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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피어난 불꽃 요르단Jordan③Petra페트라, Wadi Rum와디 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7.12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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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a 페트라
상상 이상의 신비 

요르단의 국보 1호인 페트라는 여행의 백미다. 물론 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트랜스포머>가 이곳에서 촬영됐다는 점도 명성에 한몫했을 테지만, 페트라의 가치는 그런 유명세로 저울질 할 차원은 아니다.
 
시크를 통과하면 그리스 건축양식의 알카즈네Alhkazneh가 자태를 드러낸다
베두인들은 페트라에서 여행자들에게 낙타나 당나귀를 태워 주고 생계를 이어 간다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는 돌산을 조각해서 만든 거대한 도시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붉은 도시’라고도 부르며, 나바트 문명의 중심지로 로마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크게 번성했다. 나바트인들에 대한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기원전 6~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지역으로부터 이주한 유목민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들은 토착민이었던 에돔인들과 함께 페트라를 건설했고, 교역의 중심지로 키웠다. 기원전 2세기에는 페트라를 수도로 한 나바트 왕국을 세웠고 그리스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아 200년간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0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정복당하고, 이후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페트라의 암석 건물들은 교회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7세기경 지진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1812년 스위스 탐험가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에 의해 다시 존재를 드러냈다.

왕의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남북으로 뻗은 왕의 대로King’s Highway는 고대 무역상들의 교역로로 지금은 시리아와 이집트를 연결한다. 이스라엘 국경이 가까워지다 보니 세 번의 검문을 거쳐 와디무사에 도착했다. 페트라에는 숙소가 없어서 여행자 대부분은 약 2km 떨어진 와디무사 지역에 여장을 푼다.

바위산 깊이 숨어 있는 페트라로 가기 위해서는 하늘을 가리는 거석을 가로지르는 좁은 협곡 ‘시크’를 2km쯤 걸어야 했다. 페트라 입성에 이보다 더 우아한 전주는 없을 것이다. 높게는 100m가 넘는 바위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웅장하고 기묘하며 온통 붉다. 암석 아래로는 물을 끌어들였던 수로의 흔적도 보인다.

시크가 끝날 무렵, 갑자기 바위 사이로 시야가 환해지면서 경이로운 건축물이 고개를 내민다. 카즈네Al Khazneh다. 베두어로 보물창고를 뜻하는 카즈네는 기원전 1세기 그리스 건축양식의 건물이다. 높이 43m, 너비 30m의 2층 구조로 전면에 6개의 고린도식 석주가 서 있고, 맨 윗부분에 항아리 형태의 조각이 있는데 그 속에 나바트인들이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전설로 인해 보물창고라 불린다. 실제로 카즈네는 왕의 무덤과 신전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카즈네의 감동은 시작에 불과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수많은 돌무더기와 광대한 유적들이 펼쳐졌다. 원형극장은 7,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40층의 계단식 건축물로 나바트인들이 종교의식을 치르고 로마인들은 공연장으로 사용했다. 맞은편에는 바위에 구멍을 뚫어 만든 무덤들이 있는데 1985년 페트라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베두인들이 살았었다. 좀 더 들어가면 거대한 왕족의 무덤도 있다. 

카즈네를 비롯한 건축물들의 내부는 의외로 단순하다. 돌을 파내 직사각형의 방을 만들고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어 암석 고유의 색과 무늬가 드러난다. 페트라 유적은 지금까지 확인된 곳만 4,000여 곳, 아직도 상당수가 발굴 중이고 발굴된 것들 중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개방된 것은 전체의 4분의 1. 그 유적만 얼핏 후회 없이 본다 해도 2~3일은 걸린다니, 1,000년 넘게 잠자던 고대도시와의 몇 시간 대면이 아쉬운 여행자의 발길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왕족들의 무덤. 내부는 텅 비어 있다
페트라에는 바위산을 깎아 만든 건축물들이 산재한다
무덤으로 사용됐다는 동굴들은 이후 베두인들이 거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살지 않는다
 
