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건축 거장 미마르 시난 Mimar Sinan
터키의 건축 거장 미마르 시난 Mimar Sinan
  • 트래비
  • 승인 2016.07.1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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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Turkey
터키의 건축 거장
미마르 시난Mimar Sinan 
 

●미마르 시난의 숭고를 경험하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어떤 유적이나 자연에 감동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랜드캐니언이나 사막의 석양 같은 것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데, 그것을 미학적으로 ‘숭고Sublime’라고 한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의 과학적 의미나 원리를 몰라도 정서적으로 압도되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모스크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
 
터키에서 보게 되는 모스크Camii, 자미들의 첫 느낌이 내게는 바로 그 숭고의 미다. 모스크의 거대한 돔과 우뚝 솟은 미나렛Minaret, 첨탑들, 그리고 아득히 높은 돔 천장 위의 모자이크, 아랍 문자로 쓰인 캘리그래피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해도 원초적으로 감동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소소한 것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완성되었는지 알게 되는 일은 실로 마법에 가깝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감탄할 만한 무엇으로 바꿔 놓고, 또 무조건적으로 압도되던 것을 내용이 풍부한 감동 스토리로 바꿔 주기 때문이다. 모스크와 시난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나는 숭고의 화려한 바탕 위에 착실히 채워진 휴머니즘을 보게 되었다. 터키에 가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소득이었다.

터키문화관광부에서 기획한 ‘미마르 시난 건축 기행’은 한 천재 건축가가 100년 가까이 살면서 만들었던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그 발전 과정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터키의 자랑인 미마르 시난이 오스만 제국의 번성기에 3대의 술탄들(슐레이만 1세, 셀림 2세, 무라트 3세)에게서 절대 신임을 받았던 건축가였고,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기에 가능한 여행이기도 하다. 미마르는 터키어로 건축가라는 말인데, 그 일반 명사가 시난의 이름이 되었을 정도다. 그의 묘비 안내문대로 시난이 정말로 107여 개의 모스크를 포함해 477여 개의 건축물을 지었을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난은 건축가(예술가)이자 엔지니어(기술자)였고,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해낼 수 있는 PMProject Manager이었으며, 물류 조달Logistic Management에도 뛰어났다고 하니, 굳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싶다. 

모스크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모두가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크고 넓은 장소’라고 한다면 시난은 거대한 돔으로 큰 공간을 확보하고, 큰 돔을 받치는 기둥들을 최소화함으로써 그것을 성취해내기 위해 일생 동안 노력한 건축가였다. 시난은 돔(=하늘=신) 아래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시야를 방해하는 지지대를 없애고 기둥을 바깥쪽으로 배치해 이맘Imam, 이슬람 성직자이 코란을 암송하며 메카를 향해 다 같이 절을 할 때 아무도 커다란 기둥 뒤에 가려지지 않게 했다. 그가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설계한 건축물의 가공할 만한 숫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지대 없는 완벽한 돔을 상상했고 마침내 그것을 완성해냈다는 것,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늘 아래 평등하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낮의 셀리미예
톱카프 궁정의 튤립정원
하기야 소피아 캘리그라피
 
미마르 시난Koca Mimar Sinan, 1489 ~ 1588년
미마르 시난은 ‘건축가 시난’이라는 뜻이다. 일생 동안 107개의 모스크를 포함해 477개의 건축물을 설계했다고 전해지는 오스만 제국의 전설적인 건축 거장이다. 
 
