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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반짝이는 흑진주, 몬테네그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7.01.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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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발칸
Bosnia-Herzegovina & Montenegro & Serbia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를 차례로 다녀왔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던 한 나라가 분리, 독립을 거쳐 세 나라가 되었다. 이 작은 나라들에 무엇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수없이 깃들어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답하겠다. 복잡한 정치 상황, 슬픈 전쟁의 역사를 거쳐 지금은 제 빛을 담담하게 발하고 있는 세 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발칸의 흑진주, 몬테네그로
Montenegro
 
보스니아 국경을 넘어 몬테네그로로 가는 밤, 하늘의 별은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반짝였다. 별빛은 산과 하늘의 경계를 가르고, 험준한 산길을 돌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수백 개의 별이 빛나는 몬테네그로에서 이틀 밤을 지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말했단다. “몬테네그로는 육지와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다.” 자연을 빼고 몬테네그로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드리아해에 면해 있고 내륙으로는 험준한 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자연에는 다양하고 희귀한 종의 식물이 자라났고 동물들이 둥지를 틀었다. 애리조나 협곡 다음으로 깊은 몬테네그로의 타라(Tara)계곡과 타라강 일대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타라강의 물은 ‘유럽의 눈물’이라고 불린다. 강어귀에 앉아 두 손으로 그러모아 마셔도 될 정도로 맑아서다. 

산 높은 곳에는 검은빛의 곰솔나무(Blackpine)가 서식해 전체가 검게 보인다. 이는 ‘검은 산’ 이라는 뜻을 가진 나라 이름의 기원이 됐다. 몬테네그로는 작은 나라다. 북쪽에서 남쪽까지의 직선거리는 150km. 달려서 여행할 수 있다는 현지 사람들의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매운 법. 매혹은 짙고, 감동은 넘친다. 
 
이반산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축조된 성곽의 행렬
코토르의 랜드마크인 성 트리푼 성당의 왼쪽에는 개축된 연도가, 오른쪽에는 현재의 연도가 표기되어 있다 
 
발칸의 베네치아, 코토르 Kotor

코토르는 피오르 해안가의 성곽 도시다. 뒤로는 이반산 Mt. Ivan(우리말로 풀면 요한산Mt. Jhon)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앞으로는 아드리아해의 푸른빛이 넘실대는 코토르만(Bay of Kotor)이 펼쳐져 있다. 해발 260m의 이반산 꼭대기까지 삼각형 형태로 굳건하게 이어진 성곽을 보면, 이 지역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가늠할 수 있다. 꼭대기까지 4.5km의 길이로 이어진 성곽은 5세기 동고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축된 것으로 전해진다. 14세기 이후 베네치아 통치 시절 도시의 요새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코토르를 발칸의 베네치아라고 부르는 이유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받은 한글 지도를 들고 여정을 시작했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세 곳으로 성곽을 두른 방위별로 쉬쿠르다(Skurda) 계곡이 있는 북쪽, 바다를 바라보는 서쪽, 그리고 남쪽에 문을 냈다. 중세 시대로 넘어가는 타임슬립의 관문은 바다 방향의 서쪽 문으로 정했다. 9세기에 지어졌지만 지진으로 무너져 16세기에 복원된 문이다.

요새 안으로 들어서자 돌바닥이 반질반질 빛나는 광장 위로 우뚝 솟은 시계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절 건축한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에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었나 보다. 시계탑 주변으로 무기고, 작은 망루, 군인들과 지도자들의 집무실과 주거지, 감옥, 극장 등이 빙 둘러섰다. 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감옥에서 커피를 팔고, 집무실은 박물관이 됐고, 극장은 카지노로 변했다. 
 
