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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쑤성 실크로드②세계유산을 품은 오아시스 도시, 둔황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8.0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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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막고굴 출입구에 세워진 누각. 모래바람 덕에 풍경은 꿈을 꾸듯 몽롱해졌다
 
 
●세계유산을 품은 
오아시스 도시
둔황 
 
이른 아침, 호텔은 정전이 됐다. 강한 모래바람 탓이다. 불모지 위 사물들은 바람 타고 날아온 모래를 두텁게 덧입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묘사한 멸망 직전 지구 모습과 꼭 닮았다. 목이 칼칼해졌고 눈도 매웠다. 조식 식당의 모든 호텔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광경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스크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희뿌연 실내에 정성스럽게 차려 놓은 음식들은 먹어도 될지 고민이었다. 사진 역시 이 정도 시계(視界)의 결과물이면 조개탕에 넣었다가 뺀 듯 흐리멍덩할 게 뻔하다. 카메라에 모래가 날아와 박히는 일도 끔찍하다. 어떻든, 먼 길 달려왔으니 멈출 수는 없다. 

둔황은 한무제가 황하의 서쪽에 설치한 하서사군(河西四郡), 무위, 장액, 주천, 둔황의 마지막 도시다. 동쪽으로는 고비사막, 서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연결하는 오아시스 도시로, 실크로드의 중심이자 중국 서역 경영의 거점으로 당대까지 번성했지만 이후 쇠락했다. 시간이 흘렀고, 둔황은 명소가 됐다. 둔황학(敦煌學)이라는 학문이 생겨날 만큼 위대한 도시가 됐다.
 
최근 한국에서도 <둔황학대사전>이 번역 출판됐는데, 베개 대신 써도 좋을 2,000쪽 두께다. 이곳에서 과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세계의 학자들은 그 방대한 이야기들을 파고 또 판다. 이게 다 막고굴(莫高窟) 때문이다.  
 
막고굴의 풍경. 얼핏, 사막 위에 지은 리조트를 연상케 한다. 예불굴이 몰려 있는 서쪽 굴 내부에는 수많은 불화와 불상들이 잠들어 있다
막고굴 박물관에서는 굴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불교유산의 자궁, 막고굴

개굴(開掘)을 시작한 사람은 전진(前秦) 시대의 승려 낙준법사다. 그는 수행처를 찾던 중 명사산에서 천불 형상을 한 금빛을 보고 굴을 파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선사들이 몰려들었고 영혼의 안식을 찾는 일반인들도 합세했다. 모두는 각자의 염원을 담아 사암을 파고 굴을 지었다. 화공을 불러 불화를 그리고 불상도 들여놓았다.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는 실크로드의 중심, 명사산 막고굴*에서 찬란해졌다. 각국에서 모인 승려들은 경전을 번역하고 유람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중엔 신라시대의 승려 혜초도 있었다. 그가 집필한 <왕오천축국전>은 1900년대 초반 17호 장경동굴에서 발견됐다. 발굴자는 왕원록이다. 출가 후 둔황에 정착해 막고굴을 지키는 도사로 살았다. 그가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발견한 사료들의 가치는 엄청나다. 불교 경전을 베껴 쓴 사경(寫經), 여러 언어로 기록된 불교 경전 번역본, 회화, 은괴, 조각상 등 4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유물로 가득했다. 특히 회화와 경전은 종이가 귀하던 시절의 것이라 저잣거리에서 모아 온 이면지를 재활용했다. 왕원록은 막고굴 유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다가 청 말기, 영국의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에게 방대한 양을 헐값에 팔았다. <왕오천축국전>은 펠리오가 가져갔다. 러시아, 일본 탐사대도 연이어 유물들을 싼값에 샀다. 둔황학이 세계적 학문이 된 서글픈 사연이다. 

둔황 시내 인근에서 막고굴 관련 영상을 본 후 버스에 올랐다. 거센 모래바람으로 사위가 어스름하고, 세상은 색을 잃은 듯하다. 사막 길을 20분가량 달리니 막고굴이다. 모래산에 송송 뚫린 구멍이 수백여 개, 마치 대형 리조트의 외벽을 보는 것 같다. 관광객은 하루 일곱 개의 굴만 볼 수 있다. 굴은 암흑이다. 열어 둔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이 전부다. 두 눈이 시나브로 어둠에 적응할수록, 벽화와 불상들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가이드는 북쪽은 수행굴, 남쪽은 예배굴이 몰려 있다는 이야기와, 불상과 불화의 연대와 내용, 발견 당시의 유물 상태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일곱 개의 동굴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237호. 벽면에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 사신의 그림이 있어서다. 빛바랜 그가 묻는 듯하다. “너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나는 길 위에서 엄청나게 힘들었는데…” 자신에게 되물었다. 그 시절의 사람이었다면, 나는 이 길을 걸었을까. 
 
*막고굴 | 막고굴은 둔황 명사산(鸣沙山) 동쪽 끝에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고 세계 최대의 석굴군(石窟群)이다. 1.8km의 거리에 1,000여 개의 굴이 층층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발굴된 굴은 492개다.
 
