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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원정대⑧플리트비체에서는 침묵을 권합니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7.20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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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itvice Lakes National Park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플리트비체에서는 침묵을 권합니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폭포를 감상하는 사람들. ‘Large Waterfall’이라는 이름의 이 폭포의 높이는 78m다
 
 
‘소중한 순간에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기억하시나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바로 그 소중한 순간을 위한 곳이었어요.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 지칠 만큼 호수와 숲과 폭포가 번갈아가면서 저를 감동시켰어요. 압도적이었다가, 앙증맞았다가, 잔잔한가 싶으면 계단으로 흘러넘칠 만큼 물살이 세지기도 하고. 이제 좀 이곳을 알겠다 싶으면 또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나곤 했죠. 총 16개 층의 크고 작은 호수와 그 호수들 사이를 잇는 90여 개의 폭포로 구성된 장소이니, 어쩌면 그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한국의 명이나물처럼 생긴 ‘곰의 마늘Bear’s garlic’이란 풀을 알게 된 것도 재미있었어요.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곰들이 가장 먼저 이걸 찾아 먹고 기운을 차린다지요. 킁킁 맡아 보니 정말 마늘 냄새가 났어요. 저 역시 지천으로 돋아 있는 이 생명력 넘치는 풀을 쓱쓱 문질러 냄새를 맡으며 기운을 냈습니다. 사실 만성 운동 부족인 제가 가장 긴장했던 일정이 이곳이었거든요. 결론적으로 플리트비체는 전혀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신기했던 것은 4시간 가까이 드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는 동안 ‘산불 조심’, ‘흡연 금지’ 같은 계도성 현수막을 전혀 볼 수 없었단 점이에요.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마다 매달은 색색의 산악회 리본 같은 것도 물론 없었지요. 쓰러져 물속에 잠긴 나무들마저 자연 그대로 놓아 두는 이곳에서 저는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그림  <오필리아Ophelia>를 떠올렸습니다. 청초하고 아름답고 관능적인 오필리아의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밀레이의 붓끝을 통해 무엇보다 생생하고 아름답게 남았지요. 깊은 속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물에 잠겨 이리저리 물살에 흔들리던 나무들을 보면서 ‘이곳이야말로 오필리아가 잠든 안식처가 아닐까’ 생각했다면 제 감상이 너무 앞서나간 걸까요. 

자연의 복원력을 믿고,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한 그곳은 한 해에 100만명이 방문하는 크로아티아 최대의 관광지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요했습니다. 트레킹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탄 보트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환경 보존을 위해 전기로 움직인다는 보트는 단순함 그 자체였죠. 안내판에 적힌 시간에 맞춰 사람들을 태웠고, 시간이 되자 출발했습니다. 그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의 고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햇살은 따뜻했고, 호수는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새의 지저귀는 소리만 간간히 들렸어요. 호수 가득 산과 구름과 하늘의 풍경이 담겨 있었고, 조용히 그 호수의 풍경 속을 지나간 순간이었죠. 평화롭고 고요했으며, 깨끗했어요. 어떤 안내 멘트도 필요 없을 만큼, 고요만으로도 자연이 주는 충만함에 흠뻑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정말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느 순간보다 평화로웠던 그때, 당신과 함께 다시 가보고 싶어요. 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플리트비체는, 그런 곳이에요. 
 
 
공원을 걷다 보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친다  
 
 
 ‘요정의 숲’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플리트비체. 한가롭게 걷고 싶다면 오후 3시 이후를 추천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는 단체 관광객들로 붐비는 시간이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 트래비 크로아티아 원정대(글 정지은, 사진 박근우, 영상 김민수)
취재협조 크로아티아관광청 www.croatia.hr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e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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