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On Air] 열흘 뒤면 나는 랍스터가 된다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6.08.30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흘 뒤면 나는 랍스터가 된다. 아니,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으니 랍스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로 정정하겠다. 그쪽이 좀 더 희망적이다. 어쨌든 9월 중순이면 어떻게든 결단이 나 있을 것이다. 연인을 찾는다면 다행이 인간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볼 것도 없이 랍스터행이다.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사랑이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조건이라면 어떨까? 연인이 없는 자는 즉시 커플 메이킹을 위한 호텔에 45일간 감금되고, 유예기간 동안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불행 중 다행으로 자신이 원하는 동물이 될 수 있다)이 된다고 해보자. 두 사람이 커플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둘 다 코피를 자주 흘리거나, 둘 다 심성이 차갑거나, 둘 다 눈이 안 보이거나.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사랑을 배척하고 홀로 사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대신 이 경우에는 절대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또한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을 했으므로 사회에 편입될 수도 없다. 숲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끝까지 홀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더 랍스터>의 세계다. 

사랑을 강제당하는 이 세계, 짝이 없는 사람을 ‘동물’ 취급하는 이 세계, 어쩐지 낯익다. 나이가 찼는데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구실 못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 비혼자의 증가를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지적하는 우리네와 닮았다. 개인의 신념으로 충분할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동일시되고 그리하여 어딘가 불만이 있어 반항하고 있다는 철없는 어린애 취급을 당하고 만다. 그냥 두루두루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일 뿐인데(앗, 이건 나의 경우로 한정한다). 

그럼 커플들은 건강한가 말이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연인과의 공통점을 억지로 만들어냈던 호텔의 커플들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부서져 내렸다. 거짓 사랑이다. 이들에게 사랑은 두 사람간의 ‘공통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커플에게 위기가 생기면 아이를 배치한다는 호텔의 처방은 그야말로 영리한 것일 수밖에. ‘자식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말은 그냥 푸념이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에 사랑하는 일은 누가 하란다고 하고,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인공 데이비드를 보라. 짝을 맺으라 달달 볶을 때는 정작 연인을 못 찾더니 짝 없이 살아야 한다고 하니 바로 뾰로롱 사랑의 스파크가 튀었다. 사회나 구조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곳에 사랑이 있다. 

그럼에도 사회가 사랑을 강제하면서까지 욕심내는 것은 과연 그 효능이 탁월해서가 아닐까. 삶이 충만한 기분, 안정감을 갖거나 때로 용기를 내는 데 사랑만큼 특효약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말이다.    
 
 
 

더 랍스터The Lobster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Giorgos Lanthimos
멜로, 판타지 | 118분
출연 콜린 파렐Colin Farrell
        레이첼 와이즈Rachel Weisz
 
 
*글을 쓴 차민경 기자는 <트래비>와 그 자매지인 <여행신문>의 기자다. ‘랍스터’는 주인공 데이비드가 커플 메이킹에 실패했을 때 되고 싶다던 동물이다. 사랑 없는 100년의 생과 감정 없는 생식활동이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통조림이 되어서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설정하고 싶다.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