초승달을 닮은 월아천이 마을을 감쌌다. 사막산 꼭대기까지 올라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명사산에서 낙타 사파리를 즐기는 관광객들의 모습
명사산 모래 언덕의 고요한 풍경.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래의 이야기,  명사산

사람들은 둔황 최고의 절경을 감상하기 위해 명사산을 찾는다.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깃든 월아천(月牙泉) 마을은 밤낮없이 인산인해란다. 적잖은 기대를 품고 찾았지만, 날씨가 얄궂다. 정문 초입에선 낙타들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누비는 체험 정도는 해야 실크로드를 다녀왔다고 젠체할 수 있지 않을까. 잠깐 흔들렸지만 걷고 싶었다. 메르스 예방수칙 도표에 그려진 낙타 그림이 생각나 헛웃음도 났다.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발의 촉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잠시 후 평지가 나타났고, 길은 두 갈래로 갈렸다. 경사가 45도쯤 되는 모래 언덕길, 그리고 월아천 마을로 들어가는 길. 멀리서 굽어보느냐, 마을의 속살을 둘러보느냐의 문제다. 시간이 충분해 모두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이다.
 
선택의 순간, 예전에 들었던 선배의 말이 귓전에 울렸다. “일단, 무조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해.” 주저 없이 굽어보는 코스를 택했다. 제아무리 시야가 탁해도, 볼만하겠지 싶었다. 가파른 경사면에 무심히 걸쳐 둔 줄사다리를 발판 삼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명사산은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명명됐다. 바람에 쓸리는 모래 소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관광객이 산을 오를 때 흘러내리는 모래 소리를 표현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분명한 건, 산을 오를 때는 모래 우는 소리보다 제 숨 헐떡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것. 십분쯤 두 발로 걷고 다시 십분쯤 네 발로 꾸역꾸역 기어오르면 정상이다. ‘뒤돌아 내려가 마을을 둘러볼까’ 했던 수십 번의 갈등은 정상에서 말끔히 녹아내린다.
 
어렴풋이 보이는 사막의 능선은 우아했다. 더운 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뺨에 붙어 느껴지는 가슬한 촉감도 신선했다. 소리가 들렸다. 산 아래 월아천 마을이 선명히 보이지 않아 슬픈 여행자를 위로하듯, 휘이휘이. 바슬바슬 나직한 소리로 이야기한다. “두 발로 걸어 올라와서 두 눈으로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아.”  
 
▶travel info
 
Air 
중국 국제항공을 이용해 베이징을 경유, 란저우까지 이동했다. 실제 비행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지만 경유 시간을 생각하면 한나절을 잡아야 한다. 란저우에서 장액까지는 차로 5시간, 고속열차로 2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 장액에서 둔황까지는 6시간 거리를 차로 이동했다. 장시간 이동이 싫다면 항공편을 이용하면 된다. 둔황에도 공항이 있다. 란저우에서 1시간 30분, 베이징에서 3시간이면 닿는다. 
 
 
Protect Gear
모래바람을 이기려면

마스크는 필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거친 모래바람에 잠시만 노출돼도 목이 칼칼해진다. 기다란 스카프를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차도르를 두르듯, 얼굴과 머리를 감싸면 된다. 옷은 모래가 잘 털리는 소재로 준비한다. 카메라는 반드시 비닐이나 천으로 꼼꼼히 싸맬 것. 사막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가들은 거친 모래바람에 렌즈를 보호하기 위해 콘돔을 가지고 다닌다는 민망한 정보도 전한다. 
 
PLACE
멀지만 놓칠 수 없는 문화유산, 가욕관성

장액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다. 중국에서 3시간 거리는 동네 마실 가는 것과 비슷하니, 길을 나서 보자. 고비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선 가욕관성은 명나라 주원장 때인 1372년,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요새다. 하서사군을 방어하는 마지노선이자,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라 의미가 크다. 동서 256m, 남북으로 160m의 규모의 가욕관성은 내성, 성호, 외성 세 겹으로 옹골차게 둘러싸인 구조로 축조됐다. 만리장성의 성문 중 가장 온전히 보존됐다는 평가다. 내성에는 서쪽 문인 유원문과 동쪽 문인 광화문이 있다. 두 문 사이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판이 도열해 있어 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욕문 밖에서는 낙타 타고 사막을 거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낙타를 타고 모래밭을 거니는 이곳이, 과거 서역 땅이었다.
 
Market 
둔황 야시장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곳에서 현재 무엇을 파는지 궁금하다면 둔황 야시장으로 가보자. 액세서리, 낙타 인형, 도장, 결이 고운 나무 지압봉, 목탁 소리를 내는 두꺼비 목각 인형, 휴대용 장기판, 꽃신까지,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각종 견과류와 말린 과일도 포장해 판다. 하이라이트는 시장 끝 쪽에 자리한 양꼬치 거리. 다양한 부위의 구운 양꼬치 한 입 베어 물고 맥주 한 모금 삼키면 무한대로 행복해진다. 거리 중앙에 휴대용 노래방 기기를 들고 다니는 버스킹 밴드가 흥을 돋운다. 신청곡도 받는다.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중국 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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