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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Table] 내가 가는 그 집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11.01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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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집과 나의 관계는 어쩌면 남녀관계와 비슷하다.
진정한 단골이라 생각했건만, 정작 그 집에선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흔히 가는 집이라 생각했건만, 뜻밖에 그 집에선 내가 특별한 존재이기도 한.
단골인 듯 아닌 듯 밀당 고수들의 ‘썸’ 이야기를 풀어 봤다. 

정리 <트래비> 취재부 

나만의 단골 기준은?
 
정- 단골집이라 하면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오래된 식당부터 떠오른다.
예- 난 반대의 경우다. 오래된 곳은 이미 단골손님들이 많아서 오히려 단골이 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는 새로운 가게를 단골집으로 개척하는 편이다. 작년에 동네 빵집이 하나 생겼는데 오픈했을 때부터 갔더니 빵집 아저씨랑 유대관계가 쌓였다. 지금은 꽤나 사람들이 많아졌는데도 갈 때마다 주인아저씨가 초기 멤버라며 친숙하게 맞아 준다.
차- 그러고 보면 내가 단골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많아도 정작 나를 단골이라고 생각해 주는 곳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천- 이달에 인터뷰했던 작가가 포르투갈에 단골집이 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 말하고 다녔는데, 몇년 후에 다시 갔더니 글쎄 주인이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심지어 책에도 썼는데 말이다. 나한테는 각별해도 주인한테는 손님 중 한 명일 뿐이다.
편- 이전에 <트래비>에 소개할 만큼 좋아했던 중국집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다. 장사가 잘 되니 반갑긴 하지만 동시에 서운한 마음도 든다. 
천- 면세점 공사하기 전 제주공항에 조그만 간이분식집이 하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말아 주는 우동이 맛있기로 소문이 나서 일부러 밥을 안 먹고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그 집 우동을 먹곤 했다. 그런데 이후 식당을 확장하더니 사람도 많아지고 맛도 변해서 더 이상 가지 않는다.
김- 종종 가던 곰탕집도 그래서 발길을 끊었다. 손님이 계속 많아지더니, 2인용 테이블 바로 앞자리에 모르는 사람을 앉히기까지 하더라.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다신 가고 싶지 않다.
손- 단골집에 손님이 너무 없어도 문제다. 친구랑 종종 가던 동네 술집이 있었는데 조용하니 참 좋았다. 근데 결국 사람이 없어서 망했다.
편- 연희동의 한 술집은 주인이 가게를 내놨더니 그 집 단골손님들이 함께 투자해서 가게를 살렸다더라.
차- 일본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했는데 어느 날 수해를 입었단다. 할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기도 하고 해서 가게를 접겠다고 했는데, 손님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서 가게를 다시 차려 줬다. 
편- 주인이 힘들어서 그만한다고 하는데 왜 미담인가?
all-  ㅋㅋㅋㅋㅋ
손- 미국에 있는 도넛가게 이야기도 있다. 한인이 한자리에서 10년 넘게 계속 도넛을 만들어 왔는데 가게 맞은편에 유명 프랜차이즈 도넛집이 생겨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손님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해 가게를 살리는 운동을 벌였다고.
천- 이전에는 그렇게 가게와 단골손님 사이에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개념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옛날엔 내 취향에 딱 맞는 단골집에 주체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가는 편이었다면, 지금은 TV 미식 프로그램에 나온 집 위주로 한 번 맛보기 위해 가게 되니 말이다.
편- 청년 실업률과 단골 개념의 상관성도 있지 않을까. 인턴이나 아르바이트처럼 임시직 일자리만 늘어나니 직원이 자주 바뀌고 서로 얼굴을 익히기가 어렵다.

