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쓴 도시, 슬로바키아
왕관을 쓴 도시, 슬로바키아
  • 천소현
  • 승인 2016.10.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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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oj SLOVAKIA
아호이! 슬로바키아
 
불쑥 얼굴을 내민 그의 인사는 마치 슬로바키아 같았다.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이룬 유럽에서 가장 젊은 나라. 
그러나 알고 보면 슬로바키아는 2,500m 이상 솟아오른 봉우리들 사이로 2,000년이 넘은 고도(古都)와 120여 개의 성을 품고 있는 성숙한 나라다. 유럽의 중심에 고이 숨겨져 있던 빛나는 보석이다. 
 
SLOVAKIA
면적은 남한의 절반 크기. 인구는 약 544만명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포함한 서남부 저지대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브라티슬라바성에서 내려다본 풍경. 왕관이 놓여진 성 마틴 교회의 첨탑 너머 두나이강이 흐른다
라우린스카(Laurinská) 거리에는 브라티슬라바 최고의 인기남 추밀(Čumil)이 있다. 1997년 만들어진 빅토르 훌릭(Viktor Hulík)의 작품으로 ‘훔쳐보는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브라티슬라바성 안에서 바라본 스바토플룩 1세의 기마상. 그는 대 모라비아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Bratislava 브라티슬라바 
The Crowned City 
 
왕관을 벗고 보석이 된 도시 

잠에서 일찍 깼다. 지난밤 브라티슬라바 흐베즈도슬라보보 광장(Hviezdoslav namestie)의 어느 펍에서 마신 허브 맥주 한잔이 초강력 피로회복제였던 것일까, 아침 조깅을 나설 기운까지 났다. 코스는 두나이(Dunaj) 강변*이었다. 독일에서 흑해까지, 유럽에서 가장 길다는 이 강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도나우Donau, 헝가리에서는 두나Duna라고 부른다. 뭐라고 불리든 강이 수만년 동안 꿋꿋이 제 길을 흐르는 동안 국경은 무수히 다시 그어지곤 했다. 

강국을 이웃으로 둔 소국들의 운명은 비슷하게 기구하다. 슬로바키아는 9세기에 존재했던 대 모라비아(Great Moravia) 제국 이후 1,000년 이상 헝가리의 지배를 받아 왔다. 2차례의 세계대전 후엔 다시 냉전시대에 휘말려 1945년 체코와 함께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역사적, 민족적 연결고리가 약했던 두 나라는 이후 50년 가까이 동거를 지속했지만, 백년해로할 생각은 없었다.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하자 두 나라는 자연스레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해 분리를 결정했다. 슬로바키아가 현재의 국경을 완성한 것은 불과 23년 전, 유럽에서 가장 젊은 나라가 됐다. 

위대한 도시들은 국가를 넘어 존재한다. 수도가 된 브라티슬라바가 그런 도시다. 헝가리어로 포조니(Pozsony), 독일어로 프레스부르크(Pressburg)라고 불렸던 두나이 강변의 작은 도시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계기는 1526년 모하치 전투*였다. 오스만 제국에게 수도 부다(Buda)를 침공당한 헝가리는 북부의 프레스부르크를 수도로 지정하고 이후 300년 동안 20여 명에 이르는 왕과 귀족들의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브라티슬라바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였다. 그녀는 도시를 확장하기 위해 성벽을 허물어 버리기도 했다. 

왕관의 명예는 여전히 도시에 남아 있다. 실제 대관식이 치뤄졌던 성 마틴 성당을 중심으로 올드 시티의 모습은 헝가리 제국이 왜 이 도시를 대관도시로 선택했는지 알려 준다. 포석이 깔린 도로 양쪽으로 빈틈없이 어깨를 붙이고 선 중세의 건물들과 그 사이에 열린 광장들은 매년 여름 재현되는 대관행렬의 완벽한 무대다. 미카엘 게이트(Michael’s Gate)를 올려다보면 금방이라도 이제 막 왕좌에 오른 이가 나와서 손을 흔들어 줄 것 같다. 

씁쓸함도 있다. UFO를 연상시키는 전망대로 악명 높은 SNP* 다리(Most SNP)는 1960년대 후반에 올드 시티의 유서 깊은 유대인 지구를 파괴하면서 건설되었고, 성 마틴 성당과 브라티슬라바성 사이에 막막한 경계를 그어 놓은 채 강을 건너가 버린다. 한때 철거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브라티슬라바성이지만, 여행자들은 곧잘 성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맨다. 일방통행만 했던 사회주의 정부 정책의 후유증이다. 

달리기의 장점은 더 멀리 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밤 늦게까지 이어진 파티로 아직 졸음을 떨치지 못한 중세 거리를 깨우며 시작된 브라티슬라바 조깅은 수천년 역사를 관통하는 질주였다. 올드 시티의 바로크, 로마네스크, 고딕 건물들을 통과하자 머지않아 쉐라톤 호텔, 쇼핑몰, 극장 등이 들어선 현대식 쇼핑 컴플렉스, 유로베아(Eurovea)가 위용을 드러냈다. 중세에서 현대까지 달려오는 데 15분이면 족했다. 브라티슬라바는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미래의 포석이다. 정치, 행정,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드 시티의 골목들은 펍과 레스토랑을 점령한 관광객들로 매일밤 불야성을 이룬다.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각자의 왕관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진다. 새벽 조깅이 유난히 경쾌하고, 노천카페의 아이스크림은 더욱 달고, 맥주 한 모금에 피로가 녹는다.
 
