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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밴에서 살아요

  • Editor. 고서령
  • 입력 2017.08.30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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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일도, 다시없을 마지막
We’re living in a Van
밴에 사는 커플 허남훈·김모아
 
이 커플은 왜, 집 없이 밴에서 살고 있는 걸까.
 
여주 강천보에서 처음으로 카약을 띄운 날, 드론으로 찍은 사진
밴 이사하는 중
 ‘지금이 가장 젊은 때’라며 남긴 커플 사진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지?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충분히 질문하고 있을까? 그저 남들 다 하는 대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틀에 박힌 선택을 하며 틀에 박힌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허남훈 감독과 김모아 작가는 밴에서 산다. 작은 주방과 욕실, 침대가 딸린 자동차가 그들의 집이다. 이렇게 1년 동안 살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왜? “둘이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많이 주고받는 편이에요.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지? 어떤 곳에 살고 싶지? 어떤 집에 살고 싶지? 무얼 하며 살고 싶지? 등등. ‘밴 라이프’ 프로젝트는 그 질문의 과정이에요. 밴을 타고 언제든 어디로든 이사(차를 타고 멀리 이동하는 걸 커플은 ‘이사’라고 말한다)해 살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아 가고 있어요.”

삶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해진 나이에 정해진 삶의 수순―가령 대학교 졸업, 취업, 결혼, 육아 같은―을 밟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많은 기회비용을 수반하는 일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러므로 되도록 ‘일반적인 삶’을 살려고 애쓴다. 하지만 허 감독과 김 작가는 용기를 낸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묻고, 그것을 선택한다. “많은 사람들이 ‘너 그렇게 살면 불행해’라고 말해요. 너 결혼식 안 하면 후회할 거야, 너 제때 아이를 안 가지면 후회할 거야, 너 지금 집 사지 않으면 후회할 걸, 같은 말을 하죠. 우리는 정말 결혼식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 않았어요. 남들과 다른 삶이지만 후회하지 않고 행복해요.” 

커플은 소위 ‘일반적인 삶’이 자신들의 삶보다 덜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를 일부러 역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다만 ‘남들이 복사해 낸 삶을 그대로 살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우리 사회에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다양성을 가진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다음 세대에게 보여 주고 싶어요. 밴 라이프는 그 과정 중 하나예요.”
 
1 모아 둔 빨래하러 가는 날 2 음악 장비를 꺼내 놓고 작업하던 날

●여행과 삶과 일의 경계를 허물다
 
요즘 커플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에 운전석 위 동그란 벙커에 있는 침대에서 눈을 뜨면, 먼저 환풍기를 세게 틀어 환기를 시킨다. 허 감독이 콩을 갈아 내려 주는 커피를 마시고, 작은 욕실에서 얼굴과 몸을 씻는다. 그때부터 나름의 거실이라고 하는 소파에 마주 앉아 노트북을 꺼내 놓고 업무를 본다. 허 감독은 주로 영상 편집을 하고, 김 작가는 주로 글을 쓴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나름의 주방에서 코펠로 밥을 지어 먹는다. 가끔은 창문 블라인드에 빔을 쏴서 영화를 보거나, 취미로 음악 작업을 한다. 밤 12시~1시쯤 되면 다시 벙커로 올라가서 잠을 잔다.

“밴에 산다고 하면 특별한 일 없이 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 일상의 70%는 일이예요. 오래 전부터 노트북 하나만으로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해 부단히 훈련하고 노력했어요. 보통 하나의 영상을 제작하려면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촬영도, 조명도, 코디도, 메이크업도, 편집도 모두 직접 해요. 짐도 다 직접 나르고요.(웃음)” 그런 훈련 덕분에 베를린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양양에서 편집하고, 서울에서 미팅을 하고 강원도에서 촬영한 광고영상을 완도에서 편집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밴을 타고 언제 어디로든 이동하면 그것이 여행이 되고, 동시에 그곳에 살아 보는 경험이 되고, 어디에서든 노트북만 꺼내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커플은 여행과 삶과 일의 경계를 허무는 중이다. “요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이잖아요. 한번 사는 인생 화끈하게 모든 걸 내던지고 즐기겠어! 그런 거요. 저희는 욜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삶과 여행과 일이 잘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고 싶어요.”

