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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IR 모든 영화는 여행이다] 온 국민 신경쇠약 프로젝트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6.11.3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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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가 불에 타고 있다. 거실에는 저마다 사연이 가득한 사람들이 소파를 꿰차고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 낸다. 정작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연락이 닿질 않는다. 그가 있어야 이 엉망진창인 상황이 해결될 텐데. 이러니 신경쇠약에 안 걸릴 수가 있나. 

주인공 페파는 연인이었던 이반에게 전화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던 페파가 열심히 그의 소식을 수소문하는 동안 그녀의 아파트에 테러리스트와 사귀었던 친구, 집을 구하러 온 청년과 그의 여자친구, 심지어는 이반의 부인(이반은 유부남이었다)까지 들이닥쳐 복닥복닥 소란해진다. 이곳저곳에서 사연 많은 사람들의 방언이 터져 나오고, 사변처럼 늘어지는 스토리를 따라잡는 것은 우리의 몫. 갑작스레 등장해 정신을 쏙 빼놓는 이들의 존재는 마지막에 가서야 등장 이유가 밝혀진다. 이별을 통보한 이반이 타는 비행기에 테러리스트가 테러를 준비하고 있고, 청년은 이반의 아들이었으며, 이반의 부인은 주머니에 품은 총으로 이반을 죽이려는 것.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이반의 목숨을 구한 페파는  다시 만나자는 이반의 제안을 ‘이제 늦었다’며 거절한다.

맥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탕이나 다름없다. 딱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격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특유의 원색적인 색감까지 더해지니 편안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스토리의 핵심인 페파가 이반에게 매달리는 이유 또한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려준다. 내내 답답스럽다가 페파가 이반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고백하는 마지막 신에서야 모든 의문이 풀린다. 

지난 세기의 영화를 굳이 들고 나온 것은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영화 속 세계가 우리의 현 상황처럼 느껴져서다. 우리도 모든 의문이 풀리는 순간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이쪽저쪽의 이야기를 듣느라 머리가 아프다. 답답스럽다. 

더듬더듬 짚어야 이어지는 줄 알고, 들썩들썩 뒤적여야 혼탁한 줄 알게 된다. 히스토리가 가진 성격이다. 즐거워야 할 연말에 황당무계한 일들을 겪고 있는 우리가 아마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이것일 것이다. 흩어져 있는 줄 알았던 것들이 결국은 하나의 매듭에서 시작됐다는 것 말이다. 여러 인물이 콕콕 박힌 관계도는 복잡하면서도 선명하다. 구심점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상하좌우로 쭉쭉 이어져 나간다. 시간과 공간을 모두 넘나든다. 때로는 이승과 저승도 넘나든다. 이러니 신경쇠약에 안 걸릴 수가 있나 말이다. 다행인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곁가지만 보였던 것이 더듬더듬, 들썩들썩하며 중앙까지 선명해졌다는 것이다. 드디어 결말에 다다른 것 같다. 부디 영화처럼 ‘깔끔명료명쾌’하기를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Women on the Verge of a Nervous Breakdown)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장르: 코미디, 드라마 | 90분
출연: 카르멘 마우라(Carmen Maura)
 
*글을 쓴 차민경 기자는 <트래비>와 그 자매지인 <여행신문>의 기자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고 본인이야말로 결말에 다다라 12월 호를 마지막으로 ‘On Air’를 마치게 됐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하시길.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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