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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나를 변화시킨 마라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11.01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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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분 03초, 나의 첫 10km 마라톤 기록이다. 초여름이었음에도 그날은 상당히 더웠다. 더웠지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달리기 그 자체를 즐겼으니까. 

내가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한 것은 7년 전, 군생활 때이다. 매일같이 반복된 장거리 달리기는 내게 고통이었다. 몇 번의 좌절과 허탈감 끝에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아침저녁으로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엔 비를 맞으면서,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휴가 나갔을 때에도 매일같이 달렸다. 어느 순간 아침 뜀걸음도, 체력장도 더 이상 힘들지 않았고, 그렇게 달리기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잠든 세포를 깨운 각성제였다. 집 밖으로 나가서 트랙 위를 뛰게 만드는. 

소설가이자 러너. 하루키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매일 10km씩 조깅을 하고, 뉴욕과 보스턴, 그리스와 하와이를 오가며 마라톤 풀코스를 25번이나 완주한 그에게 전혀 부족함 없는 타이틀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영과 사이클링, 마라톤이 합쳐진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뒀다.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에서는 그는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며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하루키의 모습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정도면 괜찮잖아?’라며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졌던 모습을 반성하게 했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뜨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172쪽   
 
긴 호흡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마라톤도 이제는 그의 삶이 되었다. 소설 집필을 위해 세계 곳곳에 머무르면서 매일 다른 도시를 달렸다. 달리면서 갑작스레 폭우를 만나기도, 뙤약볕 아래 살갗이 벌겋게 익기도 하고, 개에게 물릴 뻔하기도 하지만 그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에세이에서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인생관과 러닝 라이프를 보고 있자면 ‘하루 쉬어야지. 오늘은 맥주로 달려 볼까’ 하는 생각도 부끄러워졌고 ‘열심히 뛰고 오자!’로 바뀌었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 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259쪽
 
책을 읽으면서 했던 ‘달리는 것만큼 어떤 일을 진득하게 해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물음은 자연스레 내게 끈기를 심어 주었다. 또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번 정한 나와의 약속은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인생의 모토도 가지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반복해 나간다면 우리 몸은 그것을 기억하고 상황에 맞게 서서히 변화한다. 나아가 불가능해 보였던 일도 가능케 한다. 마치 매일매일 달려서 체력단련이 힘들지 않았던 예전의 나처럼. 그때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앞으로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끝까지 꾸준히 뛰어야겠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
 
글 Traviest 신원섭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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