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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여행유전자] 아빠의 미소는 백만 불짜리

  • Editor. 채지형
  • 입력 2017.09.27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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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이었다. 산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파키스탄의 훈자마을은 여전했다. 한 달간 머물던 숙소도, 매일 넋 놓고 바라보던 설산 디란도 그대로였다. 훈자에 닿기 위해 불편한 의자에 앉아 스무 시간을 버텼다. 천 길 낭떠러지를 따라 꼬불꼬불 뱀처럼 이어진 카라코람 하이웨이. 몸은 왼쪽 오른쪽으로, 위 아래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힘든 길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훈자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걱정도 됐다. 반갑게 다가갔는데,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다. 

기우였다.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머릿속에 나를 저장해 놓고 있었다. 매일 아침 사모사를 튀기는 할아버지도,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슬람도, 로맨티스트 파야드도 양팔을 크게 벌려 환영해 줬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 또 왔네. 잘 있었어?” 하는 정겨운 인사가 심심치 않게 날아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잘 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보통의 여행자인 나를 무엇 때문에 그들의 메모리에 저장했을까 싶어서 말이다. 어쩌면 훈자 사람들은 모든 여행자를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NGO에서 일하는 압바스와 이야기를 나누다 은근슬쩍 물었다. “너, 잘 웃잖아. 너처럼 매일 미소 짓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거였구나. 역시 미소였어, 싶었다. 

여행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미소가 메가톤급 파워를 가지고 있는지를. 양 입 꼬리를 조금 올리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달라진다. 불편한 상황도, 짜증난 상황도, 위급한 상황에서도 미소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세계여행 대선배인 김찬삼 선생도 ‘웃음은 진정 에스페란토’라며 수많은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소박하고 어진 미소가 더 고귀하다고 했다. 그는 여행하면서 언어와 문화 차이로 위험에 직면했을 때, 오직 미소만이 위험에서 구해 주었다고 강조했다. 1958년 첫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에는 미소 짓기 훈련을 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미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멕시코 오아카에 있는 작은 시장에서의 하루도 떠오른다. 노점에서 할머니가 벌레 튀김을 팔고 계셨다. 웃으며 할머니에게 다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옆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가 거의 다 빠져서 의미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는 열심히 튀김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튀김 하나를 덥석 집더니 무방비 상태의 내 입에 쏙 넣었다. 보기와 달리 매콤한 맛이 그만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앉은 김에 할머니와 시장 한복판에서 튀김을 팔기 시작했다.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맛있는 튀김이라며 소리쳤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상한 여자가 신기해서였는지 튀김 좌판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우리는 튀김을 다 팔았다. 완판! 할머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승리를 축하하는 눈빛을 나눴다.
 
심심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멕시코 시골마을에서의 오후가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졌다. 미소 한 번으로 말이다. 할머니의 까만 얼굴을 수십 결의 주름으로 물결치게 했던 환한 웃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웃음의 위력을 알게 된 후 여행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먼저 미소 지으며 세상을 바라보니 다른 이들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 미소를 받으면 온몸에 행복감이 스르르 번졌다. 눈빛 하나만으로 충만한 행복감을 안을 수 있다니, 웃음의 힘은 체험할수록 놀라웠다. 

얼마 전 페이스북을 열었다가, 일 년 전에 찍은 아빠 사진을 보게 됐다. 추억을 알려 주는 기능 덕분이었다. 아빠가 고이 키운 파키라가 커다란 잎을 화사하게 펼치고 있었고, 아빠는 파키라 뒤에서 함박꽃처럼 웃고 계셨다. 친구들은 아빠의 미소에 댓글을 주렁주렁 걸어 줬다. 놀라운 것은 내 미소와 아빠의 미소가 똑 닮았다는 반응이었다. 

잊고 있었다. 아빠가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분이시라는 것을. 내가 터득했다고 생각했던 미소의 힘도 아빠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는 것을. 파리 에펠탑 앞에서, 베네치아의 곤돌라 속에서, 인터라켄에서 열차를 타면서 아빠가 지어 준 환한 미소가 영화 필름 돌아가듯 머릿속을 아련하게 흘러간다. 오늘따라 아빠의 미소가 사무치게 그립다.   
 
글을 쓴 여행작가 채지형은 허니문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몰디브와 스리랑카를 네 달간 여행한 후 부록 편으로 제주도와 부산, 광주, 춘천 등 우리나라를 두 달간 종횡무진 싸돌아다녔다. 요즘은 여행하면서 업어 온 수많은 ‘예쁜 쓰레기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www.traveldesigner.co.kr
 
*글을 쓴 여행작가 채지형은 허니문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몰디브와 스리랑카를 네 달간 여행한 후 부록 편으로 제주도와 부산, 광주, 춘천 등 우리나라를 두 달간 종횡무진 싸돌아다녔다. 요즘은 여행하면서 업어 온 수많은 ‘예쁜 쓰레기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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