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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 꼭 알아야 하는 것

  • Editor. 최영미
  • 입력 2017.09.0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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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서 손쉽게 대마도를 선택했던 여행자들은 그 묵직한 역사의 현장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리 알고 가면 좋을 역사,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추렸다. 
 
에보시타케 전망대에 오르면 대마도의 하롱베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아소만의 절경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부산에서 직선거리로 49.5km,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땅, 대마도는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10분이면 히타카츠항에, 2시간 10분이면 이즈하라항에 닿을 수 있다. 첫 배로 가서 마지막 배로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보니 대마도는 멀리 가기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여행객들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만만한 해외 여행지로 먼저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랬던 대마도가 이제는 조금씩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부산항에서 오션 플라워호에 함께 탄 여행객들 중에는 자전거 트레킹을 즐기려는 듯 산악용 자전거를 싣고 탄 여행객들도 있었고, 낚시도구를 들고 탄 여행객들도 보였다. 자전거, 낚시, 트레킹족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한 번의 여행이 어느새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으로 이어지는 매력적인 테마 여행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을 건너뛸 수는 없다. 한국인에게 대마도는 애증의 땅이 분명하다.
 
 
조선통신사비. 400~500명에 달했던 조선통신사는 문화와 외교의 종합 사절단이었다
대마 호텔 앞으로 흐르던 긴 하천 벽에 그려진 조선통신사 행차도 

●조선통신사
200년 동안의 귀한 손님

배를 탄 지 두 시간 남짓, 약간 지루하다 느낄 즈음 대마도 남쪽의 이즈하라항에 닿았다. 이즈하라항 주변은 조용하고 소박했다. 한적한 시골 항구의 모습을 지닌 이 고즈넉한 항구가 알고 보니 조선 후기 일본으로 파견된 조선통신사들의 첫 기항지였다고.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 동안 총 12차례 파견된 조선통신사는 부산항을 거쳐 대마도의 이즈하라항에 첫 기착한 후 대마도 번주의 안내로 다시 해로를 거쳐 오사카에 닿았고 거기에서부터는 육로로 에도까지 이동했다.
 
조선 최고의 문인, 지식인이었던 정사·부사·종사관 삼사 외에도 통역관, 서기, 화가, 악대 연주자와 행렬의 앞에서 춤을 추며 흥을 돋우던 소동까지 합해 약 400~500명에 달했던 조선통신사는 문화와 외교의 종합 사절단이었다. 그러니 조선통신사의 방문은 이 작은 섬 대마도를 한껏 달구었을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손꼽아 기다렸을 큰 구경거리였음에 틀림없었다.
 
이즈하라에는 현재 왕복 2차선 차도로 이용되고 있는 바바스지 도로가 있다. 당시 조선통신사를 맞이할 목적으로 정비했던 길로 이 정도 규모의 넓은 길을 정비할 만큼 대마도 주민들이 조선통신사 일행맞이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라 하겠다.
 
조선통신사들이 머무는 동안 일본 문인들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통신사들의 숙소를 찾았고, 통신사들로부터 시, 휘호, 그림을 얻으려는 주민들도 숙소 앞으로 몰려들어 밤새도록 긴 줄이 이어졌다고 하니 가히 오늘날 한류 인기에 못지않았다고 할 것이다.
 
200년간 조선에서 온 이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고 접대한 대마도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다양한 유적들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8월 초가 되면 이즈하라항 축제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하는 행사도 벌어진다. 대마 호텔 앞으로 흐르던 긴 하천 벽에도 조선통신사의 행차를 그린 벽화와 더불어 에도시대 조선국 통신사의 첫 기항지라 표시해 놓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의 증가와 더불어 조선통신사에 대한 대마도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다시 늘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 |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일본으로 보낸 외교 사절단이다. 조선의 최고 관료와 학자, 문화인을 비롯해 악대, 소동(小童), 무인(武人), 통역관 등 300~500명에 달하는 대규모였다.
 
 
수선사는 아사순국한 최익현 선생의 시신이 조선으로 운구되기 전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마지막까지 조선의 선비로서 자존심을 잃지 않았던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  
 

●면암 최익현
일제가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 

대마도에는 우리의 슬프고 아픈 역사의 흔적들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다. 조용한 주택가의 좁은 골목을 지나 ‘수선사(修善寺)’라 적힌 작고 초라한 사찰에 이르렀다. 계단을 올라 입구로 들어서니 오른쪽 한편에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라고 적힌 순국비가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1905년 10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최익현 선생은 “머리를 굽혀 치욕을 당하기보다는 기력을 분발하여 군신과 백성 모두가 함께 나아가 싸워야 한다”라고 주청하며 7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몸소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의병을 진압하려고 온 진위대가 관군이라는 것을 알고 동포끼리 서로 박해를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스스로 의병을 해산시킨 후 체포 압송되어 대마도로 유배됐다. 이후 일제의 온갖 회유와 강압에도 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가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으로 저항하다 유배된 지 4개월 만에 결국 아사 순국하였다.
 
“나라가 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 데 있으며 국권 없이는 모든 것을 잃는다”라고 가르쳤던 선생께서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을 아셨다면 저승에서도 피눈물을 흘렸으리라. 긴 세월을 돌아 이제는 관광객으로 대마도 땅을 다시 밟는 후손들을 보시면서 비로소 안심하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가 위치한 대마도 종(宗)씨 가문의 가네이 시조 입구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을 들으며 결혼 봉축비를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덕혜옹주
단 한 번만 방문한 시댁

덕혜옹주의 결혼 봉축비는 대마도 종(宗)씨 가문의 가네이시조(金石城)에 위치해 있다. 37대 대마도 번주였던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덕혜옹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당시 대마도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성금으로 1931년 건립된 비석인데 1955년 두 사람의 이혼 후 철거되었다가 2001년 11월에 다시 복원되었다.
 
