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만 한 바위들이 지키는 해변, 세이셸 라디그 섬
집채만 한 바위들이 지키는 해변, 세이셸 라디그 섬
  • 트래비
  • 승인 2017.05.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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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섬나라에서 보낸 며칠①La Digue 라디그

115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에서 마헤, 라디그, 프랄린 등 세 개의 섬을 살피고 돌아왔다. 마헤섬에 숙소를 두고 나머지 두 개 섬을 오가는 일정이었다. 처음 가 본 나라, 짧은 여정. 조력자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젊고 영민한 택시 기사 파나가라씨와 동행한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콘스탄스 에필리아 리조트의 힐사이드 빌라에서 바라본 해변 풍경
라디그의 앙스 수스 다정 해변. 커다란 화강암 때문에 독특한 느낌이 난다
 

세이셸에서 만난 첫 번째 택시 기사는 나이가 지긋한, 언뜻 봐도 경력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소박한 2층 건물인 마헤(Mahe)국제공항에서 첫날 숙소인 카라나 비치 호텔(Carana Beach Hotel)까지 데려다 줬다. 생각보다 차량이 많은 도로 위를 요령껏 달리며 그는 라디오 국회방송에 집중했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다급했다. 알아들을 수 없어 물었더니 “새해 예산안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라디오 속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크레올(Creole)어였다. 프랑스인들이 아프리카 노예들과의 소통을 위해 간소화한 언어다. 사실 서인도제도에 정착한 유럽인의 후손 혹은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을 의미하는 크레올은 인종, 언어, 음식, 음악 등 세이셸 전반에 걸친 ‘혼성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다.
 
1498년부터 프랑스인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고,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탓에 크레올어 이외에 영어와 프랑스어도 통용된다. 밀리는 도로에서 주저 없이 핸들을 꺾어 옆길로 빠진 노회한 기사는 “아무래도 크레올이 가장 대중적인 언어”라며 “세이셸 속에 영국과 프랑스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디그에서 가장 흔하고 유용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주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부린다. 관광객들도 선착장 주변의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다
길가에서 좌판을 차리고 열대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행상
몸무게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오래 사는 알다브라 자이언트 육지 거북
 
●La Digue
라디그

집채만 한 바위들이 지키는 해변
 
세이셸의 올망졸망한 섬들 가운데 마헤, 라디그(La Digue), 프랄린(Praslin)이 ‘삼대장’으로 일컬어진다. 가장 큰 섬이자 수도인 빅토리아(Victoria)를 품고 있는 마헤를 본격적으로 돌아보기에 앞서 이웃 섬 라디그로 건너갔다. 라디그는 명백한 자전거의 섬이었다. 주민과 관광객들 대부분이 두 바퀴에 의지했다. 한 손 놓고 달리며 옆 자전거의 친구와 수다 떠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혼자서 자전거 3대를 모는 무심한 표정의 아저씨도 눈에 띄었다. 선착장 부근에 위치한 여행정보센터에서 연신 손부채를 해대는 직원이 알려 준 정보는 단호하고 단순하고 명료했다. “자전거를 타고 앙스 수스 다정(Anse Source d’Argent) 해변으로 가라.” 곧장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해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입장에서 자전거 여행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래 써서 남루해진 안장은 딱딱하고, 브레이크는 뻑뻑했다. 결국 주행 5분 만에 길을 되짚어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자전거 탄 풍경’도 물론 좋았지만 속도가 줄어들자 섬의 나른한 일상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자유로운 두 손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한몫했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사내는 길가에 좌판을 차리고 열대의 과일과 채소를 팔았다. 그 앞에서 두 명의 아낙이 신중하게 지갑을 열었다. 세 명의 인부들은 신축 건물의 지붕 공사를 감당하고 있었다. 부부로 보이는 두 중년은 아트 스튜디오라는 간판을 내건 건물 앞에 막 자전거를 세운 참이었다. 프라이빗 해변임을 강조하는 어느 리조트의 ‘Hotel Guest Only’라는 팻말이 작지만 완강해 보였다. 토요일 오전, 초록 지붕과 노란 외벽의 성당에서는 성가가 울려 퍼졌다.

항구에서 남쪽으로 약 2.7km 떨어진 앙스 수스 다정 해변에 닿으려면 입장료 100세이셸루피(한화 약 8,400원)를 내고 유니언 이스테이트(Union Estate)를 지나야 했다. 몇 가지 볼거리를 지닌 유니언 이스테이트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휘어잡은 건 단연 알다브라 자이언트 육지 거북이었다. 다 자라면 몸무게가 300kg이 넘고, 수명이 무려 100년에서 300년에 달한다는 이 거북은 멸종 보호 동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거북들은 주말 오후의 낮잠이나 잘 마르고 있는 빨래처럼 한가로워 보였다.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덥석 물거나 얕은 물에 아랫도리를 담근 채 두 눈을 껌뻑거렸다. 한쪽에는 해독 불가능한 괴성을 내며 교접 중인 한 쌍의 거북도 있었다.

라디그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앙스 수스 다정 해변에 섰다. 썰물 때인지 수심이 얕았다. 수십 미터를 걸어 나가도 물이 성인 남자의 허리께에서 찰랑거렸다. 바다는 속내를 드러낼 만큼 투명했고, 한 가지 색으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다. 하지만 세이셸의 해변을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지위에 올려놓은 것은 물빛이 아니라 화강암이다. ‘집채만 한’ 화강석들이 해변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동안 이집트, 페루 마추픽추,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미국 유타 등을 방문하며 거석문화와 초대형 암석이 만들어 낸 그림에 압도당한 적이 있었는데 해변에 이처럼 거대하고 육중한 돌무더기가 놓여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세이셸관광청에서 ‘태초의 풍경’이라며 자랑할 만했다. 한데, 두 가지가 아쉬웠다. 미리 정해진 일정에 쫓겨 이 아름다운 해변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점, 그런데 날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날씨가 화창해진다는 것은 다음 일정, 즉 프랄린섬에서 더 좋은 날씨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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