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이슬란드, 시리도록 투명한

  • Editor. 김충회
  • 입력 2017.09.05 1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디찬 바다에서 다이빙하기’
47일간의 물속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 
나의 또 다른 버킷리스트였다. 
북극이나 남극은 아니었지만, 
꿈을 이뤘다. 아이슬란드에서. 
 
실프라. 섭씨 4도의 차가운 온도보다 더 시린 건 저 투명함이 아닐까 

여행기간│2017년 7월15~22일 
다이빙 횟수│총 5회
다이빙 숍│DIVE.IS 
다이빙 포인트│아이슬란드 바다 및 민물
당시 평균수온│바다 섭씨 10도, 민물 섭씨 4도
다이빙 특징│물가에서 걸어 들어가는 쇼어Shore 다이빙, 실프라의 투명한 수중 환경

●어딘가 익숙한 풍경 속으로 뛰어들다
Diving to Iceland
 
여기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Reykjavik). 다이빙 센터를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구글 지도를 보니 하프나르피외르뒤르(Hafnarfjorður)의 어느 바다. 특별한 지명은 없었다. 차가 다닐 수 있을까 싶은 길이었지만 드라이버는 자주 와 봤다는 듯 능숙하게 운전을 했다. 

한국에서 애지중지 챙겨 온 내 수중 장비들이 파손되지 않을까 조바심이 들 무렵 차가 멈췄다. 파도는커녕 우리 일행 외엔 아무도 없어 스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해안이었다. 차가운 물(수온은 연중 4~10도 정도 된다) 외에는 특별히 어려운 스킬을 요구하는 바다가 아니라는 간단한 설명을 듣고서 장비를 세팅했다. 이번 다이빙 투어의 버디(Buddy)는 환갑이 훌쩍 넘은 독일인 3명. 드라이 슈트를 척척 챙겨 입고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물가로 걸어 내려가는 자세 하나하나에서부터 연륜이 느껴졌다. 

아이슬란드의 바다는 강원도의 바다처럼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수심 10m, 다이빙 컴퓨터에 보이는 수온은 10도 가량으로 나왔지만 드라이 슈트 덕분에 전혀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성하게 자라 사람 키보다 큰 미역과 감태 밭 사이를 헤치며 수중 숲속을 40분가량 누볐다. 미역 사이로 부화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작은 치어들이 반짝거리며 무리를 이루고 있고, 모래밭에는 친숙한 광어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15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나를 신기하게라도 쳐다보듯, 도망가지도 않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과 모레는 싱벨리어국립공원(Þingvellir National Park)으로 간다. 앞으로의 다이빙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연습일 뿐이다.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바다의 수면과는 달리, 수중은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작은 치어들의 꿈틀거림으로 분주하다
하프나르피외르뒤르의 풍경. 다이빙을 하기 위해 온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어 적막하기까지 하다 

▼아이슬란드 다이빙 가이드
DIVE.IS

아이슬란드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쿠버 다이빙 센터. 싱벨리어국립공원(Þingvellir National Park)의 실프라(Silfra) 스노클링 투어부터 바다와 호수를 오가며 10일 이상 스쿠버 다이빙을 진행하는 멀티투어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드라이 슈트 다이빙 경험이 최소 10회 이상 있어야 한다. 오픈워터(Open Water) 다이버 라이센스가 있다면 2일간 드라이 슈트 교육을 받으면서 바다와 실프라에서 다이빙을 할 수 있고, 스쿠버 라이센스가 없다면 실프라 스노클링 투어 참여가 가능하다. 단, 다이빙 사이트까지 왕복 교통 및 다이빙 가이드 외에 식사 제공이 되지 않아 음료는 물론 간식까지 직접 준비해 가야 한다.  www.dive.is
 
데이비드 크랙의 수중 풍경. 얕은 수심의 따뜻한 물과 깊은 수심의 차가운 물이 만나는 곳은 우유를 풀어 놓은 것처럼 뿌옇게 층이 생긴다 
싱벨리어국립공원의 호수가. 무거운 수중장비를 짊어졌던 잠깐의 고생은 훗날 그저 즐거웠던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싱벨리어국립공원, 그 반전의 틈에서
David’s Crack, Þingvellir National Park 
 
오랜만에 민물, 그것도 산속에서의 스쿠버 다이빙이다. 오전 9시쯤 어제 함께했던 독일인 3명과 다이빙 센터에서 만나 출발했다. 지금껏 500여 회 다이빙을 해 본 나에게도 바다가 아닌 산속 호수에서의 다이빙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멕시코 세노테(Cenote) 이후 처음이다.  

아이슬란드의 유명 관광지인 싱벨리어국립공원에 도착했다. 할비크(Hallvik)라고 표시된 작은 나무 표지판에 차를 세우니, 전날과 마찬가지로 우리 외에 아무도 없는 한적한 호수가 등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물안개와 구름이 호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다이빙하기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분위기 있는 풍경에 물속은 어떨지 궁금했다. 차에서 장비를 꺼내 세팅을 하고서 사이트 브리핑을 받았다. ‘데이비드 크랙(David’s Crack)’이라 불리는 커다란 암반의 갈라진 틈 사이로 다이빙을 한다고 했다. 수중 시야가 워낙 좋아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없지만, 어제보다 물이 훨씬 더 차가울 거라 했다(싱벨리어국립공원의 호수의 연중 수온은 2~10도 정도다). 

얕은 물에는 미끄러운 이끼들이 가득해 조심조심 바위를 밟아 가며 호수로 걸어 들어갔다. 3m 정도의 얕은 수심을 얼마나 나갔을까, 바닥 지형이 갈라진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크랙이다.
 