단골이 되고 싶은 곳
 
천- 아직 단골은 아니지만 단골이고 싶은 곳이 있지 않나?
정- 인사동에 20년 된 전통찻집이 하나 있다. 비가 오는 날은 찻값의 20%를 할인해 준다. 위치도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골목에 있어 조용해 단골 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장마 때는 할인을 어떻게 해 주는지 모르겠다.
all- ㅋㅋㅋㅋㅋ
손- 나는 최근 공항면세점 단골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9월 중 휴가와 출장이 겹치는 바람에 3번이나 공항에 갔더니 때마침 면세점에서 와인 세일을 하더라. 처음에 2병을 샀는데 계속 가게 되서, 마지막엔 와인 세일을 언제까지 하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뭐랄까, 내가 스스로 뭔가 있어 보였다고 할까. 앞으로도 와인 사러 자주 올 만한, 럭셔리 단골 느낌?ㅋㅋㅋ
천- 방콕 여행 중에 알게 된 재즈 라이브 바에 빠졌던 적이 있다. ‘색소폰’이라는 곳이었는데 음악이 너무 좋아서 밤새도록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바 근처에 1달 동안 아파트를 얻어 생활했다. 막상 그러고 나서는 매일 가진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빼놓지 않고 가곤 했다. 지난번 <트래비> 방콕원정대원들에게도 소개했었고, 지금 방콕에 가도 꼭 한 번 들르는 편이다.
편- 해외에는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이 많아서 좋다. 이전에 캐나다 갔을 때 <트래비> 끝발원정대 기사에 나왔던 맛집 정보를 주로 참고했는데, 2년이 지난 콘텐츠였는데도 1곳 빼고는 다 그대로 살아 있더라. 일본도 100곳 중에 1곳 정도가 문을 닫을 만큼 한 번 터를 잡으면 계속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데 우리나라에선 금방 문을 닫거나 이사를 가는 가게들이 많아서 한국 가이드북 저자들도 고생이다.
김- 식당은 워낙 자주 없어지니 단골이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꼭 단골집이 식당일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단골집으로 생각하는 곳은 딱 두 군데다. 미용실이랑 집 앞 구멍가게. 구멍가게 주인하고는 외상도 주고받는 가까운 사이였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암에 걸리시면서 문을 닫았다. 미용실은 아직도 다니고 있다. 미용실이야말로 가장 밀접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데 아닌가?
차- 단골 만들기에 가장 열정적인 곳도 미용실인 듯.
김- 별로 안 그러던데? 남자들은 돈이 안 되서 그런가. 
차- 미용실 한 번 가면 장난 아니다.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갖다 주고. 
편 미용실 가서 비싼 것 하지? 펌 이런 거. 머리 펼 때 또 가고. ‘펌과 폄’.
all- ㅋㅋㅋㅋㅋ 펌과 폄!
손- 미용실 단골이 되고 싶은데 사람들이 내 얼굴을 기억 못한다. 정기회원권도 끊고 한 달에 2번씩 가고 그랬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처럼 ‘저희 미용실 오신 적 있으시죠?’라고 묻더라.
차- 그러니 단골집이 되려면 너무 붐비지 않으면서도 주인이 나를 기억할 만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단골 마케팅의 이모저모
 
