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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ir 모든 영화는 여행이다] 비키니, 때로는 폭력적인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6.06.29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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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너무 작은 건 아닌지, 엉덩이가 너무 쳐진 건 아닌지 고민하는 계절이다. 옷이 작고 짧고 간소해지니 그만큼 노출되는 신체가 많아지는 탓이다. 긴장감 있는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젊은 여자 연예인들이 TV를 점령했다. 어딘가에서는 예쁜 엉덩이를 뽐내는 콘테스트도 열렸단다. 그럴 필요도 없는데 괜히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힙업이니 베이글이니 각종 수식어에 시달리고 있다. 응당 여자이기 때문에 가져야 한다고 사회가 알려준 것들이다. <언더 더 스킨>에서 로라를 감시하는 남성들처럼, 사면에서 관찰하고 기준에 적합한지 평가를 내린다. 누구의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결국 평가 미달이 되면 놀림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화려하지 않은 사람을 놀리는 일에 몰두하는 개그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사회 안에서 소비되는 것은 사실 충격적인 일이다. 비약해 보자면 여자라면 여성성을 임무로 수행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 로라는 매혹적이다. 사실 속은 새까맣고 밋밋한 외계인임에도 거죽은 더없이 매력적이어서 홀리는 족족 남자들이 넘어온다. 간단한 몇 마디일 뿐이어도 약간의 여지를 보여 주기만 하면 됐다. 남자들은 맨몸으로 뛰어드는 곳이 늪인 줄, 함정인 줄 모르고 눈 앞의 여체만을 쫓는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미련한 남정네 여럿이 본능에 취해  죽는다는 얘기. 

외계인들이 양식으로 삼는 남자의 육체를 얻기 위해 로라가 미끼로 쓰인다. 제때 양식을 가져오는지, 쓰고 있는 여성의 탈이 괜찮은지 남자 외계인들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 인간 남자들은 속았고 로라는 이용당한다. 인간 남자건 외계인 남자건 로라에게 폭력적인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로라는 양쪽 모두에게 그저 도구일 뿐이다. 이토록 선명하게 파괴적인 구조라니, 비키니를 고르던 어느 순간, 이 영화가 생각나지 뭔가.

자고로 치고 받는 폭력보다 구조적 폭력이 더욱 교묘한 법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 스스로 자기검열에 나서게 되니 말이다. ‘나’의 만족을 위한다는 말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자위나 다름없다. 맨 얼굴에 쏟아질 시선이 지레 무서워 외출시엔 화장이 필수가 됐고, 겨드랑이 털은 터부시된 지 오래다. 

노골적으로 임무를 부여받는 계절이다. 그래서 더욱 반항심이 깊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필요 이상의 재단은 폭력이다.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
드라마, SF | 108분 
출연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
       제레미 맥윌리암스Jeremy McWilliams
 
 
*글을 쓴 차민경 기자는 <트래비>와 그 자매지인 <여행신문>의 기자다. 사실 몸의 단점을 잘 커버해 주는 예쁜 비키니가 갖고 싶었다. 찾다찾다 결국 포기한 시점에 분노와 함께 <언더 더 스킨>을 떠올렸다. 누구의 시선 때문에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했는지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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