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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ir 모든 영화는 여행이다] 고요하고 시끄러운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6.07.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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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트mute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장 간절한 순간이 지금이다. 장마가 끝난 뒤, 새벽부터 매미가 울어대는 지금 말이다. 느지막이 일어나고 싶은 주말 아침에 강제 기상을 당하는 기분이란. 이 무자비한 알람형(?) 곤충은 심지어 하루 종일 꺼지질 않는다. 여름날의 밤거리는 또 어떤가. ‘화려한 나이트 라이프’라 소개했던 동남아의 어느 관광지는 사실 사방에서 온갖 음악과 고성이 ‘내가 더 잘났다’ 아우성치는 소음의 집합소였다. 그러한 이유로 뽀드득뽀드득 발자국 소리와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가 가볍게 흩어지는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트라이브>의 세상이 그렇다. 소리의 언어가 없다. 배경은 우크라이나의 농아 기숙학교, 등장인물들은 모두 농아다. 이 영화의 모든 대화는 손짓, 몸짓으로 채워진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수화를 하며 나는 살이 부딪히는 소리, 자동차가 내는 소리, 물건의 마찰음, 눈을 밟는 소리 같은 음성 외의 것들뿐이다. 사람의 청각은 얼마나 말소리에 편향돼 있는가. 그동안 말소리 외의 수많은 소리들을 모두 지나가는 배경 취급을 했던 탓에, 영화 속 옷깃 스치는 소리조차 자극적이다. 피부의 마찰음은 음악만큼이나 리드미컬하게 다가온다. 사실 등장인물들은 완전한 ‘뮤트’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관객에게는 그나마 친절한 세계다. 

이 고요한 영화는 그럼에도 시끄럽다. 내내 대화하지 않는 순간이 없고, 무리지어 웅성이고 싸우고 소리 지른다. ‘언어’는 영화 내내 쉬지 않고 쏟아진다. 지하철에서 농아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음성이 없어도 우리만큼이나 말이 많다 생각했다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조용하다’는 것은 물리적 문제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격렬하고 폭발적인 언어를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핸디캡은 보통 불가능을 꼬리표로 달게 되지만 오히려 반대선상에서 더욱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뒷통수가 얼얼할 정도의 충격이다. 서사가 계속될 수록 무성 세계의 가능성은 긍정적인 방향이건 부정적인 방향이건 점점 확장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폭발한다. 한밤중 기숙사 방에서 누군가 둔탁하고 큰 소음 아래 죽어 나갈 때 바로 옆자리에서조차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하는, 그래서 잠든 채 마저 죽임을 당하는 파멸적인 결말은 소리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으레 약자에게 삶이 좀 더 척박하듯 누구나 겪는 성장통 또한 이들에겐 만만치 않았다. 등장인물들은 지폐 몇 장에 몸을 팔았고, 기차를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했다. 변방의 약소국에 태어난 탓에 멀리 타국으로 떠나는 것이 희망이다. 흔한 클로즈업샷도 하나 없는, 배경음악도 없는 건조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 그들에게 겹겹이 쌓인 약자의 프레임이 선명하게 불거진다. 

<트라이브>는 2014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무성無聲의 세계는 다소 처참했지만 그렇다고 유성有聲의 세계와 다른 것도 아니었다. 뮤트 버튼을 누르고 싶다고 한들, 울적한 세상의 진리는 똑같다는 것이다.
 
 
트라이브The Tribe
감독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Myroslav Slaboshpytskiy
범죄, 드라마 | 130분
출연 그레고리브 페센코Grigoriy Fesenko
        야나 노비코바Yana Novikova
 
 
*글을 쓴 차민경 기자는 <트래비>와 그 자매지인 <여행신문>의 기자다. 정말 뮤트 버튼이 있어 매미 소리를 안 들을 수 있다면? 여름인데 매미 소리 안 들리면 서운할 것도 같고. 하기야 이런 고민이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저러나 매미는 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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