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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아의 여행과인문] 떠나야만 하는 여자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7.03.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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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한민국의 91.2%는 여행 중이다. 작년 총 인구의 38%인 2,238만3,190명의 한국인이 해외에 나갔다. 이제 막 빗장이 풀린 중국이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여행자유화 조치가 발효된 지 18년이나 지난 우리나라 해외여행자 수의 증가폭(전년 대비 20.1%)은 기이할 정도로 가파르다. 

국내 2050 남녀 직장인에게 2017년 여행 계획을 묻자(익스피디아), 전체 응답자 중 91.2%가 내년에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여행 계획이 없는 사람은 8.8%에 불과했다. 특히 20~30대 여성들이 여행업계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대 여성의 해외여행 의향이 90.0%로 가장 높았고, 여행에 대한 만족도도 5점 만점에 4.03점으로 압도적 1위였다. 

인터파크투어가 지난 해 항공권을 구매한 고객을 성별·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해외 여행객 중 여성의 비중이 54.4%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0~30대 여성이 전체의 45.8%로 20대 여성은 23.2%, 30대 여성은 22.6%를 차지했다. 자유여행상품 위주인 내일투어의 경우도 여성 비중이 최근 3년 동안 60% 이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으로 높았다. 기간을 짧게, 자주 가는 편이며, 주말을 끼고 하루 이틀 연차를 써서 다녀올 수 있는 일본, 동남아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소비자전문 리서치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가 2016년 1월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여행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층으로, 이들의 지출의향지수(EII; Expenditure Intention Index)는 15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20대 여성은 지난 1년간 전년보다 가장 많이 지출한 집단(143)인 동시에 향후 1년의 지출의향도 가장 큰 집단(157)이다. 20대 여성이 국내(129), 해외(139) 모두 압도적인 소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여행신문)

여성의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고, 먹고 놀고 즐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라는 장이 생기면서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급증한 것도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다. 익스피디어가 꼽은 세 가지 여행 키워드는 ‘자신을 위한 가치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인 포미(For Me)족’,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먹방족’,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갭이어’족이다.

나의 20대의 여행은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본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청년인구의 반 이상은 다녀온 듯한 유럽배낭여행은 커녕, 출장이 곧 여행이었다. 아직까지도 '진짜 여행’으로 꼽는 것은 29살 4월의 #일본 #포미 #먹방 여행이었다. 자리를 오래비울 수 없으니 가까워야 하고, 여자 혼자 가기에는 중국, 동남아보다는 일본이 아무래도 안심이 됐고, 물가가 비싸지만 나 혼자 먹고 놀 만큼은 벌던 직딩이었던 지라 일본이 가장 만만했다. 세 번 정도 일본을 다녀온 후 뜬금없고 갑작스럽게 결혼 발표가 이어졌다. 29살 11월에 장렬히 결혼식을 치르고 다시 나의 ‘출장이 곧 여행'인 패턴으로 복귀했다. 

2~30대 미혼여성의 잦은 해외여행을 과시적,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라며 고깝게 보는 시선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결혼 전 나의 잦은 홀로 여행도 “나 잘살고 있어” “남친 없어도 괜찮아”같은 자기 다독임, 지인들을 향한 안부전달 성격이기도 했지만,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할 시기이기에 선택한 것이 여행이었다. 나의 답은 결혼이었고. 그 여행을 다녀왔기에 가능한 결심이었다. 

‘또 하나의 문화’ 최윤정 사무국장은 여성의 여행에 대해 “자신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여행은 직장을 옮기거나 결혼, 출산, 폐경 등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여성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이자 이들이 마주하는 중요한 생애주기가 가져오는 큰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과도 같은 의미로 해석해도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이 남성이라면, 여자 친구나 아내가 혼자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면 환전을 충분히 해서 손에 꼭 쥐어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내주시길 바란다. 여자는 아무 이유 없이 떠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감성적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여자가 일단 결심을 하면 남자가 담배를 끊는 것만큼 지독하고 장렬하다. 그녀가 바로 지금 그렇게 말했다면, 꼭,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박재아
인도네시아관광청 서울지사장
 
*박재아는 주한FIJI관광청 대표를 비롯해 사모아관광청 대표, 남태평양 관광 기구 자문 및 모리셔스, 태즈매니아, 타히티 등 섬 지역 홍보·마케팅을 10년 이상 담당했다. 여행을 사회학적, 통섭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글을 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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