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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의 기술] 생략과 압축의 미학 아웃포커스 사용백서

  • Editor. 김경우
  • 입력 2017.10.12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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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Focus
큰마음 먹고 DSLR 카메라를 산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 이 카메라로 아웃포커스가 잘 된 사진을 찍을 수 있냐는 것이다. 초점이 안 맞는 ‘Out of Focus’를 뜻하는 아웃포커스가 사진에 생기면 배경이 생략되고 초점 맞은 부분만 부각되기에 괜스레 사진이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여행사진에서도 적절하게 아웃포커스를 활용하면 특별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아웃포커스의 정확한 표현은 ‘Out of Focus’다. 그러나 아웃포커스란 용어가 사진계에서 통용되고 있어 이 기사에서는 ‘아웃포커스’로 표기했다.


●주연을 위한 조연의 희생

아웃포커스는 여행에서 언제 써야 효과적일까? 여행지 정보를 다루는 사진에서는 절대 금물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그곳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를 사진으로 보여 줘야 하는데 다 생략되어 버린다면 난감한 노릇. 그래서 아웃포커스를 사용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인도에서 새해맞이행사로 열리는 홀리 축제에서 촬영한 이 사진을 보자.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신명나는 이 축제에서 사람들은 서로 물감을 던지고 뒤집어쓴다. 사람들이 물감과 물총세례를 받는 모습을 화각을 넓게 하고 초점이 고루 맞게 팬 포커스(Pan Focus)로 촬영해도 좋지만 이 사진은 반대로 화각을 좁히고 아웃포커스를 활용해 소년의 얼굴에만 시선이 가게 했다. 소년의 얼굴에 범벅이 된 물감의 색과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피부, 그리고 축제에 몰두한 소년의 표정만으로도 홀리 축제의 특징과 매력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 이 사진에서 화각을 이보다 넓게 잡고 뒤에 배경이 또렷하게 나왔다면 소년의 모습이 그렇게 부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점이 고루 다 맞은 팬 포커스 사진은 이야기와 정보를 담은 스토리텔링 사진에 적합하고 이렇게 아웃포커스가 많이 발생한 사진은 특정 대상과 부분을 부각시키는 디테일 사진에 적합하다. 이 사진에서 배경은 다 생략되고 압축됨으로써 주연인 소년의 특징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영화로 치면 주연을 위한 조연의 역할이겠지.

이 사진처럼 배경을 생략할 수 있었던 것은 초점거리가 긴 망원렌즈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무려 300mm라는 긴 초점거리로 소년을 당겨 찍었고, 소년 뒤의 공간이 골목 쪽으로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뭉그러지는 효과를 줄 수 있었다. 조리개 또한 최대한 개방해서 소년의 얼굴만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아웃포커스는 여행에서 복장이나 행색이 독특한 사람들을 촬영하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정말 주의해야 할 점. 함께 여행 간 동료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지나친 아웃포커스 남발은 금물이란 것을 기억하자. 사람은 잘 나왔는데 어디인지 알 수 없다면 집이나 동네에서 찍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테니 말이다. 
 
촬영지 |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카메라 | 올림푸스 OM-D E-M5 마크2 , 초점거리 300mm, 촬영모드 A(조리개우선)모드, ISO 200, 조리개 F2.8, 셔터스피드 1/640초
 

●효과적인 아웃포커스 사용법

아웃포커스는 잘 쓰면 좋지만 또 잘못 쓰면 사진을 버리게 만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사진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아웃포커스. 여행에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이른바 ‘아웃포커스 사용백서’를 정리해 보았다.
 

1. 팬포커스(Pan Focus)가 우선이다

의외로 아웃포커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프로사진가들이 많다. 사진은 눈으로 보여지는 그대로 찍어야 한다는 지조일까, 아주 약간의 왜곡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범주에 속하는 작가들이다. 그렇게 아웃포커스는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을 엄청나게 왜곡하는 것이다. 관건은 이 왜곡 현상을 무조건 부인할 게 아니라 어떻게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느냐는 것. 그냥 카메라가 아웃포커스가 되니까 찍는 것보다는 왜 아웃포커스 현상이 발생하는지, 그래서 이 현상을 어떤 대상이나 주제에 쓰면 되는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아웃포커스의 매력이 발휘된다.

아웃포커스를 ‘현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과 ‘기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의 실력 차이는 상상 외로 엄청나게 크다. 그러니 아웃포커스 활용도 좋지만 배경을 무조건 날리기 이전에 사진의 모든 부분이 초점이 맞는 팬포커스로 먼저 찍는 연습부터 하자. 팬포커스를 써야 할 때 아웃포커스를 쓰는 것만큼 위험한 사진습관도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웃포커스를 써야 할 때 팬포커스를 쓰는 것은 훨씬 덜 위험한 짓이요, 사진에 치명적인 손해를 남기지는 않는다.
 