이즈하라에 기념비가 있을 뿐 덕혜옹주는 결혼식도 도쿄에서 올렸고, 도쿄에서 주로 생활했다. 덕혜옹주가 대마도를 찾은 건 결혼한 해에 단 한 번 인사차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고종황제의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 극진한 사랑을 받고 귀하게 자랐지만 고종이 승하한 후 덕혜옹주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14세의 어린 나이로 정든 궁궐을 떠나 도쿄로 강제 유학을 떠나게 된 이후 나라 잃은 황녀의 삶은 철저하게 불행했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의 대상이었고, 마실 물을 항상 보온병에 들고 다닐 만큼 독살에 대한 공포심을 안고 살았다.
 
일본의 강요로 소 다케유키와 정략적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도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외동딸 정혜를 낳고 우울증과 정신병이 극도에 달해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1955년, 합의 이혼을 했으며 1956년에는 그녀의 딸 정혜 또한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어 영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정신병원에 있던 덕혜옹주는 1962년, 비로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1989년 4월2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왕녀로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삶의 어느 한 부분도 행복하지 않았던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을 들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결혼 봉축비를 보노라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늘에서 우리 모습을 지켜본 덕혜옹주도 눈물을 흘렸음일까? 마침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렸다.
 
대형 대포였던 풍포대는 대한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포탑 포대였다
굴개식 지하 구조물인 풍포대적은 강제 징용 희생자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
피땀으로 만든 대마도 요새 

왕족의 삶이 이러했으니 민초들은 오죽했을까. 일제시대 대마도에는 2만여 명의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군비 확장 계획을 추진했는데, 쇼와(昭和) 천황 초기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지형이 긴 대마도에 남북으로 총 31개의 포대를 설치하여 요새화하는 일을 추진했다.
 
풍포대(豊砲臺)도 그중 하나다. 포신의 길이만 18.5m, 포신 중량 108톤, 사정거리가 30km에 달할 정도의 초대형 대포로 대한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포탑 포대였다. 와니우라의 오테로에 남아 있는 풍포대적(豊砲臺跡)은 1929년 5월부터 1934년까지 5년에 걸쳐 완공된 굴개식 지하 구조물이다. 이 포대를 짓는 일에 우리 조상들이 강제 징용으로 동원되었다. 1939년 이후 1945년까지 일본으로 강제 연행된 이는 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군함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빼앗긴 민초들의 고단하고 험난했을 삶을 보여 주는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단순한 관광 목적으로 대마도를 찾았지만 슬프고 아픈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마주하다 보니 여행이 끝날 무렵 숙연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조들의 아픔과 고통이 묻어 있는 대마도는 그래서 우리에겐 애증의 여행지일 수밖에 없다.  
 
▶travel info
 
 
에보시타케 전망대
까마귀가 모자를 쓴 형상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에보시타케 전망대는 아기자기한 리아스식 해안인 아소만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병풍을 드리운 듯 겹겹이 이어지는 먼 산의 실루엣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소: Nagasaki Prefecture, Tsushima, 豊玉町仁位 817-120  
전화: +81 920 52 1566
 

 
해신과 천신의 와타즈미 신사
에보시다케에서 15분 거리의 와타즈미신사는 대마도 유일의 용왕신사이다. 바다라는 의미의 와타(和多)와 용궁이란 뜻의 즈미(都美)가 합쳐진 말로 ‘바다 속 용궁’을 뜻한다. 천신 히코호호 데미노키모토와 해신 토요타마히메 노미코토를 모시고 있는 해궁으로 바다 신사 중에서 가장 유서 깊다. 본전 정면의 5개의 도리이 중 2개는 바다 속에 세워져 있다. 
주소: 55 Toyotamacho Nii, Tsushima, Nagasaki Prefecture 817-1201
전화: +81 920 58 1488
 
 
사무라이 거리의 돌담길 
이즈하라에는 멋진 돌담집들이 줄지어 있다. 1660년대 간분시대에 사무라이 저택 마을 만들기 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돌담이나 무가저택의 문 등 당시의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어서 산책하며 둘러보기에 좋다. 
주소: 580 Izuharamachi Nakamura, Tsushima-shi, Nagasaki-ken 817-0013
 
 
대마도 최대의 티아라 몰
티아라Tiara 몰은 대마도 이즈하라에 있는 가장 큰 쇼핑몰이다. 각종 간식거리와 주류, 신선한 해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어서 쇼핑하기 좋은 곳이다.
오픈: 월~토요일 09:00~22:00, 일요일 08:00~22:00
주소: 661-3 Nagasaki-ken, Tsushima-shi 817-0021  
전화: +81 920 52 6664
홈페이지:  www.izuhara-tiara.com 
 
 
발해투어 
부산에서 대마도의 뱃길이 열린 데는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의 각별한 노력이 있었다. 자비로 일본 해도까지 구해 주며 대아고속해운을 설득한 끝에 1999년 7월14일 대아고속의 씨플라워호가 역사적인 첫 취항을 한 이후 부산-대마도간 항로가 개설되었다. 
홈페이지: www.valhae.co.kr
전화:  02 3789 5887(부산 사무소 051 253 5887)
 
부산-대마도 페리
대아고속해운 www.daea.com
미래고속 www.kobee.co.kr  |  JR 큐슈 www.jrbeetle.co.kr
 

글 최영미  사진 트래비CB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발해투어 051 253 5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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