 
 

●Wadi Rum 와디 럼
붉은 사막에서의 하룻밤

페트라에서 남쪽으로 60km, 와디 럼으로 간다. 와디 럼은 사막이다. 3억년 세월을 견뎌 온 그 사막은 그러나, 붉은 모래 위로 바위산들이 솟아 있고 낮은 풀들이 자라는,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사막이다. 자연보호구역인 동시에 유네스코복합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와디’는 비가 오면 강을 이루고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마른 계곡이 되는 땅이고, ‘럼’은 높다는 뜻이에요. 와디 럼은 원래 바다였어요. 오랜 시간 침식과 융기를 거쳐 산과 협곡, 사막이 생겨난 거죠. 이곳은 정말 특별해요. 왜인지 알아요? 이런 바위산과 어우러진 붉은 사막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두바이에서도 볼 수 없죠.” 압둘라 가이드의 말처럼 와디 럼이 시작되는 순간 고개를 내저었다. 이토록 진기하니 오죽하면 영화 <마션>에서 지구 아닌 화성이 되었을까. 

오늘의 잠자리는 이 붉은 사막 위 여행자 캠프다. 베두인이 안내해 준 텐트 안에는 기대조차 안 했건만 침대며 화장실이며 심지어 욕실용품까지 비치돼 있었다. 안도감과 왠지 모를 씁쓸함이 교차했다. 

오후 5시, 일몰을 보기 위해 개조한 사륜구동 지프 뒷좌석에 올랐다. 와디 럼을 찾는 여행자들은 낙타와 지프를 이용해 사막투어를 하거나 트레킹이나 암벽 등반을 즐긴다. 희롱하듯 천천히 혹은 빠르게 지프를 운전하는 베두인의 박자에 따라 사막이 오르내리고, 갑자기 멈춘 붉은 파도 같은 모래언덕 위에는 바람이 윙윙대며 노래를 불렀다. 시리아와 레바논, 팔레스타인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거쳐 갔다는 카라반들이 남긴 흔적들은 곳곳에 암벽화처럼 남아있었다. 

지프가 협곡 사이 텐트촌 앞에 다다랐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샤이(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터번을 두른 베두인은 화톳불 위 시커멓게 그을린 주전자를 기울여 익숙한 몸짓으로 샤이 한잔을 건네준다. 달고 향긋한 차가 여행자의 외로움을 뜨겁게 쓰다듬어 주었다. 일몰이 시작될 무렵 바위산에 올랐다. 주위가 점차 금빛으로 물들고 저기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침묵했고 샤이의 빛깔을 머금은 황혼은 광대한 사막을 타고 여행자의 말초신경까지 흘러들었다. 

텐트로 돌아온 때는 모래가 식고 길게 드리운 그림자도 사라질 무렵이었다. 시원한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동안 저녁식사 준비를 끝낸 주인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양고기, 닭고기, 감자, 당근, 쌀 등을 넣고 모래 속에서 숯의 열기로 두 시간을 쪄낸 전통음식 자릅Zarb은 먹음직스러운 만큼 맛도 좋았다.

모기떼로 쉬이 잠들지 못했다. 텐트 밖으로 나와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동서남북 번갈아 고개를 젖히고 서 있었다. 몇 시인지 모를, 알 필요도 없는 사막의 밤이 깊어 가고 멀리서 늑대 울음이 들려왔다.
 
새벽녘 텐트 밖 하늘 위엔 별이 가득했다
붉은 모래와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와디 럼의 풍광
와디 럼에는 과거 카라반들이 남겨놓은 암벽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여행자들을 위한 사막 위의 휴게소
뜨겁고 달콤한 샤이 한잔은 와디 럼의 낭만을 북돋운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com, 요르단관광청 www.mota.gov.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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