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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아의 여행과 인문]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9.2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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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는 자신의 경계에 대한 고백이다. 자기의 어떠함과, 어떠할 수 없음을 밝히는 시간이다. 자신 안에(intro)있는 가능과 한계를 동시에 이끌어(duce)내 표현하는 행위가 자기소개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경험, 취향, 지적토대를 끄집어 내놓으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다. 희미했던 내 존재에 명확한 테두리가 그어지는 찰나다. 
 
그림으로 이루어진 문자를 상형 문자象形文字라 한다. 사람은 언어가 존재하기 전부터 형태를 그려 소통을 했다. 사람이 그리는 무늬를 연구한다 해서 인문학이듯,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형태를 그리는, 즉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행위자체가 인문이다. 그러므로 인문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한계를 고백하고, 나와 다른 것을 내 영역 안으로 받아들여 그 지경을 넓혀가는 것으로, 나와 이질적인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행위다. 인문이 여행과 닮은 점이다. 

한 사람이 ‘세상’이라 정의하는 공간은 그 사람이 가장 멀리 가 본 곳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 “내게 추억이란 기껏해야 바닷가와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가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이었으니까. 그게 우리 인식의 지평이었다. 수평선의 안쪽에서 우리는 태어났다. 잠잘 때도 우리 꿈의 배경은 그 수평선 안쪽을 넘어가지 못했다.” 소설가 김연수가 <여행할 권리>를 시작하며 자기소개를 한 대목이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모든 지식은 개념의 형태로 존재한다. 개념이란 사건들의 공통적인 면모만을 포착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개념을 ‘파악'한다고 한다. 손에 잡히는 것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린다. 이론도 그렇다. 사건들의 공통점 유추를 통해 추후에 다른 사건이 발생할 시, 예측을 돕기 위해 개발된 것이 이론이다. 
 
김연수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국경을 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우리는 안다. 북한을 제외한 어떤 나라라도 비자만 제대로 갖춰져 있고, 수하물에 문제가 없다면, 국경을 넘는다고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에게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시기가 고작 1989년이니 70년 생인, 게다가 문명의 혜택이 적은 바닷가에서만 자란 그에게 국경을 넘는 여행은 무척 큰 도전이었겠다. 
 
이 대목에서 이 작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 동안 무심하게 정신없이 오가기만 했던 정류장, 공항, 터미널이 누군가에게는 '망각, 망실, 망명'의 공간으로 의미부여 된다는 것이 아차 싶었다. 처음 주를 영접한 순간의 감동은 잊고 교회만 시계추처럼 오가는 나이롱 교인이 된 기분이었다. 첫 여행의 두려움과 설레임이 내 인생을 얼마나 대단하게 변화시켰는지 벌써 다 잊은겐가.
 
<공항> 편은 여권이 신분증으로 쓰이는 것 자체가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대목이다. 여권은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만들 수 있으니 이미 1차 검열을 받은 상태라고는 하지만 영문 이름과 여권 발행 날짜와 장소, 사진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에게는 일상이 되어 버린 공간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 주는 그의 순수함에 반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여행기가 아닌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시중의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여행지에서 자기 이야기 하는, 여행자의 이야기로 여행지가 묻혀버리는 게 보통인데, <여행할 권리>는 여행지 중심의 사람이야기다. 일상 속 여행, 여행 속 일상, 우연에서 시작해 필연으로 흐르는 이야기다. 이 것이 바로 우리가 여행에서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것들이 아닐까. 사람이 가진 테두리, 가능과 불가능의 한계, 현실과 지식, 이론의 경계, 그리고 이질적인 두 나라가 맞닿은 국경이 닮아있다. 
 
인문학자 최진석 교수는 “자기의 욕망에 집중”해야 한다며, 사람에게 욕망은 철저히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기위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을 좇느라 내 생각과 직관은 무시한 채 남의 인생을 대신 살지 말고, 끊임없이 경계에 서라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에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시켜 내가 주관자가 된 삶, 자기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며 살라는 것이다. 김연수의 부드러운 어조와는 대조를 이루는 최진석 교수의 당찬 강의를 동시에 접하며, 나 역시 경계에 선 기분이다. “겨우 이것뿐인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 계속 국경을 넘나드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과, 남들이 보편타당하고 믿는 생각에 “왜?”를 질문하며 경계에 서는, 자기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삶은 무척 닮아있다.
 
박재아
사모아관광청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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