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화롄은 파랬다가 푸르렀다가
타이완 화롄은 파랬다가 푸르렀다가
  • 김예지
  • 승인 2017.09.06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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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냐 바다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만큼 난감한 선택이다.
산그늘이 진 해먹에 누워 ‘그래, 이거지’
싶다가도 해 질 녘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니 ‘아니, 이건가’ 싶다.
선택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11번 고속도로에서 만난 바다와 산은 각자의 방식으로 푸르렀다
윈도우 배경화면 같았던 초록 밭
판 아주머니는 꽃처럼 수줍었고, 그녀가 만든 꽃차는 향긋했다
라이 아저씨가 선보인 마지막 코스.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화롄의 츠커산
 
●화롄 花蓮
그 여자의 꽃, 그 남자의 놀이터

산이라면 향기롭다. 너도나도 꽃이 피어오르는 산은 그녀에게 그런 존재다. 산 중턱에 자리한 한 민수(JiaMiYuan)에서 만난 판 아주머니(Ms. Pan)는 보자마자 몹시 안타까워했다. “곧 8월이면 꽃이 필 텐데 좀 기다렸다가 오지 왜, 이제 7월이잖아.” 아쉬운 표정을 한 그녀는 어디론가 앞장을 섰다.

왜 그렇게 그녀가 안타까워했는지 알겠다. 이렇게나 커다란 밭이라니, 꽃이 만발한다면 얼마나 고울까 싶었다. 타이둥에서 화롄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츠커산(赤科山)에는 매월 8~9월이면 노란 백합이 핀다. 꽃구경이 목적인 방문객들과는 달리 이곳 사람들에게 꽃밭은 단순한 풍경 이상인데, 백합으로 차와 음식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 팔기 때문이다. 단 백합을 식용으로 쓰려면 꽃봉오리가 완전히 피기 전에 수확해야만 한단다. 

“글쎄, 꽃이 펴야 한다니까.” 판 아주머니는 여전히 아쉬운 맘이 풀리지 않은 듯했지만 초록 밭은 그 자체로 좋았다. 반대편 산에 몽개몽개 걸린 구름과 풀벌레 소리도. 때로는 미완성이 더 득이 될 때도 있다. 다 피지 않은 꽃은 차와 음식이 되거니와, 꽃 피우지 않은 밭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기도 하니까. 온통 노랑일 이곳을 상상하며 다음번은 기필코 8월이리라 다짐했다.

산이 꽃이 될 수 있다면, 놀이터도 될 수 있다. 츠커산을 떠나 향한 또 다른 산은 창빈에 위치한 사오비에산(掃別山). 인터넷조차 잘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 주후 팜스테이(Juhu Farmstay)에서 라이 아저씨(Mr. Lai)를 만났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산은 놀이동산이나 다름없다. 키 크고 단단한 나무에 그네를 설치하고, 그늘이 드리운 나뭇가지에 해먹을 매달며, 전망 좋은 평지에는 북 카페를 만든다. 라이 아저씨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늘 그렇다는 듯, 묵묵히 트럭을 몰고 온 그는 우리 일행을 뒤쪽에 태웠다.

그의 산 투어(?)는 아찔했다. 좁다란 산길을 차로 쌩쌩 달렸던 시간, 나무에 매단 그네에 올라 타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늘로 급상승한 순간은 지금 떠올려도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일정의 끝은 창대했으니, 산 정상에 올라 마침내 그가 보여 준 풍경은 정말이지 평온했다. 하늘과 바다와 나무와 산. ‘푸르다’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는 모든 색들이 저마다 푸르렀다. 어떠한 말 한마디보다 경험이었던 것이다. 라이 아저씨가 산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JiaMiYuan
주소: No. 271, Neighborhood 14, Gaoliao, Chihke Mountain, Yuli Township, Hualien County 981, Taiwan
전화: +886 3 8851691
 
Juhu Homestay
주소: No. 41, Neighborhood 1, Zhuhu Village, Changbin Township, Taitung County 00962, Taiwan
전화: +886 89 832383
이메일:  ju.hu@msa.hinet.net
 
 
 

●두 밤의 민수
위즈덤 가든 홈스테이(Wisdom Garden Homestay)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밤

여행 내내 동행한 여행사 관계자 비키(Vicky)를 따라간 곳은 어느 서민적인 분위기의 국수집이었다. 이곳 위리玉里에서 3대째 대를 잇고 있는 맛집이란다. 위리는 구역상 화롄에 속하지만 지리상으로 보면 타이둥과 화롄의 중간 지점에 있다. 인구는 3만명 정도, 외국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로컬’ 마을이다. 국수 그릇을 거의 다 비웠을 무렵, 푸근한 인상의 부부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들어온다. 비키의 부모님이자 두 번째 호스트, 쑤 아저씨(Mr. Hsu)와 메이 아주머니(Ms.May)다.