블루 모스크
 
돌마바흐체 궁전 
 
 
●이스탄불과 미마르 시난

“태어나서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을 꼽는다면 터키!”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꼽는다면 터키!”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 터라, 마음 속으로 계속 동경해 왔던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이스탄불 구시가의 술탄 아흐멧Sultan Ahmet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이스탄불 역사 지구이다. 하기야 소피아532~537년 건축, 블루 모스크, 톱카프 궁전, 지하수로 예레바탄이 역사지구 안에 있다. 그 외에도 모자이크 박물관, 로마 경기장 터 히포드롬, 카리예 박물관 등이 있고, 신시가 쪽에는 아름다움과 규모에 숨이 막힐 지경인 돌마바흐체 궁전이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스탄불에 있는 미마르 시난의 작품만 수백여 개에 달하는데 그중에서도 술탄 슐레이만 대제Sultan Suleyman The Magnificent를 위한 슐레마니예 모스크, 뤼스템파샤 모스크, 파티흐 모스크, 미마르 시난이 사랑했다고 전해지는 공주 미흐리마를 위해 건축한 미흐리마 술탄 모스크Mihrimah Sultan Mosque가 유명하다. 이번 여행은 ‘미마르 시난 건축 기행’이었기에 끝도 없이 수많은 모스크들을 둘러보았다. 모스크 하나하나가 다 멋지고 웅장하고 아름다웠지만 에디르네를 가보고 알았다. 사람도 풍경도 소박한 도시 에디르네Edirne와 숭고한 모스크 셀리미예의 감동이 이 여행의 화룡점정이라는 것을. 
 
셀리미예 모스크 내부의 돔 모자이크
밤의 셀리미예
 

●미마르 시난의 걸작품 

미마르 시난의 작품 중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셀리미예 모스크Selimiye Mosque는 이스탄불에서 240km 떨어진 도시 에디르네에 있다. 오스만 제국의 옛 수도였던 에디르네는 불가리아, 그리스와 국경을 면하고 있어 1453년 메흐멧 2세가 콘스탄티노플現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대상들이 낙타를 쉬게 하고 하룻밤 머물렀던 대형 숙소인 케르반사라이Kervan Saray, ‘카라이사라반’이라고도 한다가 운영됐던 요지였다.

이스탄불에서 에디르네까지 교통체증으로 5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에디르네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술탄 베야지드 2세의 쿨리에Social Complex, 뤼스템파샤 케르반사라이, 유대 회당인 그랜드 시너고그, 오일 레슬링 등의 볼거리와 이 지역 명물인 간 튀김 요리를 비롯한 먹거리는 에디르네 관광 코스에서 셀리미예라는 명품에 덤으로 얹어진 사은품이지만, 놓치면 아쉬운 것들이기도 하다. 

셀리미예 모스크는 시난이 80세 중반이던 1574년 완성되었고, 셀림 2세가 갑자기 승하하는 바람에 1575년에 문을 열었다. 셀리미예는 이스탄불 하기야 소피아 성당의 돔에 필적할만한 규모다. 직경이 31m가 넘고, 높이도 43m로 거대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졌다. 에디르네의 어디에서든 눈에 띌 수 있도록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특히 밤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셀리미예는 황홀함 그 자체다.

셀리미예는 8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는데 이 기둥들은 돔의 테두리 라인보다 더 밖으로 빠져 있어 내부를 훨씬 더 넓게 확장하는 효과를 낸다. 이 건축 기법은 시난 이전에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지진으로 인해 수차례 개보수를 했던 하기야 소피아와 비교하면 셀리미예는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이 굳건하게 440년을 견뎌 온 초 안전 건축물이다.
 

하기야 소피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비잔틴 건축의 동방 정교회 대성당.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돔 형식과 화려한 모자이크가 특징이다.
 
블루 모스크
정식 명칭은 ‘술탄 아흐멧 모스크’. 모스크 안에 덮인 푸른 도자기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로 더 유명하다.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 아흐멧 1세 시기에 7년 동안 건설되었다.
 
톱카프 궁전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15세기부터 19세기 약 400년 동안 거주한 궁전. 톱카프는 ‘대포 문’이란 뜻으로 예전에 해협에 대포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이는 위치에 있어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한다. 
 
술탄의 명상 장소인 아이렛릭의 창문. 창밖으로 공동묘지가 보인다
술탄의 롯지. 두 개의 창문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아이렛릭이다

●술탄의 기도를 위하여

모든 모스크에는 술탄을 위한 기도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비밀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되어 있는 술탄의 롯지Hunkar Mahfili라고 하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셀리미예에는 술탄의 롯지 뒤쪽에 작은 방이 또 하나 있다. 아이렛릭Ahiretlik이라는 방이다. 아이렛릭은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아주 작은 방인데 무릎을 꿇었을 때 밖을 볼 수 있도록 낮은 창이 나 있다. 술탄은 이곳에서 혼자 창밖을 바라보며 고독의 시간이라고 불릴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창문으로 무엇이 보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정답은 공동묘지다. 