고- 할인 혜택 때문에 프랜차이즈 브랜드숍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멤버십의 노예랄까.
차- 나도 모르게 포인트 적립율이 높은 브랜드를 찾아가게 되는 건 사실이다. 취향과는 별개로 자본의 노예가 되는 듯.
천- 항공사의 마일리지 프로그램이나 호텔 멤버십 제도도 구조화된 단골 마케팅이라 볼 수 있다. 얼마 전 항공사 마일리지를 사용해 숙박권, 뷔페 식사권을 얻었다. 객실도 업그레이드시켜  주고, 조식도 엄청 괜찮았다. 다음에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계속 그 항공사 마일리지를 모으게 된다.
김- 문제는 항공권만으로는 쌓인 마일리지를 처리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마일리지로 단골 만들기에는 성공했는데 막상 고객들이 그 마일리지를 사용하려 하면 원하는 항공권 구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이마트랑 마일리지 제휴를 확대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겠나.
양-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신형 휴대폰을 구매할 수도 있었다. 계속 제휴업체를 늘려 나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편- 그런데 마일리지로 항공 티켓을 사기가 아까울 때도 있다. 1만 마일 정도 모이면 제주도 티켓을 살 수가 있는데, 요즘 저가항공사LCC 티켓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바꾸기가 망설여진다.
고- 그래도 난 이번에 도쿄행 왕복 티켓을 3만 마일리지로 구매했다.
편-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사면 좋은 점은 있다. 티켓을 편도로 끊어도 왕복 가격의 딱 반만 받는다는 것. 돈을 주고 구매하면 그렇게 안 된다. 갈 때는 비교적 쌩쌩하니 저가항공을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면 되니 용이하다.
천- 호텔 멤버십도 탐나긴 한다. 얼마 전 지인의 멤버십을 이용해 주말에 숙박할 일이 있었는데, 객실 업그레이드 주중 쿠폰만 있었는데도 객실 여유가 있다며 주말 업그레이드를 해 줬다. 
양- 항공사나 호텔이 아니라도 단골 마케팅은 주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카페에 갈 때마다 음료 쿠폰을 찍어 주는 것도 단골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닌가. 여기저기 다 해 주니 희소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천- 동네 카페의 단골이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거기서 자주 나오는 루시드 폴 노래가 있어 그 노래가 좋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 번 말했는데 이후에 내가 카페에 들렀을 때 주인이 그 노래를 틀어 주더라.
손- 그 주인은 남자?
천- 그렇다.
김- 작업이었네ㅋㅋㅋ
편- 후배가 호주로 이민을 가서 카페를 하려는데, 기존에 그 카페를 운영하던 주인이 보증금만 받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게 레시피를 전수해 준다더라. 심지어 9시쯤엔 클라라가 오고, 탐은 라떼를 주문하고 등등 단골 리스트까지 전달해 준다고. 카페 운영이나 손님들과 익숙해질 때까지 1달 정도 주인이 함께 일하는 시스템이다.
김- 뒤통수를 쳐서 미안했던 게 아닐까? 가게를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넘겨서.
all- ㅋㅋㅋㅋㅋ 그럴지도!
편- 아무튼 사업에 있어 단골 유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예- 레시피나 손님 정보를 줄 수는 있어도 그대로 단골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했던 카페 사장님이 외모도 훈훈하고 손님들한테도 참 잘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게를 넘기게 돼 새로운 사장님한테 레시피도 다 공유하고 한 달 정도 같이 일하면서 영업비법도 전수했지만 사장님이 바뀐 뒤 얼마 못 가고 카페가 문을 닫았다. 뭐니뭐니 해도 단골을 만드는 건 사람의 힘인 것 같다.
천- 사람 이야기가 나오니 최근 제주도에 갔다가 인상 깊었던 한 식당이 떠오른다. 보성시장 안에 있는 순대국밥 집인데 만화 <식객>에도 나올 만큼 맛집이다. 그래서 가 봤더니 무엇보다 주인아주머니 태도가 맘에 들었다. 나 같은 뜨내기 손님들도 많이 올 텐데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아유, 편한 데 앉으세요. 넓은 데 앉고 싶으면 여기 앉으시고”라며 정겹게 맞아 주시더라. 메뉴는 순대국이랑 순대밖에 없는데도 오래된 단골손님들은 순대국에 순대만 넣는다든지 복잡한 맞춤형 주문을 하고 그걸 일일이 다 맞춰 주더라. 음식도 맛있는데 주인의 마음씨까지 따뜻하니, 이런 집이라면 단골을 할 만하다 싶었다.
편- 단골을 만드는 결정적인 비법은 의외로 사소한 것이다. 우리도 세심한 마음으로 <트래비> 단골들을 잘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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