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원정대] 태안 꽃지 해변-스물셋, 모든 존재의 이유
[충남 원정대] 태안 꽃지 해변-스물셋, 모든 존재의 이유
  • 트래비
  • 승인 2016.11.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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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꽃지 해변
 
‘망했다.’ 꽃지 해변에 도착한 순간 든 생각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까지 간직했던 일말의 기대가 산산조각나고야 말았다. 변산반도의 채석강, 강화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의 3대 낙조’로 꼽히는 안면도 꽃지 해변을 찾은 의미에도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태안 꽃지해수욕장.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육지로 연결된 할미 할아비 바위로 걸어가는 사람들


하지만 의미 없는 체념은 금방 내려놓았다. 해변을 천천히 걷고 있으니 낙조 이상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자갈돌들, 짧고 가는 다리로 해변을 어슬렁거리던 갈매기들,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대던 사람들까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꽃지 해변에 존재했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상념에 빠져 있던 나도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할미 할아비 바위까지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갈과 따개비로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두 바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떠올려 보았다. 때는 신라 흥덕왕 때, 해상왕 장보고가 안면도에 기지를 두었는데 기지사령관이었던 승언과 그의 아내 미도는 유난히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다 출정 나간 승언이 돌아오지 않자 미도는 바다만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다가 죽어서 할미 바위가 되었고, 바다 쪽으로 조금 더 나간 곳에 있는 큰 바위는 자연스레 할아비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러고 보니 바위에 듬성듬성 자라난 소나무들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노인의 모습 같기도 했다. 만조 때는 바다 위 섬이 되었다가 물이 빠져나가면 한몸이 되는 할미 할아비 바위가, 바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퍽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걷다 보니 어느새 바위 끝이었고, 고개를 돌려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이 선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시각각 연보라색으로,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위로가 다가왔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비록 구름이 잔뜩 끼고, 유난히 추웠던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꽃지 해변의 일몰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날의 낙조와 비슷하지 않을까. 스물셋. 자꾸 ‘어느 쪽이게?’라고 묻는 아이유의 노래 ‘스물셋’처럼 갈팡질팡하게 되는 나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좀 더 방황할지, 주어진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른다고 해도 옳은 선택을 한 건지, 맞는 길이라면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따위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지만 당장 눈앞이 안개 낀 듯 불확실해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뜻밖의 행복이 찾아온다고. 그 행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참으로 진부한 위로지만 진부함도 여전히 나름의 효력을 갖고 있기에 나는 이 위로를 당신에게도 건네고 싶다.  
 
오래 바라보면 세상 모든 것이 잠잠해진다. 파도도 그러하다
할미 할아비 바위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안전하고 즐거워 보였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할미 할아비 바위

안면도 꽃지 해변 | 안면도의 여러 해변 중에서도 특히나 으뜸 장관으로 꼽히는 꽃지 해변의 할미 할아비 바위. 만조 때 섬이 되었다가, 간조 때는 육지와 이어진다. 
 
주소: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산 27 일대
 
글 장이슬  사진 신종호
글·사진 트래비아카데미 충남 원정대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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