비키네 집, 위즈덤 가든 홈스테이는 어렸을 적 종종 가던 외갓집 같았다. 잘 가꿔진 정원과 두 채의 집이 산장처럼 자리하고 있다. 앞집은 쑤 부부, 뒷집은 오직 게스트를 위한 공간인데 게스트들은 앞집에도 자유롭게 넘나들며 호스트와 함께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눈다. 쑤 부부가 민수를 운영하게 된 사연을 들은 것도 앞집의 거실 테이블에서였다.

미술을 전공한 후 타이베이에 있는 호텔 아트부서에서 일하던 메이 아주머니가 삶의 위기를 느낀 건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지금보다 단순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위리에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본격적으로 민수를 시작한 건 2004년부터였다. “이 집에서 우리가 안정과 평화를 얻은 것처럼, 모든 게스트들이 이 집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편안한 마음이었으면 해요.” 정원과 집을 손수 관리하느라 쉴 틈이 없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10년 넘게 민수를 운영해 온 까닭이다.

메이 아주머니는 밤이면 동양화를 그린다. “꽃을 그릴까, 대나무를 그릴까?” 하며 망설이던 그녀는 이날 밤 진분홍색 꽃을 그렸다. 쓱쓱. 하얀 화선지에 열중한 그녀는 무엇에 홀린 듯이 붓 터치를 시작하더니 마무리로 문장까지 하나 곁들였다. 그 의미인즉슨 ‘하얀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백지와 같아서 무엇이든 채울 수가 있다.’ 다음날, 푸짐한 아침 한 상을 준비한 아주머니는 그림을 정성껏 말아 선물로 주었다. 백지에는 이미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었다.
  
주소: No. 98-1, Suangan, Dayu Li, Yuli Township, Hualien County, Taiwan
전화: +886 38882488  
이메일: vicky_770914@yahoo.com.tw
 
한때 건강이 안 좋았던 메이 아주머니는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말한 자연 속 무릉도원, ‘도화원(桃花源)’에 심취했었다. 산속,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민수. 어쩌면 아주머니는 그녀만의 유토피아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시먼 동굴의 비밀 장소. 찍기만 하면 인생 샷이 된다
몽환적인 분홍빛이 돌던 수이리에 해변
이날 칭수이 절벽의 바닷물 색은 유난히도 파랗게 맑았다
 
●우리만 아는 곳을 알려 줄게

태평양을 곁에 두고 달렸다. 11번 고속도로 위의 화롄, 길에는 온통 바다가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쯤 왔을까, 어디쯤 왔을까. 바닷길 한가운데 기다리고 있는 한 가족이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과 꼭 닮은 딸을 찍고 있는 아빠, 당차 보이는 엄마와 수줍은 아들. 리아 아주머니(Ms. Lia)와 바오 아저씨(Mr. Bao Chuan)네 가족, 이번 여행의 마지막 호스트다.

이날 오후는 특히나 바오 아저씨의 주도 하에 흘러갔다. 사진이 취미인 그는 카메라를 마치 안경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다. 아저씨는 아무도 모르는 장소를 발굴하는 것이 취미인데, 시먼 동굴(石門洞)도 그의 발굴지 중 하나다. 숨겨진 명당이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아저씨는 직접 포토 스폿에 섰다. 하늘과 뭍이 닿는 지점, 실루엣이 그대로 물에 비치는 바위 위였다. 일명 ‘바오의 보물 투어’의 시작이었다.

다음 코스는 가는 길이 험난했다. 한 손에 곡괭이를 든 아저씨가 앞장서서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잡초를 쳐내고서야 겨우 도착한 곳은 칭수이 절벽. 아슬아슬한 높이의 절벽 아래로는 지금껏 보던 바닷물 색과는 또 다른 바다색이 맑게 내비쳤다. 사실 칭수이 절벽은 타이완 8경 중 하나로 화롄에서 꽤나 잘 알려진 명소다. 하지만 자부할 수 있다. 이날 바라본 바다는 분명 남들과는 다른 각도였다고. 닦인 길을 마다하고 우거진 난관을 뚫고서, 길이 아닌 길을 길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자연’경관이었다고 말이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갔다. 보물 투어의 마지막 장소, 수이리엔 해변(水璉海灘)은 언뜻 봐서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사람이 없이 한적하다는 것 외엔 별다른 특징을 찾지 못하던 차, 아저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다 위 하늘을 가리켰다. 해 질 녘 하늘에 옅은 분홍빛이 프리즘처럼 바다 쪽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바오의 보물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었다. 비결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경험과 촉을 두루 겸비한 투어 가이드 덕이다. 
 
