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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여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11.02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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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엔 어디나 좋고, 여름엔 바다와 그늘이 좋고, 가을과 겨울엔 여수가 좋다고. 누군가 요즘의 여행을 물으면 나는 그렇게 답한다. 어느 날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아니 다른 일상들로 현재의 일상을 가만히 위로해 주고 싶을 때, 그런 날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여수가 당신으로부터 멀지 않고, 그곳에 닿으면 모든 게 부드러워진다고.
 
여수 해양레일바이크. 낮의 바다는 섬과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롭고 밤의 바다는 사랑과 약속의 대화들과 노래로 가득하다
여수 아쿠아플라넷. 흰고래가 부웅 하며 사람들 가까이 다가와서 찰칵 사진 속에 담긴다

뭐 더할 말이 필요할까.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라고만 말해도 모든 것이 다 설명된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말. 아름다운 바다와 너그러운 골목들을 만났다는 말. 남쪽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들 앞에서 행복했다는 말. 그냥 생각나서 걸었다 말하고 끊은 밤의 전화가 있었다는 말. 조금 힘겨운 것들도 있지만 잘 견딜 것이라는 말.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함께 오고 싶다는 고백. 그 모든 것들이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라는 표현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여수를 목적지로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을 말하다가,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라고. 노래를 빌려야만 말할 수 있는 마음이 내게 있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그때 당신은 무슨 대답을 할까. 조금 놀라게 될까? 아니면 당신은 내 마음을 모른 척 내게 다시 물어 올까. 
“지금 여수는 어때요?”
 
발로 페달을 밟아서 달리는데, 바다가 너무 가까워서, 내가 달리는 게 아니라 바다가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수에 왔습니다”
 
여수는 생각보다 멀지 않아요. 평소보다 더 자고 느긋하게 출발해도 대부분 점심 전에 닿을 수 있어요. KTX로 서울에서 3시간. 전국 어디에서 출발해도 4시간 이내에 여수가 있는 것이죠. 되도록 점심 무렵에 닿을 수 있도록 일정을 정하면 좋아요. 남도에 왔으면 최소 두 끼는 먹고 가야 하니까요. 그것이 맛있는 음식에 대한 예의잖아요. 한정식은 아무 식당이나 다 좋아요. 기본이니까요. 입 안쪽을 짭조름한 맛으로 조여 주는 간장게장, 잘 숙성되어 반찬으로도 안주로도 좋은 서대회, 매콤하면서 시원하고, 건강해지는 기분을 주는 장어탕, 담백하고 부드러운 갯장어 샤브샤브, 각종 회, 사과처럼 아삭거리는 돌산갓김치. 그런 음식들이 여수 어디에서나 맛있고 좋아요. 여수가 주는 또 다른 행복인 셈이죠. 

기차역을 나오면 가까이 바다가 보여서 처음으로 놀라요. 도시에 온 것이 아니라 바다에 온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고요. 그런 작은 기쁨으로 여수는 시작되는 거예요. 엑스포 공원을 천천히 걷다 시멘트 저장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스카이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남해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먼 바다일수록 원액처럼 빛나고 가까운 해안으로 수면이 새의 날개처럼 반짝이며 출렁여요. 멀고 잔잔한 것들은 깊은 아름다움을, 가깝고 출렁이는 것들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죠. 그 전망대에 세계에서 가장 멀리까지 소리를 들려 주는 파이프 오르간*도 있어요. 어디까지 소리를 들려 줄까? 최대 6km 밖에서도 들린다 해요. 자전거로 20분 이상 달려야 하는 먼 거리까지 들리는 것이죠. 그 소리도 가까이 들으면 출렁일 것이고 먼 곳에서 들으면 잔잔한 속삭임처럼 들려올 거예요. 
 
*파이프오르간 연주 | 독일의 오르간 명장 헤이 오그겔바우가 제작해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오르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지만 현재는 가장 작은 소리로 연주 중이다. 12월18일까지 금·토·일요일만 하루 5회 20분간 연주한다.
 
 

여수에 온 것이니, 어느 식당에 간들 감탄하지 않으랴. 그저 다 맛있는데, 여행 무렵에 더 제철인 음식을 찾으면 더 좋다. 이번 여행 때는 전어가 제철이었다 
 

스카이타워 전망대에 올라서 바다를 바라보는 일. 몸이 높은 곳으로 올라왔을 뿐인데, 마음도 함께 높아져서, 저 먼 바다에까지 마음이 가 닿는다
 

여수는 항구가 깊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유람선이 다닌다. 한려수도, 오동도 등으로 떠나려는 유람선과 꽃무늬 외출복을 입고 줄지어 선 여행객들의 모습
 

바닥이 투명한 케이블카를 타고, 여수의 바다 위를 날다 보면, 누군가 기념사진을 찍자고 말하게 된다. 닿을 듯 가까이, 투명하게 흘러가는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발이 기념사진의 주인공
 

오동도에 동백이 가득 피는 날. 그 붉은 소식들 앞에 직접 서서 보라. 꽃이 왜 피는 것인지, 어떤 꽃은 왜 이토록 붉은지, 여수를 왜 아름답다고 말하는지 쉽게 알게 된다
 

레일바이크가 좁다란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일상을 날려 버릴 듯한 바람이 이마에 기쁨을 주고, 둥근 벽돌 위에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사인들이 눈동자에게 다시 기쁨을 준다
 