2. 조리개를 개방한다고 무조건 아웃포커스?

아웃포커스는 무척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다. 일단 사진에서 초점이 안 맞는 부분은 다 아웃포커스라 부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웃포커스에 대한 오해 하나는 밝은 조리개값을 쓰면 무조건 아웃포커스가 된다는 맹신. ‘조리개가 밝을수록 아웃포커스가 잘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책 속의 이론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예를 들어 벽화 앞에 사람을 세워 놓고 찍을 때 사람이 벽화 앞에 바싹 붙어 서 있고 촬영자가 정면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아무리 조리개를 열어 봤자 벽화를 아웃포커싱 할 방법은 없다.

조리개값보다 심도를 좌지우지하는 절대적인 요소는 사진가와 피사체, 그리고 피사체 뒤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공간적인 비율 차이다. 그러니 아웃포커스를 잘 활용하고 싶다면 조리개값도 중요하지만 항상 촬영하는 나와 피사체의 각도, 그리고 촬영자, 피사체, 배경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 비율에 더 신경을 쓰도록 하자.
 

3. 아웃포커스를 잘 만드는 4가지 요소

아웃포커스에 대한 팁을 알려 준다고 해놓고서는 어째 ‘아웃포커스 안티’로 비춰질 것 같은 내용만 쓰는 듯하다. 이쯤에서 진짜 아웃포커스 잘 만드는 진짜 비법을 풀어 본다.

① 렌즈와 피사체가 최대한 가까울수록 I 아무리 가까운 거리에 있는 피사체를 찍을 수 있는 매크로(접사) 렌즈라도 초점 최단거리는 있기 마련이다. 아주 훌륭한 팬포커스 렌즈인 우리 눈도 한쪽 눈을 감고 다른 눈 쪽으로 손가락을 가까이 대면 10cm 이내의 거리부터는 초점이 잘 안 맞는다. 결국 렌즈와 가까울수록 아웃포커스가 잘 된다는 이야기고 아예 초점을 맞출 수가 없는 경우의 범위도 많다. 그래서 아주 작은 곤충촬영을 할 때는 심도가 너무 얕아서(초점 맞는 부분이 너무 좁아서) 고생을 하게 된다.

② 조리개값이 밝을수록 I 누구나 아웃포커스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듣는 이야기. ‘밝은 조리개일수록 아웃포커스가 잘 된다’라는 것이다. 일면 맞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초점이 맞는 부분과 아닌 부분이 수평으로 동일선상에 있다면 심도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한 극도로 가까운 초점거리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F22같이 어두운 조리개를 쓰더라도 심도를 고루 맞추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조리개가 밝으면 아웃포커싱이 잘 된다’는 이론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좋다.

③ 초점거리가 길수록 I 조리개값보다 심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초점거리다. 우리가 화각으로 이해하고 있는 초점거리는 길수록 아웃포커스에 유리하다. 아니 유리하기보다는 초점을 고루 맞추기가 힘들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망원렌즈 보유자라면 똑같은 조리개값을 써도 광각렌즈보다 망원렌즈일 때 아웃포커스 현상이 심한 경우를 많이 경험했을 텐데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④ 예를 들어 조리개값을 8f로 했는데 16mm로 찍었을 때와 160mm로 찍었을 때 각 초점거리를 조리개값인 8로 나눠 보자. 16mm를 8로 나누면 2mm, 160mm를 8로 나누면 20mm란 수치가 나온다. 이 수치가 실제 조리개 구경이 되는 것인데, 당연히 같은 조리개값이라면 구경이 2mm일 때보다는 20mm일 때 빛을 10배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초점거리가 긴 경우 같은 조리개 기준으로 빛이 부족해 아웃포커스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초점거리 200mm 이상의 망원렌즈로 멀리 있는 일출이나 일몰, 새 등을 찍을 때 F8 같은 어두운 조리개값을 써도 아웃포커스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⑤ 촬영자-피사체의 거리, 피사체-배경의 거리가 멀수록 I 앞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심도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조리개값이나 초점거리보다는 촬영자-피사체-배경 간의 비율이다. 아무리 밝은 조리개를 쓴다 하더라도 상이 맺히는 카메라 CCD와 수평으로 동일선상 거리는 무조건 똑같은 심도로 초점이 잡힌다. 뒤에 공간이 얼마나 무한대로 열려 있냐에 따라 뒷 배경의 선명대가 정해지는데 심도 표현에서는 피사체 뒤의 이 물리적 공간감을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나비 같은 아주 작은 피사체를 근접 촬영한 경험이 있다면 날개에 수평을 조금만 못 맞추면 날개 전체가 초점이 안 맞고 어그러지는 것을 확인한 바 있을 것이다.
 