코토르 구시가지 내에는 어딜 가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발코니가 아름다운 귀족의 집, 현재는 극장으로 쓰인다
코토르의 지배계급들을 형상화한 청동 부조, 구시가지 내 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전부 떼서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발코니 장식
 

광장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골목이 혈관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하게 뻗어났다. 가장 좁은 곳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을 정도의 폭인데 사람들은 이 길을 두고 ‘렛미패스(Let Me Pass·지나갑시다)’라는 별명을 붙였다. 중세시대 유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관광지에는 주민들이 살아간다. 창밖으로 빨래를 널고, 발코니에 화분을 기른다. 코토르의 또 다른 주인은 고양이들이다. 광장, 교회 문 앞, 성당 안, 노천 식당의 식탁 아래 어디든 자리를 잡고 졸고, 음식을 구애하고, 몸을 긁고, 애교를 피운다. 코토르의 수많은 기념품에도 이런 모습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시계탑에 올라간 고양이, 성곽을 등에 받친 고양이, 망루를 지키는 고양이 등 다양한 모습이다.

구시가지 내에는 로만가톨릭과 세르비아 정교회를 포함한 9개의 교회, 5개의 수도원, 귀족들의 궁, 병원, 극장,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다. 이 중 코토르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성 트리푼 성당과 세인트루크 성당. 성 트리푼 성당은 9세기, 마을을 지키는 수호성인인 성자 트리푼을 기리는 작은 신전이었던 것을 1166년 원형을 그대로 두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축성한 것이다. 16세기 지진으로 무너졌고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이곳에는 성 트리푼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세인트루크 성당은 작지만 의미 있는 곳이다. 12세기 건축 이래 로만가톨릭 성당으로 쓰이다가 17세기부터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 됐는데, 19세기 초 두 종교가 함께 미사를 볼 수 있는 화합의 상징이 되었단다. 
 
검고 거친 이반산을 병풍처럼 두른 페라스트의 전경
성모 성당이 있는 섬의 전경
성모 성당 내부는 은 동판화와 이코나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야기,
페라스트Perast

코토르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20분을 달리면 작은 항구마을에 닿는다. 마을의 이름은 페라스트.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인공섬 때문이다.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탔다. 뱃놀이 하듯 천천히 달리길 5분, 그림 같은 섬의 풍경 속으로 발을 디뎠다. 

섬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인공섬을 조성하기 전 원래 이 자리에는 암초 하나가 있었는데, 어부 형제가 이곳에서 성모화를 발견했단다. 이를 신의 계시로 여긴 주민들은 육지에서 돌을 날라 암초 주변으로 쌓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섬 위에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지었다. 성당 제단에는 암초에서 발견된 성모화를 모셔 두고, 성당 벽과 천장에는 당대의 유명한 바로크 화가에게 의뢰해 성모의 생애를 표현한 68개의 유화를 그려 넣었다. 

성당을 완공하기까지 무려 200년, 세상에 이토록 정성을 다한 성당이 또 있을까? 성모 성당의 몬테네그로 이름은 ‘슈크르피엘(Skrpjel)의 성모’. 슈크르피엘은 암초라는 뜻이다. 바위 위의 성모에게 바닷가 사람들은 그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위기에서 벗어나 목숨을 부지한 것에 대한 감사도 전했다. 성당 벽면에 걸린 은 동판화는 사람들의 신을 향한 염원과 감사를 여실히 보여 준다.

성당 내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 받는 자수 작품이 있다. 한 여인이 바다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길 기원하면서 25년간 비단, 은실, 금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천사와 성모를 한 땀 한 땀 수놓았다. 액자 속 그녀의 머리칼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금발에서 회색빛으로 변해 간다. 사람들은 숙연해지는 한편, 그 아름다움 앞에선 잠시 넋을 잃는다.
 
TRAVEL INFO
 
FOOD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세르비아에 비해 음식이 맛없다. 특징이 있다면 엄청 짜다는 것. 귀한 손님을 대접할수록 음식을 짜게 내는 반갑지 않은 전통이 있다. 구시가지에 몰린 많은 레스토랑들의 주 메뉴는 생선, 파스타, 닭 요리, 고기 요리 등.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에디터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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