절대 권력자 술탄은 이토록 작고 허름한 공간에 앉아 공동묘지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시 오스만 제국에는 술탄으로 즉위하면 동생들을 처형하는 형제 살육이 관습화되어 있었다. 이런 살인의 전통은 1603년 아흐멧 2세 때 폐지되었고 이후부터는 술탄이 되지 못한 왕자들은 죽는 대신에 죽을 때까지 유폐되거나 유배를 당하였다. 

셀리미예 모스크는 셀림 2세가 죽은 다음 해인 1575년에 개관되었으므로 아이렛릭에서 명상을 했던 것은 그의 아들 무라트 3세Murat III부터였을 것이다. 무라트 3세 또한 형제를 처형했을 것이고, 100여 명이 넘는 자녀를 두었으니 그들도 서로 죽이고 죽게 될 것이었다. 술탄은 이 방에서 죽은 후의 세계를 생각하며 그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했다고 한다. 어떤 장식도, 꾸밈도 없이 작고 허름한 이 방을 보면, 하늘 아래 오직 한 사람이라는 권력자 술탄의 인간적 고뇌를 느끼게 된다.
 
이스탄불 슐레마니예 내부 돔
시난 묘비

●시난의 콤파스 모양 무덤

시난은 이스탄불 슐레마니예 모스크의 한 모퉁이, 콤파스 모양의 작은 묘역에 묻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모양을 치즈케이크*로 묘사했지만, 건축가인 시난에게는 날씬하고 긴 삼각형 모양이라면 역시 콤파스다. 시난 스스로 준비해 두었다고 하니, 말하자면 ‘콤파스 모양을 한 시난의 겸허한 마음’이라고 할 만한 묘지이다.

셀리미예 모스크를 하기야 소피아와 비교하며 시난이 하기야 소피아를 능가하는 건물을 지으려 했다고 말하는 안내서들이 있는데, 이스탄불에서 만난 바키프 대학 건축학과 교수는 “시난은 하기야 소피아에 경쟁심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쟁의식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시난이 활동하던 당시 하기야 소피아는 이미 1,000년도 넘게 이어져 온 건물이었고, 이후 건축물들의 전범이 되어 수많은 유사품들이 나왔으니 말이다. 완벽하게 성스러운 건축물로 여겨지며 ‘기술이 아니라 신의 능력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신이 기꺼이 스스로 고르신 집에 거하신다’고 찬양되던 하기야 소피아를 건축가로서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리라.

셀리미예의 건축이 1568년에 시작되어 1574년에 마무리되었으니 그때 시난의 나이는 78~84세였다. 더 웅장하고 더 위엄 있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는 어깨에 힘을 빼고 인간에게로 눈을 돌린 천재 노장 건축가의 모습이 셀리미예에서 느껴졌다. 완벽한 돔에 대한 열망으로 평생 작업해 온 대천재가 그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완성해낸 대성전은 숭고한 동시에 사랑이 넘치는 느낌이다. 술탄을 위해 그가 죽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아이렛릭을 마련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소박한 묘지를 준비한 건축가에게 경쟁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시난은 말년에 자신의 건축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견고하지 않은 땅에 기초를 놓아서는 안 되며, 기초를 놓기 시작했으면 건물에 결함이 없도록 살펴야 하고 단단한 기반에 닿게 해야 합니다. 또한 벽기둥, 기둥, 버팀대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위에 돔과 반쪽 돔을 덮어야 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실수 없이 아치들을 결합해야 합니다. 중요한 일에 서둘러서는 안 되며 ‘인내가 승리를 안겨 준다’는 말대로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의 도움으로 신이 그의 건물에 불멸을 안겨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난의 말대로 신은 그의 작품들에 불멸을 선물해 주었다. 오스만 제국은 사라졌고, 시난은  콤파스 모양의 작은 무덤에 묻혀 있지만, 사람들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가 지은 모스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편소설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에서 치즈케이크 조각 모양의 한 기찻길 옆 작은 땅 위에 신혼집을 얻어 사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뤘다. 
 
*글을 쓴 안지민씨는 현재 철강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좋은 소비자(컨수머)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생산자(크리에이터)가 될 날도 꿈꾸고 있다.

글 안지민 사진 Photographer 한상무(noon pictures)
에디터 천소현 취재협조 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터키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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