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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아의 여행과 인문]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7.02.0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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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1952∼)은 우리나라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고 우겼다. 물론 우리나라의 섬 3,358개 중에 그래도라는 섬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시인이 말하기를, 불행한 일이 있을 때, 실망했을 때, 살기 힘들 때, 꿈과 소망이 산산조각 나도 새로운 긍정을 만드는 섬, 그래도 덕분에 사람들은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산다한다. 그래 맞다. ‘그래도 내 새끼’, ‘그래도 내 엄마’, ‘그래도 내 남자', ‘그래도’ 때문에 지금껏 내가 살아있다. 

폭풍이 몰아치는 섬에서 꼼짝없이 발이 묶인 채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뿌리째 뽑힌 야자수가 종이비행기처럼 날아다니고, 배들이 플라스틱 공보다 가볍게 파도에 들썩인다. 폭풍의 섬에서는 비바람이 주인이다.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부수고 파헤쳐버린다. 대자연의 억센 힘 앞에서 사람이란 참으로 별것 아니고 연약하기 짝이 없다. 압도적이며 공포스러운 힘이다. 

폭풍이 다가올 때는 섬에 있다가도 서둘러 뭍으로 나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되려, 비바람이 거세질수록 작은 뗏목이라도 띄워 그래도로 들어간다. 그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은 놓지 않고, 작은 사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두 손을 구부려 마주 쥐고 바람을 막아낸다. 

살다보면 아픔의 강도는 달라도, ‘사는 것이 지옥'이라는 말이 실감 날 때가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다지 대수롭지도 않고, 그럴 수도 있는 일들이지만 그 순간순간만큼은 내 키의 스무배가 넘는 큰 파도와 마주한 듯했다.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내가 거대하고 강한 세상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기만한 시간들이었다. 

고3 시절의 6월,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남은 삶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리고, 가루가 되어 공중에 흩뿌려진 듯한 기분으로 몇 개월을 시체처럼 산 적이 있었다. 23살에는 8시간 이상 되는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간병인도 없이 한 달 동안 꼬박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바스락 거리는 목면천 이불 한 장을 덮은 채 한기가 가득 내려앉은 수술대기실에 누워 ‘자면 안돼, 자면 안돼’ 낡은 전등처럼 깜빡이는 정신줄을 잡고, 마취가 깰 때까지 견뎌야 했던 그 춥고 긴 시간을 기억한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던, 가난보다 외로운 것이 더 힘들어 매일 밤 울며 잠들었던 미국에서의 일년 반을 떠올린다.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이었던 미주리주 캔사스 시티에 살았는데, 영화에서 봤던 그 모양 그대로 토네이도 한 그루가 우리 집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두렵다는 생각보다 차라리 다 그만두고 도로시처럼 저 회오리에 휩쓸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냈다. 힘겹지만 삶을 이어냈다. 그래도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는 이 섬을 빠져나간 사람들이 흘리고 간 희망의 조약돌과 가냘프지만 질긴 생명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그래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인 이유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1952∼)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후략
 
 
박재아
뚜르드엠 (Tour De 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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