‘후씨(呼吸)’는 타이완어로 ‘숨 쉬다’는 의미다. 후씨 비앤비의 호스트들은 게스트들이 이곳에서 잠시나마 숨을 고르길, 그 호흡은 철저히 게스트 자신의 속도와 방식대로이길 바란다. 바오 아저씨네 가족과 직원들은 마치 아이돌 그룹처럼 포즈를 취했다. 각자가 숨을 쉬는 방식으로. 
 

●세 밤의 민수
후씨 비앤비(Huxi B&B)
온 가족의 유쾌한 아지트

여기저기 정성이 묻어났다. 조명이며 액자며, 작은 소품 하나까지 뚝딱뚝딱 만들기를 좋아하는 바오 아저씨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다. 건물 층층에는 어렸을 적 아이들의 사진이 걸렸고, 마당에는 고양이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 후씨 비앤비는 가족의 ‘아지트’ 같은 민수다. 

어떤 한 장소가 아지트가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법하다. 깔끔하고 모던해 보이는 후씨 비앤비는 어느덧 11년이나 된 베테랑 민수다. 원래 옷가게를 운영하던 부부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민수를 열게 됐다고. “온 가족이 호스트가 되어 게스트와 어울려 지내니 더 이상 일과 가정을 분리할 필요가 없게 됐죠.” 리아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저씨는 고양이 밥을 챙기고 아들은 짐을 올려다 놓는 동안 딸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다. 하나로 움직이지만 분업만은 확실한 호스트 가족이다.   

후씨 비앤비의 조식은 귀엽고 앙증맞다. 전날부터 리아 아주머니가 자랑하던 시그니처 메뉴다. 토스트와 주먹밥, 스콘, 푸딩과 과일이 한 트레이에 오밀조밀 차려져 나오는데 그중 포인트는 달걀이다. 껍질을 까 보면 신기하게도 흰자가 반숙이고 노른자는 완숙이다. 이 조리법을 연마하기 위해 무려 1년을 투자했다는 아주머니의 과장 섞인 설은 믿거나 말거나.

아침을 먹고 민수를 막 떠나려는 참, 리아 아주머니는 엽서와 펜을 내밀었다. 바오 아저씨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만든 엽서였는데,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보내 주겠다고 했다. 어색하지만, 나에게 타임캡슐 엽서를 쓰기로 했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조금 더 성장했을까, 지금보다 행복할까. 어쩌면 엽서를 부쳤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고 있을 내년 이맘때쯤 나에게로 부쳤다. P.S. 이 엽서를 받기 전 또다시 이곳에 오고 싶다는 추신과 함께.         
 
주소: No. 22-2, Jixiang 3rd Street, Ji’an Township, Hualien County 973, Taiwan
전화: +886 932 654 870
이메일:  huxihome@gmail.com
 
위리에서 이름난 취두부 맛집. 쉽진 않지만 그래도 도전을 강력 추천한다
▶RESTAURANT
은근히 당기는 그 맛
치아오터우 취두부(橋頭臭豆腐)
 
100m 전부터 존재감이 확 느껴진다. 타이완에서 맛있기로 입소문이 자자한 취두부 맛집 중 하나로, 시간대에 관계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두리안을 먹어 본 자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냄새만큼 맛이 고약하지 않고 오히려 고소하다. 튀긴 취두부 위에는 새콤하게 절인 채소가 곁들여져 올라가는데, 그 조합이 은근 중독성 있다.
오픈: 매일 15:40~10:30
주소: No. 15, Minquan Street, Yuli Township, Hualien County, Taiwan
 
 
▶CYCLING
전원일기 속을 달리는 기분
위푸(玉富) 자전거 길

화롄의 위리와 푸리(富里)를 잇는 자전거 코스. 위리역에서 구 둥리(東里)역까지 이어지는 약 9.8km의 길로, 논밭이 펼쳐지는 시골 풍경을 만끽하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구 둥리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고 자전거를 위한 길로만 조성되어 있는데, 역 앞에 있는 작은 매점에서 사 먹는 시원한 음료수가 더할 나위 없는 보상이다. 
위리역  No. 981, Yuli Township, Hualien County, Taiwan
 
▶Park
웅장하고 굉장하도다
타로코 국립공원(太魯閣國家公園)

타이완의 8개 국립공원 중 하나. 타이완 동쪽 해안에 약 19km 길이로 뻗은 긴 협곡으로, 대리석과 편마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로코’라는 이름은 이 부근에 사는 원주민, 타로코족의 언어로 ‘웅장하고 굉장한’이라는 뜻이라고. 들어갈 때는 안전을 위해 무조건 헬멧을 대여해 착용해야 한다. 공원 안쪽에는 숙소와 캠핑장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주소: Taroko National Park 291, Fushi Village, Xiulin Township 97253, Hualien County Taiwan
전화: +886 3 8621100~6
홈페이지:  old.taroko.gov.tw/English
 
취재협조 키트래블, 에바항공
글 김예지 기자  사진 이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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