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 50일의 자연이 준 선물
일상 여행, 50일의 자연이 준 선물
  • 김예지
  • 승인 2017.05.08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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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그는 떠났다. 
50일 동안, 홀로, 자연으로.
다시 돌아와 마주한 일상은 
더 이상 탈출의 대상이 아니다. 
여행이다.

 
 
매일 같은 날을 살고 있었다. 그저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에 무덤덤해져 가던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일탈이 감동 그 자체였단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너무도 놀라운 경험이라고 했다. 혹했다. 도대체 어떤 일탈이길래 감동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웠을까.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설렘 가득한 문장 문장에 홀려, 당장 ‘답장’ 버튼을 눌렀다.  
 
여행 시작 후 첫 번째로 마주한 자연, 빅 벤드 국립공원의 리오그란데강
 
차가운 콘크리트를 벗어나
 
이름은 남규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Charlotte)에 산다.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를 그리거나 담기를 좋아하던 그는 사진작가가 됐다. 주변의 사람과 풍경을, 음식과 제품을 찍으며 숨 가쁘게 지내던 그는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점점 늘어나는 상업적 촬영 스케줄을 기계처럼 소화해 내며 성공과 돈, 명예 따위에 연연해 발버둥 치는 일상이 버거웠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차가운 콘크리트 정글’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확신은 없었다. “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 잃을 가능성은 99%에 얻을 가능성은 1%에 불과했죠. 그런데 그 1%에 끌리더라고요.” 모든 걸 제쳐두고 떠난다는 게 쉽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어렴풋한 자신이 있었다. 어딘가 새로운 곳에 답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믿음이랄까. 결국 그는 출근 대신 탈출을 감행했다. ‘다 내려놓고 떠나자, 딱 50일만.’
 
아치스 국립공원의 아침. 태양과 함께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모든 자연은 인상적이었기에

목적지는 자연이었다. “도시 사회에선 늘 채워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무리 답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을 택했다. 인간이 만든 문명에 답이 없다면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대자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50일’에 얽힌 사연 역시도 단순했다. “50은 큰 숫자이기도, 작은 숫자이기도 하죠. 한 달은 너무 짧고 두 달은 너무 긴 것 같고. 그렇다고 45, 46 같은 숫자는 너무 복잡해 보였어요. 50이라는 숫자를 떠올렸을 때 ‘그래, 이거다!’ 싶었죠.”

여행은 철저히 혼자였다. 텍사스주 빅 벤드 국립공원을 시작으로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 데스밸리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 미국 전역의 20개가 넘는 국립공원들을 일주했다. “미국 국립공원이라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요세미티, 그랜드 캐니언 등 유명한 곳들만 떠올리며 관광지로 생각하지만, 사실 국립공원이란 그 어떤 곳보다 잘 보존된 자연을 뜻하죠.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숨겨진 광경들이 너무도 많았어요.” 남 작가는 걷고 뛰고 절벽을 올랐다. 바람을 맞고 물에 젖었다. 눈으로 코로 귀로 피부로, 닿을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자연을 만났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자연은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모든 자연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래도 한 가지만 꼽아 달라 하자, 고민 끝에 남 작가는 유타주에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을 말했다.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그 일출이 너무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어요.” 굳이 하나만 꼽아 달라 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은 건,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한가득 보내 왔을 때다. 모든 자연은 눈부시게 빛이 났다.
 

●50 Days on the Road
길 위에서 만난 자연

여행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 했더니 남 작가는 그러려면 밤샘 인터뷰를 해야 한다 했다. 정말로 밤을 지새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대신 그가 만난 자연들을 보여 달라 했다.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Day 13
공원 입구에서 뿔 달린 염소 가족을 만났다. 도심 속에서 봤던 동물과는 완전 다른 야생의 기운이 전해졌다. ‘내가 바로 코앞에 있는데 어쩜 저리 꿈쩍도 안 할까?’라고 생각한 찰나, 아차 싶었다. 이곳의 진정한 주인은 내가 아닌 이들이 아닌가 
 
 
요세미티 국립공원    Day 22
우연히 만난 한 소년이 멋진 장소를?알려 주겠다며, 작은 웅덩이로 데려갔다. 처음엔 “뭐가?멋지다는?거지?” 생각했지만, 가까이 보니?장관이다.?물 위에 반사된 하프 돔Half Dome이 찬란한 오색 빛을 띠고 있었다
 
