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③프릿츨 재즈 클럽에서의 밤들
뉴올리언스③프릿츨 재즈 클럽에서의 밤들
  • 고서령
  • 승인 2016.08.10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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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Fritzel’s European Jazz Club
 
오늘 밤 733 Bourbon St.에 갈 수 있다면
 
많이 알지 않아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령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와인의 종류와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아야 할까.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세계문학전집 중 몇 권이나 읽은 사람이어야 할까. 그런 고민을 자주 했던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마다 어떤 용기가 필요했다.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이제껏 하지 못했던 말을 해야겠다.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되짚어 보면 재즈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였다. 재즈의 역사나 세부 장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피가 끌리듯 그 선율에 끌렸다. 냇 킹 콜(Nat King Cole)이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사라 본Sarah Vaughan) 같은 뮤지션들의 앨범을 맹목적으로 들으면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랬던 내게 뉴올리언스가 운명처럼 왔다. 아니, 내가 운명처럼 그곳으로 갔다. 24시간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가, 일주일을 뉴올리언스에만 머물렀다. 그중 5일 밤을 버번 스트리트Bourbon Street 733번지, 프릿츨 재즈 클럽(Fritzel’s European Jazz Club)에서 보냈다. 그곳의 재즈 피아니스트 리처드 스콧(Richard Scott) 아저씨의 손가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으면, 3시간이 30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자꾸만 순식간에 날아갔다.
 
 
 
미국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버번 스트리트에는 뮤직 클럽이 넘쳐난다. 수십년 전엔 모두가 뉴올리언스 정통 재즈를 연주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습을 달리한 곳들이 늘어났다. 일부는 디스코, 일부는 힙합 클럽으로 바뀌었고 스트립 클럽 같은 자극적인 장소들까지 섞였다. 물론 여전히 가장 많은 것은 재즈 클럽이다. 오늘날 버번 스트리트는 어느 한 가지 색깔로 설명하기 힘든, 엄청나게 독특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프릿츨 재즈 클럽이 더욱 더 빛나는 건 그래서다. 수많은 종류의 음악과 유흥이 범람하는 이 거리에서 오래된 가죽 소파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뉴올리언스 정통 재즈를 사랑하고, 그 음악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하는 뮤지션들이 모여 앉아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얼굴로 연주하는 공간. 정신없이 복잡한 버번 스트리트의 한 구석에서 이 재즈 클럽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래서 모래 속 진주를 발견한 듯 행복해한다. 나도 그랬다.
 
 
내가 매일 밤 그곳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리처드 스콧 아저씨도 알았고, 클라리넷, 베이스, 드럼 연주가들도 알았고, 바텐더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아마 그건 어느 날 저녁, 밥 대신 그곳의 음악과 칵테일로 배를 채운 내가, 술에 취해 그곳에서 파는 CD 7장을 모두 사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 며칠 동안 프릿츨 재즈 클럽의 자타공인 단골손님이었다. 그리고 뉴올리언스를 떠나 서울로 돌아온 지금, 지구 반대편에 단골 재즈 클럽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수시로 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오늘밤 다시 733 Bourbon St.에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저녁밥 대신 음악을 배불리 먹고, 재즈 다이키리(Jazz Daiquiri), 루이지애나 레이디(Louisiana Lady) 같은 이름의 칵테일로 혈관을 적시고 싶다. 피아노 건반 위를 춤추는 리처드 아저씨의 손가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연주가 끝나면 손바닥이 뜨거워지도록 박수를 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프릿츨 재즈 클럽에서 나는 ‘좋아하는 방법’을 배웠다. 많이 알지 못해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와인 향이 코끝을 지나고 와인 방울이 입 안을 맴돌 때 기분이 너무너무 행복해진다면, 와인의 역사를 잘 몰라도 와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심장 깊숙한 곳까지 짜릿해지고 벅찬 감동에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면, 세계문학전집은 얼마 읽지 못했어도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와인을 좋아한다. 소설을 좋아한다.
 
 
 
about Richard ‘Piano’ Scott
피아니스트 리처드 스콧의 고향은 워싱턴DC 근처의 작은 도시다. 2000년, 오로지 음악에 이끌려 뉴올리언스로 이사했다는 그는 2002년부터 15년째 프릿츨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엄청난 로맨티스트인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3장 냈는데, 하나는 딸의 사진을 넣은 CD, 또 하나는 아들의 사진을 넣은 CD로 만들었다. 부인을 위한 CD는 없냐고 묻자, 자신의 모든 노래와 앨범은 부인을 위한 거란다. 만약 당신이 프릿츨 재즈 클럽을 찾아가 그를 만난다면 신청곡으로 리처드 스콧이 부르는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요청해 들어 보길. 그 목소리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홈페이지 www.fritzelsjazz.net
 
 
글 고서령 기자  사진  고서령 기자,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델타항공 www.del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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