*두나이강 | 총연장 2,860km. 브라티슬라바에서 강을 따라 남쪽으로 200km를 내려가면 헝가리 부다페스트, 상류로 80km만 가면 오스트리아 비엔나다. 
*모하치 전투 (Battle of Mohacs) | 헝가리 제국은 모하치 전투의 대패로 18세기까지 내부 분열과 대립을 계속하게 된다. 
*SNP | Slovenskeho narodneho povstania의 약자로 ‘슬로바키아 민중봉기’를 의미한다.
 
Bratislava Castle
주소: Bratislavsky kraj, Bratislava 
요금: 성인 €6 
전화: +421 (0) 2/2048 3104 
홈페이지: www.snm.sk
 
브라티슬라바 성의 뒤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살던 시대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흐베즈도슬라보보 광장의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만난 동심들
헝가리 왕들의 대관행렬은 이 거리를 지나 미카엘 게이트를 통과했었다
 
 
▶Kia Motors Slovakia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김태희보다 범블비 

슬로바키아는 유럽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자동차 생산기지다. 인구 1,000명당 182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유럽 최고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브라티슬라바에는 폭스바겐 공장, 트르나바(Trnava)에는 푸조 시트로엥 공장이, 질리나(Zilina)에는 2004년 설립된 기아자동차 유럽 공장이 있다. ‘슬로바-키아’와 ‘기아-자동차’의 기막힌 이름 궁합은 현실에서도 잘 작동하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스쳐 지나기만 했던 기아자동차 질리나 공장을 이번에는 견학까지 할 수 있었다. 

자동차공장 견학은 자동차박물관과는 차원이 다른 짜릿한 경험이다. 소음차단 이어폰을 착용한 채 안내인을 따라다니다 보면 그저 평평하기만 강철판이 주조와 프레스, 조립, 도장 등의 과정을 통해 미끈하게 빠진 한 대의 자동차로 완성되어 컨베이어 벨트를 빠져 나간다. 주행시험까지 마치면 유럽 전역으로 수출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최첨단 설비와 기술로 돌아가는 자동차 공장이 한국 브랜드라니 으쓱해지는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슬로바키아에 미인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혹자들은 질리나 공장에 김태희가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지만 실제로 거대한 공장에 들어서면 빠르고 정확한 ‘로봇 팔’들에게 압도당해 버린다. 동행자는 연신 ‘범블비’들이 일하고 있다며 감탄을 쏟아냈다. 

유럽 자동차 수출의 전초기지는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유럽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소형 다목적차량(MPV) ‘벤가’와 준중형 해치백 ‘씨드’, 신형 ‘스포티지’ 등 연간 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 슬로바키아인들인 3,800명 직원들의 복지와 사회공헌사업에도 적극적이다.
 
Kia Motors Slovakia
찾아가기: 583번 도로 ▶ Teplička nad Váhom 방향 직진 ▶ Sv. Jána Nepomuckého/583C번 도로 진입 ▶ 우회전 ▶ 질리나공장
전화: +421 41 515 1300  
홈페이지: www.kia.com
 
 
 
▶Hotel
브라티슬라바 | 호텔 마티섹(Hotel Matyšák Bratislava)
페지노크의 와이너리 마티섹에서 운영하는 브랜드 호텔이다. 식도락가들에게 꽤 유명한 것은 지하의 고풍스런 와인저장고와 연결되어 있는 레스토랑이다. 와인을 곁들인 만찬은 현지 물가로는 저렴하지 않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 브라티슬라바 중앙기차역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이동도 편리하다. 
주소: Pražská 15, 811 04 Bratislava
전화: +421 (2) 2063 4001  
홈페이지: www.hotelmatysak.sk
 
 
브라티슬라바 | 보테 마리나(Botel Marina)
보트와 호텔의 결합. 이름하여 보텔(Botel)이다. 올드시티와 가까운 두나이 강변에 정박하고 있어서 낮에는 관광을, 저녁에는 만족스런 선상디너를, 밤에는 다시 구도심의 나이트라이프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호텔로 치면 3성급이라 객실이나 인테리어는 베이직한 편이다. 
주소: Nabrezie Arm Gen L Svobodu 2  
전화: +421 254 641 805  
홈페이지: www.botelmarina.sk (온라인 예약 가능)
 
▶travel info
 
Transportation
슬로바키아에도 공항이 있지만 슬로바키아 사람들조차 장거리 여행에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항을 이용한다. 비엔나 공항에서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불과 60km 거리라서 차로 1시간이면 너끈히 도착하며, 두 도시를 연결하는 트램도 있다. 
 
Currency 
슬로바키아는 독립 후 2004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2009년부터 유로를 공식화폐로 사용하고 있다. 
 
info
슬로바키아 관련해서는 아직 한글 여행정보가 많지 않다. 슬로바키아관광청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포괄적인 정보가 있으며 한국 홍보사무소에서 한글 브로셔를 받을 수 있다. 올해 슬로바키아관광청은 ‘굿 아이디어 슬로바키아(Good Idea Slovakia)’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슬로바키아관광청  www.slovakia.travel 
슬로바키아관광청 한국 홍보사무소 02 2265 2247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취재협조 슬로바키아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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