 
뮤어 우즈 국립 기념지    Day 17
여행 중 잠시 샌프란시스코에 들렀을 때, 지인은 뮤어 우즈에 가 보라고 했다. 도시만을 떠올랐던 샌프란시스코에 자연이라니. 상상도 못했지만,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직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숨은 보물을 찾았다는 것을 
 
 
레드우드 국립공원    Day 25
레드우드의 바다와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거친 파도의 결이 영혼을 살살 긁는 기분이랄까. 어린 아이가 되어, 거친 파도와 기 싸움이라도 할 것처럼 한참을 응시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Day 34
늦은 밤, 어딘지 모를 옐로스톤 길 한가운데서 손전등 하나를 들고 들판을 걸었다. 외로웠지만, 여행 중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었다. 모든 별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tip
남 작가가 수많은 자연을 만난 방법
미국 국립공원 연간 패스(National Park Annual Pass)

미국의 국립공원을 3~4곳 이상 여행할 계획이라면 1년 시즌 패스를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공원의 규모와 시설, 지명도에 따라 입장료는 15~30USD 정도인데, 패스를 구입하면 이 모든 공원들을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기 때문. 가격은 80USD이며, 온라인이나 국립공원 현장에서 구입 가능하다.
홈페이지: store.usgs.gov/pass
 
 
이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은 이제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르게 와 닿는다
콘크리트 정글마저 여행을 하게 됐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온기로 차가움을 녹여 가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내려 주는 바리스타들의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도시 역사를 풍자 섞인 개그와 함께 소개하는 일명 ‘웃긴 버스’. 유쾌한 샬럿, 이 도시가 좋다
 
 
또다시 일탈을 꿈꾸다
 
여행은 작지만 실로 큰 변화를 낳았다. 항상 똑같기만 하던 도시가 전과는 달리 와 닿기 시작한 것이다. “늘 보던 건물, 늘 달리던 길이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내가 살던 곳이 이렇게나 멋진 곳이었나 싶더라고요.” 자연의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켰는지 묻자, 그는 ‘자연 그대로’라고 했다. “모든 게 수학 공식처럼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특별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순간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여행에서 돌아온 남 작가는 주변을 둘러봤다. 늦은 밤 건물에 켜진 조명에서 누군가의 열정이, 지나가는 커플의 표정에서 행복감이 전해져 왔다. 분명 알았던 풍경이지만,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숨 막혔던 일상은 그렇게 하나하나 새로운 여행이 됐다. 자연이 그에게 안겨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남 작가는 여행에서 만난 자연들을 차곡차곡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보고 느끼고 담은 것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싶다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섰어요.” 그의 꿈에는 가속도가 붙었고, 한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약 6개월간의 작업 끝에 마침내 그는 여행 에세이 <청춘 일탈>을 펴냈다. “책을 통해 이루고픈 목적은 딱 하나, 예전의 저처럼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도전 의식을 보태는 거예요.” 한 번의 일탈로는 부족했는지, 남 작가는 또 다른 일탈을 계획 중이란다. 이번엔 ‘50일의 건축 여행’을 떠날 작정이라고. “여행의 마지막에 들렀던 시카고에서 건축물에 꽂혔어요. 누군가의 안식처이자 전쟁터이기도 한 건물들이 궁금해졌거든요.” 일탈은 또 다른 일탈을 부르는 법인가 보다.

그와의 인터뷰는 끝났지만, 여전히 나는 <청춘 일탈>을 읽고 있다. 매일 같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가 담은 자연들을 보고 느끼며 감탄한다. 솔직히 자신은 없다. 나 또한 그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 있을지는. 하지만 혹시 아는가? 삶에 지친 어느 날 문득, 나도 그처럼 출근 대신 일탈이란 걸 할는지. 적어도 어렴풋이 믿는 구석은 있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겠다는 그의 꿈엔 이미 가속이 붙었다는 것, 일탈은 또 다른 일탈을 불러온다는 것.  
 
*남규현 작가에게 여행이란 문방구 앞에 있는 뽑기와 같다. 좋은 장난감이 나올지, 별로인 장난감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무언가’를 굳게 믿고서 오늘도 뽑기에 동전을 넣어 본다.   @kyohnam
 
 
청춘 일탈 
글·사진 남규현 Kyo H Nam
홍익출판사│2017
남규현 작가의 50일간의 미국 로드트립 이야기를 담았다. 직접 찍은 사진은 물론 배경지에 어울리는 노래를 중간중간 선곡해 마치 그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글 김예지 기자  사진 남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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