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프로방스 자전거 여행] 자전거의 속도가 허락한 선물

  • Editor. 고서령
  • 입력 2017.08.01 14: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AY 1
 
Le Pays de Forcalquier
페이 드 포르칼키에 코스 
78km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고, 사이클링 복장도 갖춰 입었고, 물통에 시원한 생수도 가득 채웠고, 자외선차단제도 꼼꼼히 발랐다. 얼른 페달을 밟고 싶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다들 웃고 있는데 왜인지 용성의 얼굴에 근심이 있다. 무려 78km에 달하는 첫날 라이딩 코스. 보통 하루에 무리하지 않고 탈 수 있는 거리가 50km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도전이다. 여자친구와 병아리 라이더 기자까지 데리고 가자니 걱정이 되었을 테다.
 
 
코스 중간의 작은 마을, 크루이스를 통과하는 중
 
 
프로방스 자전거 여행 코스의 풍경은 다채롭다. 소나무가 울창한 길도 있고, 양떼가 풀을 뜯는 들도 있고, 양귀비꽃이 만발한 길도 있다
 

출발! 드디어 우리의 첫 프로방스 자전거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너무 예뻐요!” 페달을 밟은 지 5분 만에 민경이 흥분한 목소리로 뒤에서 외쳤다. “너무 예쁘네요!” 나도 외쳤다. 지극히 평범한 길,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예뻤다. 자동차로 휙 지나갔다면 느끼지 못했을, 자전거의 속도가 허락한 첫 선물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자전거의 속도로 보는 세상은 언제나 왜곡 없이 아름답다.
 
 
자전거 여행 중에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피크닉으로 해결했다. 무얼 먹어도 꿀맛이었다
자전거 여행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곳곳에 친절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소나무가 울창한 길을 지나 첫 번째 업힐(Uphill·오르막길)을 만났다. 몸무게를 실어 꾹꾹 페달을 밟아 올라가고 있는데 저만치 앞서 가는 용성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업힐 양쪽으로 회색빛 석회질 토양에 키 작은 나무들이 띄엄띄엄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그리스에서 보았던 것 같은 풍경이다. 업힐 다음엔 드넓은 연두빛 들과 빨간 양귀비(Red Poppy) 꽃밭이 오랫동안 펼쳐졌다. 양을 닮은 구름 아래서 풀을 뜯는 귀여운 양떼도 만났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자꾸만 자전거를 세워 마음껏 사진을 찍고 다시 페달 밟기를 반복했다. 출발 전까지 근심 어린 표정이었던 용성도 어느새 밝은 얼굴로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방스에는 자전거 여행자가 위험을 느낄 만한 요소가 별로 없었다. 프로방스의 운전자들은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깊다. 자전거를 추월할 때는 반원을 그리며 멀찌감치 돌아간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사용하는 프로방스의 길 곳곳에는 ‘자동차가 자전거 옆을 지날 땐 1.5m 간격을 두라’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경적을 울리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일도 없었다. 운전에 방해가 될까 봐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운전자들은 오히려 따뜻한 미소와 인사를 보내 주었다. 물론 어딜 가나 그렇듯 불친절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 한국에서는 자전거가 운전에 방해가 된다며 욕을 하거나 일부러 바싹 붙어 지나가면서 위협하는 자동차도 있다는데. 하루 빨리 한국에서도 이렇게 자전거와 자동차가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용성은 말했다.

점심은 코스 중간에 있는 뤼르산(Montagne de Lure) 중턱, 12세기에 지어진 교회 앞에서 피크닉을 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에서 포장해 온 치킨 샐러드와 초콜릿 케이크, 오늘 아침 호텔에서 구운 바게트. 별것 없는 메뉴지만 열심히 땀 흘린 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먹은 음식이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꿀 같은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 본 교회 내부는 동굴처럼 시원했다. 오랜 세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해도 피크닉하러 오는 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아주 버려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언뜻 보아도 수백 살은 되어 보이는 교회 주변의 거대한 나무들도 운치 있었다.
 
 
이 코스에서 가장 예쁜 마을, 생 미셸 롭세르바투아르
우연히 들른 마을 시공스의 매력에 반해 잠시 라이딩을 멈추었다
 

이날 코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마을 두 곳이 있다. 우연히 들렀다가 그 매력에 반한 시공스(Sigonce)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생 미셸 롭세르바투아르(Saint-Michel-L’observatoire)다. 파스텔톤 페인트로 알록달록 칠해 놓은 벽과 창문, 낯선 동양인 여행자에게도 환영의 눈인사를 보내 주는 주민들이 있는 두 마을에서 우리는 한동안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졌다. 

포르칼키에에서 시작한 코스는 다시 포르칼키에로 돌아와 끝이 났다. 업힐 구간도 많았고 소화해야 하는 거리도 길었지만, 첫날이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해 낼 수 있었다. 처음이라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 한 컷 한 컷이 모두 신기하고 소중했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 좋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라는 감탄사만 나오더라고요.” 오늘 어땠느냐는 내 질문에 민경이 말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Restaurant for Dinner
캉파뉴 생 라자르(Campagne Saint Lazare)

첫 라이딩을 무사히 마치고 나른해진 몸으로 찾아간 채식 레스토랑. 샤랑보 호텔에서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계절에 따라 우리의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가진 음식을 선보인다. 식재료로는 레스토랑의 정원에서 키우거나 포르칼키에 지역에서 난 채소만을 사용한다. 이날 우리는 산에서 채취해 왔다는 버섯, 식용 꽃을 넣은 샐러드, 토마토와 올리브로 만든 주황색 머핀, 인도식 콩 요리, 통밀과 두유로 만든 요리 등을 맛보았다. 이 음식이 몸의 순환을 도와주어 건강해질 거라고 레스토랑 주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운동도 하고 건강한 음식도 먹고, 그동안 인스턴트 음식으로 혹사시켰던 몸에 모처럼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주소: Ancienne Route de Dauphin, 04300 Forcalquier, France
전화: +33 4 92 75 48 76
홈페이지: www.stlazare.net 
 
 
기획·글=고서령 기자, 사진=고아라, 영상=이용일, 모델=김민경·조용성, 취재협조=프랑스관광청·터키항공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