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같았던 그날의 남이섬
섬 같았던 그날의 남이섬
  • 김예지
  • 승인 2017.05.09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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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어둑해진 섬은 거짓말처럼 적막했다.
발소리와 바람소리만이 이따금씩 텅 빈 공기를 채울 뿐이었다.
어느새 내가 살던 세계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섬 같은 밤이었다.
 
 
남이섬 1박 2일 힐링 코스
Day 1 | 중앙잣나무길 따라 걷기 → 남이공예원, 평화랑 둘러보기 → 전나무길,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인증 샷 남기기 → 소원의 종 치며 소원 빌기 → 노래박물관, 류홍쥔세계민족악기전시관 관람 → 스윙카페에서 티타임 가지기 → 해 질 녘 하얀 조명이 켜진 중앙잣나무길 산책하기
Day 2 | 커피숍 아일래나에서 조식 먹기 → 호텔 정관루에서 이어지는 헛다리길과 반대편 강변산책로 따라 걷기
 
남이섬의 밤은 고요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조차 크게 느껴질 만큼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탈 때까지만 해도 하늘이 흐렸다
입구에서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이섬의 상징, 눈사람
남이섬을 마당 삼아 뛰노는 청설모
중앙 길 뒤편으로 난 철로. 유니세프 나눔열차가 다니는 길이다
섬 곳곳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쉼터가 있다
 
 
 
●다른 세계로 떨어졌다

‘1박 2일 섬 여행’이라는 말에 왜 문득 남이섬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드라마에 숱하게 등장한 배경이라서, 아니면 서울과 가까워서? 여차여차 남이섬에서 하룻밤을 지낸다고 하니, 주변 지인들은 의아해 했다. 남이섬을 당일치기 여행지쯤으로 여겼을 이들에게 조금 생소할 법도 하니까. 그제야 깨달았다. 섬, 그보다는 ‘1박 2일’에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남이섬의 밤이 궁금했다. 모두가 빠져 나간 섬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반나절이 아닌 남이섬의 온전한 하루를 경험하고 싶었다. 

시작이 흐렸다. 전날부터 똑똑 떨어지던 빗방울이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됐고,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 위로 드리운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섬에 도착하자 날이 개이기 시작했다. 입구를 통과해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동안 어두웠던 하늘이 찬찬히 열렸다. 좀 전과는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극적인 것은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섬 여기저기 적힌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표시가 이곳은 또 다른 세상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남이섬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별도의 국기와 화폐까지 있을 정도다. 배를 타는 입구와 출구를 입국장, 출국장이라 부르고 섬 안에는 중앙은행과 우체국까지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굳이 나열하지 않고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곳임을. 키 큰 나무들이 쭉쭉 뻗은 길과 길 사이에는 청설모, 다람쥐, 토끼들이 뛰놀고 있었다. 자동차와 횡단보도 대신 자전거와 강이, 공해와 소음 대신 맑은 공기를 타고 새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섬에 떨어졌다.   
 
▶서울에서 남이섬까지 한번에
남이섬 셔틀버스
서울에서 남이섬으로 갈 때 남이섬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인사동과 남대문에서 매일 오전 9시30분에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4시에 남이섬에서 출발한다.
요금: 편도 기준 성인 7,500원, 어린이(24개월~초등학생) 6,500원
전화: 02 753 1247~8
 
 
다소 앙상한 메타세쿼이아길의 나무들은 나름의 멋이 있었다
김명희 작가의 ‘따라쟁이’. 엄마와 아이의 표정이 똑같다
이름처럼 처마 밑에 작품을 전시해 놓은 처마갤러리
스윙카페에서 커피 한 잔. 남이섬은 오늘이 좋다
행운이 깃들진 않을지, 기대에 차 들러 본 운석 맞은 화장실 
 

●남이섬을 음미한 시간

산책을 했다. 남이섬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메타세쿼이아길부터. 이름난 명소인 만큼 사람들로 붐볐지만,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사진 속에서 보던 길은 늘 잎이 우거진 나무들로 가득했는데 지금 보이는 나무들엔 아직 가지만 앙상했다. 기대했던 장면은 아니었어도, 그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들 사이로 초록 잎 대신 파란 하늘이 듬성듬성 걸려 있었다.  

