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할래? 나랑 같이 태안 갈래?
나랑 결혼할래? 나랑 같이 태안 갈래?
  • 김광욱
  • 승인 2017.11.01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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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압골의 영향으로 주말 동안 중부지방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비가 오겠고…’
화창한 하늘이 무색하게 하는 내일의 기상예보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한 우리 커플의 귓가로 흘러든다. 11월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와 나는 셀프웨딩촬영을 위해 서해안으로의 여행을 계획했다. 몇 벌의 웨딩드레스와 소품을 준비하며 제발 날씨가 좋기만을 바라 왔는데, 이보다 더 기운 빠지는 소식이 또 있을까. “오빠, 여행 다른 날짜에 가면 안 되겠지?” 여행은 ‘떠나는 순간’이 아닌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문득 스친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은 주말 날씨가 예보된 그 순간, 삐그덕거리며 막 시작된 것이다. 

갓난아기의 밤잠과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절대 믿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던가. 혹시나 일기예보가 오보로 끝날 것을 기대하며 태안으로 떠났다. 다행히도. 2017년 9월30일 오전의 부산 하늘은 ‘맑음’ 이었다.

부산에서 태안까지의 여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고, 때때로 불친절했다. 몸뚱이만큼 큰 캐리어를 끌고 기차와 버스를 오가며 6여 시간 만에 도착한 태안에서 차가운 빗방울이 우리를 반긴다면 예비신부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하지만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약 10여 년 만에 찾은 태안의 하늘은 전형적인 10월의 가을 하늘이었고, 서해안의 풍경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무심코 돌아본 예비 신부의 얼굴도 먹구름 한 점 찾아 볼 수 없는 맑음이었다.
 
 
1 갯벌 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선 신부. 이질적인 조화가 아름답다
 
●몽산포 해수욕장을 향해

숙소는 몽산포 해수욕장 근처의 작은 펜션이었다. 10년 전 봉사를 위해 찾았던 만리포 해수욕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서해안. 짐을 풀고 서둘러 웨딩촬영 준비를 했다. 도우미 하나 없이, 나는 찍고, 신부는 찍힌다.

다만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신부는 홀로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했으며, 숙소에서 해안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잘한 문제점을 하나쯤 덧붙여 보자면, 신부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펜션에서 해안까지 가려면 꽤나 큰 규모의 캠핑장을 가로질러야 했으며, 심지어 신부는 촬영 도중 한 벌의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어야 한다는 정도일 뿐. 물론 이 모든 문제점은, 갈아입을 웨딩드레스와, 촬영소품, 카메라 등의 모든 것을 넣은 캐리어를 끌고 서해안의 갯벌을 가로질러야 하는 나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것들이지만 말이다.

숙소에서 해안가로 이동하는 길목은 약간의 자갈과, 작은 숲, 그리고 그 규모에 맞는 캠핑단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의 회복력은 대단하다. 그 많던 기름, 서해안 생태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가늠도 되지 않던 재앙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강하게 회복된 태안 앞바다와 서해안의 갯벌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날씨임에도 촉촉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물론 촬영 도중에도 몇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다. 훌륭한 회복력을 가진 서해안의 갯벌은 살아 숨 쉬고 있었고, 그 숨구멍으로 우리를 마중 나온 작은 게들이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타고 올랐지만 그 또한 정말로 ‘사소한’ 문제였을 뿐이다. 그 까맣고 어두운 기름 밤을 이겨 낸 서해안 갯벌의 모든 생명체에게 찬사를 보낼 뿐이다.
 
 
2 숙소 펜션을 배경으로 한 컷. 부케를 든 신부의 얼굴도 날씨처럼 맑다 3 원숄더 드레스로 갈아 입은 예비신부는 살짝 지친 표정을 지어도 아름다웠다 4 서해안의 낙조 아래에서 “Will You Marry Me?”
 
●Will You Marry Me?

결과적으로 우리 여행의(셀프 웨딩촬영) 스케줄은 여행의 첫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날의 비소식은 이미 기정사실이었고, 우리 커플은 준비해 온 모든 소품을 첫날에 모두 소화해야만 했다. 다행히 예비신부는 태어나 서해 바다를 처음으로 접해 봤으며, 예비 신랑은 입담이 좋다. 가을의 서해안은 황홀한 낙조를 우리에게 선사했고, 예비 신랑은 갖은 감언이설과 아부로 그럴싸한 사진과 추억을 몇 컷 담아 낼 수 있었다. 이 사진들은 앞으로 기나긴 우리네 결혼생활이라는 여행에 있어 첫 발자국이 될 것이다.

예비 신랑은 아직 신부에게 프러포즈도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이 글이 프러포즈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장난끼 많고 모자란 남자를 데리고 살아 줄 하늘 같은 예비 신부께 이 글을 바친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여인아. 

Will You Marry Me?
 
글·사진 김광욱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충남편’ 
이 지면에 소개된 4편의 충남여행기는 지난 8월21일~9월6일 사이에 한국관광공사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진행되었던 이벤트를 통해 선발된 팀들이 작성한 것입니다. 자세한 여행기는 한국관광공사 페이스북 ‘대한민국구석구석’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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