“우와~” 호흡기를 입에 물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크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틈 아래로는 얕은 수심에서 상상할 수 없던 파란색의 투명한 물이 가득했고, 수온도 거의 얼음물에 가까웠다. 물고기라곤 한 마리도 없이 무너져 내린 바위들만이 황량하게 있었지만, 거대한 협곡 사이를 비행하듯 떠다니는 것만으로 특별한 순간이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입술은 파랗게 핏기를 잃었지만,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물에서 나와서도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슬란드 현지 강사인 프레이저(Fraser Cameron)에게 그동안 배웠던 모든 형용사란 형용사는 다 퍼부었던 것 같다. 프레이저는 이런 내 모습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차분한 어투로 장담했다. 실프라(Silfra)는 이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놀라울 거라고.
 
실프라의 갈라진 틈 사이로 스쿠버 다이빙을 한다. 오른쪽이 북미대륙판, 왼쪽이 유라시아대륙판이다
실프라의 물속은 비현실적이다. 수백 번이 넘도록 다이빙을 했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이다
 
 
●실프라를 단언하다
Silfra, the Most Amazing Point
 
단언컨대 실프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수중 시야를 가졌다 해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 싱벨리어국립공원의 빙하수가 수십년간 암반 틈에서 정화를 거친 물, 실프라를 보는 순간 ‘시리도록 투명하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수중 시야가 100m가 넘는다는 사실 이외에도 실프라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또 있다. 거대한 두 대륙의 판이 만나는 다이빙 포인트이기 때문. 오른쪽이 북미대륙판, 왼쪽이 유라시아판인데 두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지역도 있다. 두 대륙의 판은 지금도 여전히 움직여 매년 2cm 정도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밤사이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았을 실프라의 물속에서는 오직 두근거리는 내 심장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차가운 우주 한복판에 홀로 떠 있는 느낌이다. 새벽부터 일어났지만 피곤하지 않았고 수온 4도의 물이 차갑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실프라에서의 첫 번째 다이빙은 그렇게,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40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실프라의 물은 그냥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다는 프레이저의 말에 따라, 두 번째 다이빙에서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셔 봤다. 가슴속까지 아리는 차디찬 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얕은 수심 가장자리의 물이끼들이 눈에 들어왔다. 트롤헤어(Troll Hair)*라고 불리는 초록색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 있는 게, 마치 동화 속 잔디밭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따뜻한 열대 바다에 사는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없어도, 거북이나 만타가오리, 고래상어를 볼 수 없어도 충분히 다채로웠다. 

이제 벌써 돌아갈 시간이다. 독일인이 건네 준 따뜻한 진저 티 한 잔을 마시며 다이빙을 마무리했다. 주변은 실프라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스노클링 투어를 하러 온 관광객들로 분주했다. 실프라 주위를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나서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애써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또 한 번 단언컨대, 아이슬란드 실프라는 죽기 전에 꼭 와 봐야 할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다. ‘진정한 실프라’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겨울에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트롤헤어│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난쟁이 요정
 
다이브로그(Dive Log)
 
#455 Hafnarfjorður Point 
날짜│2017년 7월17일 
입수│11:04(184Bar) 
출수│11:55(44Bar) 
최대수심│18m 
다이브타임│51분 
날씨│맑음, 파도 없음(0.0m), 조류 없음(+0) 
수온│10도 
기타│드라이 슈트, 웨이트 10kg, 알루미늄탱크, 수중시야 10m
 
#456 Hafnarfjorður Point
날짜│2017년 7월17일 
입수│13:01(188Bar) 
출수│13:37(133Bar) 
최대수심│6m 
다이브타임│36분 
날씨│맑음, 파도 없음(0.0m), 조류 없음(+0) 
수온│12도 
기타│드라이 슈트, 웨이트 10kg, 알루미늄탱크, 수중시야 10m
 
#457 Þingvellir National Park, David’s
Crack Point
날짜│2017년 7월18일 
입수│10:41(182Bar) 
출수│11:29(77Bar) 
최대수심│16m 
다이브타임│48분 
날씨│흐림, 파도 없음(0.0m), 조류 없음(+0) 
수온│5도 
기타│민물, 드라이 슈트, 웨이트 8kg, 알루미늄탱크, 수중시야 100m
 
#459 Þingvellir National Park, Silfra Point 
날짜│2017년 7월19일 
입수│07:08(193Bar) 
출수│07:44(117Bar) 
최대수심│14m 
다이브타임│36분 
날씨│흐림, 파도 없음(0.0m), 조류 없음(+0) 
수온│4도 
기타│민물, 드라이 슈트, 웨이트 8kg, 알루미늄탱크, 수중시야 100m+
 
#459 Þingvellir National Park, Silfra Point 
날짜│2017년 7월19일 
입수│08:10(185Bar) 
출수│08:52(93Bar) 
최대수심│12m 
다이브타임│42분 
날씨│흐림, 파도 없음(0.0m), 조류 없음(+0) 
수온│4도 
기타│민물, 드라이 슈트, 웨이트 8kg, 알루미늄탱크, 수중시야 100m+
 
 
글·사진 김충회  에디터 김예지 기자
 
*이 글을 쓴 김충회씨는 10여 년 전 우연히 접한 스쿠버 다이빙의 매력에 푹 빠져 현재 다이빙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물속의 영롱함을 그대로 담은 사진전시회와 책을 선보일 날을 꿈꾸고 있다.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