섬 중앙 쪽으로 나오자, 진흙으로 빚은 조각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위칭청 행복예술관’에는 중국의 진흙 조각가 위칭청의 작품을, ‘처마갤러리’에는 이름처럼 처마 밑에 김명희 작가의 진흙 인형들을 전시해 놓았다. 대부분 엄마와 아이들을 표현한 작품들로, ‘따라쟁이’, ‘아버지가 오시면 먹자’ 등 센스 넘치는 작품명을 구경하는 재미만 해도 쏠쏠했다.
 
남이섬의 아트는 예술관이나 갤러리에만 있지 않았다. 곳곳의 표지판에 적힌 글귀, 심지어 화장실 건물에서마저 예술적 요소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를테면 ‘운석 맞은 화장실’ 같은 거다. 지붕에 운석 모양의 돌이 박혀 있는 이 화장실은 들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 듯, 운석 맞은 화장실에서의 시간이 행운일지 모르겠다’는 설명을 본 이상 말이다.
 
다시 섬의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려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랐다. 노래박물관 1층에 있는 스윙카페(Swing Cafe)다.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고서 창 측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창문 밖으로 시원하게 강변이 펼쳐졌고, 은은한 조명과 어울리는 멜로디가 잔잔하게 흘렀다. 이날 오후의 맛은 참 달콤했다.  
 
 
▶남이섬의 선율을 따라 
노래박물관 & 류홍쥔세계민족악기전시관

가요전시관, 무대 등을 갖추고 있는 노래박물관에서는 각종 음악 공연 및 축제가 열린다. 작년 8월에는 ‘선녀와 나무꾼’ 인형극, 9월에는 인도 문화축제 탱고 페스티벌이 열렸다. 박물관 지하 2층에 자리한 류홍쥔세계민족악기전시관에서는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작곡한 중국의 작곡가 류홍쥔이 수집한 고대 악기들을 볼 수 있다. 중국뿐 아니라 몽골, 아프리카 등 이국적인 악기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밤이 되면 중앙잣나무길에는 새하얀 조명이 둥둥 뜬다
 

●어색한 침묵과 친해지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빈집에 들어오자마자 TV부터 켜는 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침묵이 어색하고 낯설어서다. 호텔 정관루의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것 역시 TV였다. 하지만 TV는커녕 벽 한쪽에 자리한 책장에 몇몇 책들만 놓여 있을 뿐, 소리를 내는 물건은 어디에도 없다.

밖으로 나갔지만 고요하긴 마찬가지였다. 해가 저물고 사람들이 떠난 남이섬은 놀라울 만큼 적막했다. 다행히 눈앞이 깜깜하진 않았다. 잣나무길 위로 설치된 풍선 모양의 조명들이 새하얀 불을 밝혀 준 덕분이다. 조명이 비치는 길을 따라 멍하니, 그렇게 얼마간 길을 걷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까와는 다르게 침묵이 낯설지 않은 건 왜일까. 익숙해진 탓일까, 적막한 공기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섬 전체를 가득 메운 침묵은 그 어떤 소리보다도 풍성했다. 

다시 돌아온 방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세상과 동떨어진 섬을 통째로 빌린 것마냥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뭘 해야 할지, 더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책장에 보이는 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정말이지 섬이 된 밤이었다.
 
 
각자의 봄을 틔우고 있는 새싹과 꽃
 
 
●남이섬에 가거든
 
이튿날은 모처럼 쨍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말끔한 게, 어제 내가 있던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 보였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떠나기가 아쉬운 맘에 정처 없이 강변을 거닐었다. 전날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꽃봉오리들이 길 여기저기서 피고 있다. 어제는 서늘한 겨울의 끝, 오늘은 따스한 봄. 서로 다른 두 남이섬을 경험한 건, 1박 2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지인들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당당하게 일렀다. 남이섬은 당일치기 여행지가 아니라고.  
 
 
호텔 정관루의 리셉션 건물
 
▶아늑하고 포근하다 호텔 정관루
남이섬 안에 자리한 유일한 호텔.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손을 출산할 때 임시로 설치했던 산실청 건물을 서울 안국동에서 옮겨와 리셉션으로 사용하고 있다. 객실은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는데 본관의 경우 가수, 화가 등 예술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대로 각기 다른 방을 꾸민 게 특징이다. 호텔 1층에 있는 커피숍 아일래나에서 주중엔 서양식과 한식, 주말엔 뷔페식 조식을 제공한다.
가격: 본관 9만7,000원~16만9,000원, 별관 11만9,000원~38만원
전화: 031 580 8000
 
 
글·사진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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