⑥ 여행에서 망원렌즈로 인물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뒤가 막혀 있는 벽 같은 것을 배경으로 사람을 찍는다면 아무리 조리개가 밝은들, 초점거리가 긴들 사람 뒤의 벽은 아웃포커스가 되지 않는다. 종 방향으로 뒤가 끝까지 열려 있는 골목이나 메타세쿼이아 숲길 같은 곳에서 사람을 찍을 때래야 아웃포커스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 그러니 무턱대고 밝은 조리개를 쓴다고, 망원렌즈를 쓴다고 아웃포커스가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하자.
 

4. 창의적인 아웃포커스 사용법

머리 아픈 이론 이야기를 다 떠나서 결론은 여행에서 아웃포커스를 적재적소에 잘만 사용한다면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진을 찍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그냥 무턱대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결국 아웃포커스를 시도하는 이유는 초점을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음으로써 초점이 맞아야 하는 부분을 더 강조하고 시선을 더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다른 요소들은 고민하지 말고 그 점에만 집중한다면 효과적인 아웃포커스 사용을 할 수 있을 터. 생략과 압축이 주는 미적 요소는 사진에서 꽤 효과적이다. 사진에서 어떤 요소들이 압축되고 생략되면 반대급부로 어떤 요소들이 한층 살아날지를 생각해 보자.
 

한국 가평
아웃포커스는 배경 속에서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에 가장 효과적이다. 사진 속의 은행나무숲처럼 똑같은 색 패턴의 공간이 넓게 있을 때는 과감하게 아웃포커스를 해도 좋다. 이 사진에서는 배경뿐 아니라 촬영자와 인물 사이에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아웃포커스가 되어 가을 정취와 인물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일본 교토
주연뿐 아니라 조연도 중요한 경우에는 아웃포커스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 교토의 밤거리를 걷는 게이샤처럼 주연의 중요성이 한없이 클 경우, 배경은 횟감을 돋보이게 해주는 무채의 역할을 한다.
 
스위스 베른알프스
여행에서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복장이나 특징이 있는 사람을 촬영할 때가 있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기다란 호른을 연주하는 아저씨에게 촬영을 요청했고, 흔쾌히 승낙을 받은 뒤 환하게 웃는 표정을 망원렌즈를 사용해 클로즈업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 뒤에 알프스 설산의 모습을 아예 더 흐릿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여기가 알프스란 것을 더 보여 주기 위해 조리개를 너무 개방하지 않고, F8 정도로 조여서 촬영해서 어느 정도 설산의 디테일도 함께 표현했다.
 
한국 창원
곤충처럼 작은 피사체도 아웃포커스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이 사진에서 잠자리 뒤에 생긴 커다란 빛망울은 호수에 비친 윤슬이다. 초점거리를 300mm 이상으로 무척 길게 하고 역광으로 촬영해 마치 잠자리가 꿈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표현해 보았다.
 
베트남 하노이
어느 정도로 아웃포커스를 해야 하는가는 항상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재래시장에서 촬영한 이 모녀의 사진에서 초점은 아이에게 맞추고 조리개를 많이 개방해서 엄마의 얼굴이 아웃포커스가 되게 했는데 만약 조리개를 더 조여 엄마의 얼굴이 보다 더 또렷하게 나오게 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캄보디아 씨엠립
이 사진에서 주연은 누구일까? 앙코르와트 사원에 새겨진 압사라 조각상과 그 옆을 지나가는 승려 둘 다 중요한 피사체. 하지만 이 사진에서는 천년의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켰을 압사라 조각에 초점을 맞추고 승려의 모습은 아련하게 아웃포커스 했다. 만약 승려에게 초점을 맞추고 압사라 조각을 흐리게 찍었다면? 그 사진 또한 나름의 의미와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 구리
아웃포커스는 꼭 사람을 촬영할 때만 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작은 대상을 촬영할 때 더 효과적이며 아웃포커스 현상도 더 극대화된다. 특히 꽃을 촬영할 때는 스마트폰으로 바싹 가까이 다가가서 줌인을 한 뒤 촬영하면 초점이 맞은 꽃만 부각되게 할 수 있다. 
 
 
글·사진 김경우  에디터 천소현 기자
 
여행사진가 김경우 | 10년간의 잡지 기자 생활을 마치고 틈만 나면 사진기 한 대 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좋아 발 닿는 대로 다녔으나 늦둥이 아들이 태어난 뒤, 아이에게 보여 줄 오래된 가치가 남아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니고 있다.  www.woos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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