭크를 맘껏 흉보며 그녀와 친해졌다. 뭐 그녀도 내 말을 다 이해하는 기색이다. 여기가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날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셨다. 그녀가 데려간 어느 카페에서는 카푸치노를 1.5유로에 마실 수 있었다. 세상에 카푸치노가 1.5유로라니!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한, 베를린이 아닌 독일, 아니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도 카페에서 1.5유로짜리 카푸치노를 마실 수는 없다. 페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커피 값이 너무 올랐어. 전에는 1유로면 마실 수 있었는데 지금은 50센트나 올랐다고!”
그녀는 아이들과 ‘창의적 워크숍’이란 일을 하고 있었다. 취미로 트럼펫을 부는데 주말에는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한다고 했다. 이번 주말에도 두 번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하루 전인 금요일에 나는 베를린을 떠나야 했다. 스튜디오에서 체크아웃을 하며 한국에서 가져간 결명자차를 테이블에 두고 나왔다. 페트라를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페트라에게 메일이 왔다. 

“깜짝 놀랐어. 프랭크스튜디오 호스트와 나는 그게 뭔지 한참 생각했다니까. 프랭크는 초콜릿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마 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맞았어!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베를린에서 나는 자주 감기에 걸려. 결명자차가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했지? 그러니까 나한테 꼭 필요한 차야. 고마워. 다음에 베를린에 오면 그때는 우리 집에서 묵어.”

다음에 다시 베를린에 간다면 에어비앤비가 만들어 준 인연 덕분에 나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스튜디오 앞 벤치는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좋은 자리였다
내가 묵은 집의 호스트인 프랭크의 작품들
침실은 작고 아담했다. 창문이 바깥 쪽 아닌 복도 쪽으로 나 있는 탓에 방이 좀 어두웠다
 
특급호텔보다 좋았던 파리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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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어비앤비 www.airbn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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