국내 최초로 바다를 횡단하는 케이블카도 있어요. 돌산에서 자산공원까지 1.5km 거리를 잇는 총 50대의 케이블카. 바닥이 투명한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면 물 위를 날아서 가는 것처럼 느껴져요. 신발이 젖을까 발을 잠깐 들어 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낮에는 깊고 먼 바다 위를 날고, 해 질 녘에는 붉은 노을 속을 온몸으로 통과하듯 지나고, 밤이 오면 야경에 스며들 듯 날아요. 여수는 그렇게 바다에 있고, 그 바다는 가장 아름다운 해상 국립공원 두 개와 다시 닿아 있어요. 금오도, 거문도, 하화도 등의 아름다운 섬들이 가득 있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잊지 않으려고 바다에 표시해 둔 징표처럼, 섬들은 가장 아름다운 바다에,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있어요.  

멀리 섬들을 바라보며 날아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오동도가 멀지 않아요. 방파제 길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오동도는 동백꽃이 가득한 섬이에요. 당신도 잘 알겠죠. 1월에 핀 꽃이 3월에 만개하고 그때 섬은 그 자체로 가득한 한 송이의 붉은 꽃이 된다고 해요. 그 무렵 나무는 그 붉은 꽃들을 지상에 선물처럼 내려 놓는데, 꽃은 떨어진 채로도 며칠 동안 생생하게 붉음을 유지한다고 하고요. 동백꽃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상으로 장소를 옮겨서 피는 것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바다 옆으로 달리는 레일 바이크 체험도 해 볼 만해요. 규제가 풀리며 전국에 레일 바이크가 수십 군데 있지만, 여수 해양 레일 바이크는 전 구간을 바다 옆으로 달린다는 점이 특이하죠. 630m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묘한 긴장감이 있어요. 터널이 생각보다 좁거든요. 그게 또 매력이에요. 좁은 터널 속을 속도감을 느끼며 달리는 기분. 정말 달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 어두운 터널 벽으로 예쁜 네온사인들이 빛나고요. 터널을 나오면 다시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여요. 터널을 통과해 나온 뒤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 아마 당신도 좋아하게 될 거에요. 밤의 바다를 보려고 왔지만, 낮의 바다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밤에 아름다운 것들은 낮에도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돌산공원에 오르면 여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섬들과 섬 사이로 여수의 바다가 흐르는데, 여수의 바다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더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본 여수를 당신께 그렇게 설명하겠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한마디일 것이다.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에 와 있다는 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은 그 한마디 안에 있고, 당신이 들어야 할 말도 그 말 속에 다 있는 셈이다. 당신께 전화를 하기 전까지 내가 있던 여수의 밤. 밤의 바다에 닿아 반짝이는 불빛들. 멀리 두고 왔다고 믿었던 그리움이 사실은 몰래 내 걸음을 따라와서는, 환영처럼 저기서 밤 바다에 닿아 흔들리는 것. 그래서 내가 저 불빛들을 보고 당신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저마다의 불빛을 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이라고. 

바다의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밤의 악사들. 둥글게 모여 앉아 눈 감고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 낭만포차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단축 다이얼 1번을 눌러 잘 지내냐고 묻는 사람들. 오래도록 바다를 응시하는 여인들. 그것은 여수에 취해서 하는 행동. 여수의 아름다운 밤이 그대에게 용기를 주는 것. 여보세요.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에 와 있어. 당신과 가장 멀리 있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 그 먼 거리를 가득 그리움으로 채우고 싶어서 달려왔어. 와 보니 참 아름다운 도시여서, 언젠가 당신과 함께 오면 좋을 것 같아. 당신과 가만히 여수를 걸을 때, 그때 그 밤은 더 한없이 아름다워질 테니까.  
 

▶travel info 여수
 
Place
백천선어마을
| 가을이면 민어회와 민어구이를 찾는 사람들로 붐비는 민어회 전문점이지만 다양한 생선 구이, 남도 백반, 서대회 무침 등이  맛있다.
주소: 전남 여수시 공화동
전화:  061 662 3717 
 
여수 스카이타워
운영시간: 10:00~22:00(연중 무휴) 
요금: 성인 3,000원
홈페이지:  www.skytower.kr
 
여수 아쿠아플라넷
운영시간: 10:00~19:00 
정보: 아쿠아리움, 얼라이브 뮤지엄, 4D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권을 구입하면 경제적이다.
요금: 아쿠아리움 성인 2만3,000원, 얼라이브 뮤지엄 9,000원, 4D 5,000원, BIG 3 패키지 3만1,000원 
홈페이지: www.aquaplanet.co.kr 
 
여수 해양레일바이크
위치: 여수 만성리해수욕장  
운영시간: 09:00~18:00 
요금: 2인승 2만원, 3인승 2만5,000원, 4인승 3만원
홈페이지:  www.여수레일바이크.com(인터넷 예약 가능)
 
여수 해상케이블카 
위치: 여수 돌산과 오동도 사이 운행 
요금: 8인승 일반 캐빈 왕복 성인 1만3,000원, 편도 1만원, 5인승 크리스탈 캐빈 왕복 성인 2만원   운영시간: 9:00~22:00  
전화:  061 664 7301(예약 없이 현장발권만 가능)
홈페이지:  www.yeosucablecar.com
 
글·사진 Travie writer 최성규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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