밴 라이프는 마냥 낭만적으로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여러 가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흘에 한 번은 물탱크에 물을 채워야 하고, 정기적으로 전기를 충전해야 하고, 화장실 변기에 설치된 통이 가득 차면 꺼내서 비워 주어야 한다. 옷은 바구니를 넘지 않을 만큼만 가지고 있어야 하고, 빨래는 코인세탁소에 가서 해야 한다. “집에서는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는 걸 몸으로 깨달으면서 사는 중이에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전기도 아무렇지 않게 항상 수급이 되고, 화장실 물을 내리면 정화조로 빠지고. 그런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 “분명 불편한 점들이 있죠. 하지만 삶과 여행에는 본디 불편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불편함을 이겨 내면 굉장히 새로운 것들을 또 얻게 되죠. 우리는 앞으로도 일반적인 삶의 기준으로 볼 때는 굉장히 불편하게 살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삶, 또 다음 삶, 매번 이렇게 용기 내며 살고 싶어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하면서요. 품었던 꿈을 잡아채서 현실의 바닥을 치게 만들어 보고도 싶고요.”

●여행=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어디 어디 가 봤어요?’ 허 감독과 김 작가가 밴 라이프를 시작한 뒤로,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커플은 그들이 기대하는 답변을 해줄 수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거나 이곳저곳 구석구석 도장 찍듯 다니는 여행은 이들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골의 작은 마을에 가서 그곳의 떡볶이 집과 자장면 집에서 밥을 먹고,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요. 그곳에 살아 보는 것처럼 지내는 거죠. 우리나라에는 사는 곳에서 1시간만 나가도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요즘 많이 깨달아요. 여행이란 결국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 그 삶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알아 가는 것. 그게 여행인 것 같아요.”

커플은 예전부터 항상 시골에 살면 어떨지, 바닷가에 살면 어떨지 궁금했다고 한다. 밴에서 살면서 그런 경험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밴에서 일을 하다가 가끔 허리를 펴러 문을 열고 나가면, 어느 날엔 강, 어느 날엔 바다, 어느 날엔 시골길이 내 마당이에요. 그게 가장 행복해요.”
 
완도 수목원에 도착해 창문을 열었더니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죽기 전’으로 미루지 않기
 
‘캠핑카에서 살아 보기’는 그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 하지만 허 감독과 김 작가는 버킷리스트를 죽기 전까지 미루지 않고 최대한 앞당겨, 가능하면 지금, 실천하려고 한다. “포털사이트에 버킷리스트를 검색해 본 적이 있어요. 번지점프 해 보기, 배낭여행 하기, 크루즈여행 하기, 기타를 연습해서 한 곡을 완전히 쳐 보기, 내가 쓴 책 한 권 출간해 보기 등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소소한 꿈들을 버킷리스트로 정했더라고요. 물론 개중엔 1,000억원 모으기 같은 엄청난 걸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을 버킷리스트로 정할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그 소소한 꿈들을 실행하지 못하고 계속 ‘죽기 전’으로 미루며 쌓아 가는 것이 커플은 속상하다고 했다. 어쩌면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다시없을 마지막’ 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여행을 떠나면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사는 것에도 마감이 있는데, 그걸 느끼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오늘이 진짜 소중해요.” 그래서 커플은 하루하루를 끝이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지금은 밴에서 살고 있지만, 어떤 집에 들어가 살게 되더라도 그곳에서 계속 여행하는 마음가짐으로 살 거라고. “지금을 흘려보내면 그냥 흘러가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을 값지게 보내면 그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거예요.” 
 
1 자라섬의 한낮 2 카약을 접기 전 말리는 중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행복
 
커플은 버킷리스트를 ‘체크리스트’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실행으로 옮긴 꿈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가며, 체크한 것들이 수북이 쌓여 가는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행복하단다. 커플의 다음 체크리스트는 ‘제주에서 한 달 살아 보기’가 될 예정이다. 올 가을 밴을 배에 싣고 제주도로 가서 한 달 동안 머물 거라고. 올해 안에 커플의 밴 라이프에 대한 책을 한 권 내는 것, 언젠가 둘의 손으로 직접 집을 짓는 것, 김 작가의 시나리오와 허 감독의 영상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도 머지않은 미래에 커플의 체크리스트가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주어지지만, 그걸 어떻게 향유하느냐에 따라 행복도가 결정되죠. 많은 사람들이 가려고 하는 곳에 가고,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뮤직비디오·CF 영상감독 허남훈, 뮤지컬 배우 겸 작가 김모아. 둘은 함께한 지 14년,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를 한 지 2년이 된 커플이다. 김 작가의 글과 허 감독의 사진으로 2015년, 책 <커플의 소리 in Europe>을 출간했다. 2017년 3월부터 1년 동안 밴에 살아 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인스타: lesonducouple
 
 
글 고서령 기자  사진제공 허남훈·김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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