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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원정대] 청양 장곡사-장곡사가 결코 작지 않은 이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11.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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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장곡사
 
연말에 가까워져서일까. 이른 시간부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히 집을 나섰을 테다. 산속 깊숙이 자리한 이곳, 장곡사(長谷寺)에 오르기 위해서. 아마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아들딸을 위해, 또는 아픈 가족을 위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불상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읊조리던 그들의 뒷모습에서조차, 간절한 마음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듯했다.
 

ⓟ배주한/ 상대웅전에서 바라본 장곡사
 
청양 칠갑산 기슭에 위치한 장곡사는 작지만 특별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대웅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쪽에 위치한 상대웅전은 고려시대, 아래쪽에 위치한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 때 지어졌다. 대웅전이 왜 두 개일까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상대웅전은 부처님의 세계로 스님이 수행을 하는 공간, 하대웅전은 중생들의 세계로 일반 신자들이 불상을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혹은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너무 붐빈 탓에 대웅전을 추가로 지었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장곡사는 예로부터 이름난 소원성취 명소로 통했다.
 
장곡사가 가진 건 대웅전뿐만이 아니다. 850년에 창건된 장곡사는 두 점의 국보와 네 점의 보물을 보유한, 불교의 보물창고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을 포함해 각 대웅전 안에 있는 철조약사여래좌상 석조대좌, 금동약사여래좌상 등이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됐다. 상대웅전엔 총 세 개의 불상, 하대웅전엔 한 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그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불상은 하대웅전에 오롯이 홀로 자리한 금동약사여래좌상이다.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 부처님.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고, 왼손에는 동그란 밥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너그러움과 강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대웅전 내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직접 불상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소원이란 건 굳이 증거를 남기지 않더라도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니까. 카메라를 드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빌었다. “새해엔 더 건강하게 해 주세요.” 수없이 들으셨을 진부한 소원이었겠지만, 웃음기 거의 없이 단엄했던 부처님의 표정에는 아주 잠깐 은은한 미소가 감도는 것 같았다.   

장곡사에 대해 설명하던 문화해설사님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림 견본 하나를 보여 주셨다. 장곡사의 또 하나의 보물, 국보 300호인 ‘미륵불괘불탱’이다. 미륵불을 중심에 두고 6대 여래, 6대 보살 등 여러 인물들이 양옆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그림은 주로 절에서 큰 의식이 있을 때 법당 앞에 걸어 놓는 상징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로 5.99m, 세로 8.69m라는 크기가 말해 주듯, 미륵불괘불탱 뒤에는 상상 이상의 공이 담겨 있다. 조선 현종 때 다섯 명의 승려 화가가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무려 5년에 걸쳐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 그림을 모사하는 데만 약 3억원의 비용이 들었을 정도라니,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됐을지 지레 감을 잡기조차 어렵다. 미륵불괘불탱은 아쉽게도 장곡사에서 직접 볼 수 없는데, 어마어마한 크기 탓에 다른 장소에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실제로 이 그림을 보려면 몇 시간이나 차를 타고 경남 양산 성보박물관까지 가야 한다고 말하는 해설사님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한가득 묻어났다.

장장 5년 동안 그림을 완성한 승려가 있다면, 불심 하나로 바다를 건넌 승려도 있다. 장곡사 내 범종루에 매달린 법고와 관련된 이야기다. 모르고 보면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북이지만, 사실 이 북은 흔한 소가죽이 아닌 코끼리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제작된 연도나 과정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장곡사의 한 승려가 손수 가죽을 구하러 인도로 건너갔다고 전해진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제야 절 한 쪽에 매달려 있는 법고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다. 지금이야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옛날 옛적 가죽을 구하느라 해외로 나간다는 건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말이다. 법고는 더 이상 울리지 않지만, 여기에 담긴 이름 모를 승려의 노고가 마음속으로 울려 퍼졌다. 어렵게 구한 가죽을 단 한 점이라도 낭비할까 최대한 빳빳하게 편 듯한 북의 이음새, 수많은 손길을 거쳐 마침내 가운데가 뻥 뚫린 구멍까지도. 장곡사는 절대로, 하루아침에 지어지지 않았다.
 
범종루에 있는 법고. 코끼리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장곡사를 찾은 사람들의 소원들이 쌓여 있다
장곡사 앞에 버티고 선 장승들
 
장곡사 | 칠갑산 골짜기에 위치한 아담한 사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두 채의 대웅전을 갖고 있으며,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에 각각 불상을 모시고 있다. 산 정상까지 완만한 등산길로 이어져 있다.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  
전화: 041 942 6769 
 
글 강혜림, 김예지 기자  사진 이유현
 
글·사진 트래비아카데미 충남 원정대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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