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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가이드북 너머 홀로 버스여행

  • Editor. 안영관
  • 입력 2017.11.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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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牙山  
친숙한 길 ‘읍내동’

오전 8시25분, 온양온천역에서 외암민속마을로 향하는 101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창을 통과하는 가을볕에 곡식의 고개뿐 아니라 사람들도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15분쯤 지났을까, 버스는 읍내동에 있는 한 친숙한 길목에 들어섰고 나는 창밖을 응시하며 깊은 사색에 잠긴다. ‘읍내동’은 할머니가 살아생전 거주했던 동네였기에 애정을 넘어 애환이 서린 장소였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버스도 정류장을 떠나듯, 먹먹해진 마음도 곧 지나리라 믿고 현실에 주어진 여행길에 집중했다. 

우여곡절 끝에 101번 버스의 마지막 승객으로 정류장에 하차했다. 입장시간에 맞춰 찾다 보니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외암마을은 약 500년 전, 예안 이씨를 중심으로 민가가 형성되어 건재고택, 참판댁, 송화댁, 교수댁 등 다수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 전통마을이다. 소나무길에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과 함께 시작된 마을 견학은 ‘조선시대 과거 여행’이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푸른 들녘은 수수한 매력을 뽐냈으며, 돌담길에 만들어진 시원한 나무 그늘은 힐링을 선사했다. ‘느림의 고장’ 외암마을에서도 빠르게 지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곗바늘이다. 자연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다가 버스 시간을 놓친 것이다. 결과는 다행히도 구수한 입담을 가진 기사님의 배려로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푸른 소나무 터널을 지나면 홍살문에 다다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
현충사 중앙부에 자리한 소나무는 독특한 모양으로 솟아 있다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2년 전 현충사를 처음 찾았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마침 아산에는 첫눈이 내려 아늑한 현충사를 걸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추억을 더듬어 다시 현충사를 찾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곡교천 은행나무 길을 지나는 버스, 거대한 은행나무가 전하는 청량감은 어마어마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내려 곡교천의 푸른 기운을 품고 싶을 정도였다. 뚜벅뚜벅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이순신 기념관을 지나 충무문에 들어섰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현충사를 찾았다. 충무문 옆 연못에는 충무공과 그 후손들의 편액이 걸린 ‘정려’가 있는데 그 앞으로 예상치 못했던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오후 햇살에 비친 배롱나무의 초록 잎과 붉은 꽃이 어찌나 예쁘던지 한참 동안을 자리에 서서 감상했다. 

현충사 중앙부에 위치한 거대한 소나무는 현충사, 충무공 고택, 구 현충사, 충무문을 연결하는 길목이자 사당의 기품을 담당하고 있다.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압도적인 크기에 입이 쩍하고 벌어진다. 이런 수려한 풍경은 홍살문 소나무길을 지나 현충사 앞까지 이어진다. 사당에 올라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참배의 효과였을까, 아산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나의 두 발은 푸른 하늘만큼이나 가벼웠다.
 
 
수풀이 우거진 백제 임존성은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였다 
 
●예산 禮山  
임존성의 두 남자

임존성은 백제시대 지어진 산성이다. 예산군 대흥면에 위치하며 그 둘레는 2.8km이다.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백제가 멸망한 뒤 부흥군의 근거지로 신라군과 끝까지 맞서 싸우다 함락된 백제의 아픔이 서려 있는 봉수산의 산성이다.

예산군 동산리 시골마을에서부터 임존성 탐방이 시작됐다. 생각보다 경사진 마을 길, 탐방로가 시작되는 대련사 앞까지 걷는데도 얼굴에 땀이 맺힌다. 수풀이 우거진 산길을 20분 정도 오르니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을 오르니 봉수산 능선을 따라 임존성이 펼쳐졌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성 길, 비록 복원된 모습이지만 백제의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이슬 맺힌 산성 길의 중간쯤 갔을까,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다.

“어이구! 젊은 친구가 어디서 왔어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임존성에서 두 남자가 만났다. 예산 현지인은 젊은 사람이 기특하다며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봉수산에 오르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예산의 문화와 역사, 여행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30년이 넘는 나이 차에도 서로의 관심사가 같다는 이유로 금세 친해질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사회생활도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누비며 여행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 역사도 자연스레 알게 되잖아요? 제가 예산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아직 다 알지 못해요. 그만큼 세상은 넓고 배울 게 많죠. 시간 날 때 여행을 많이 다니세요.”

연륜에서 묻어나는 경험담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렇게 대화는 40분 동안 지속됐고 제시간에 버스를 타지 못해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임존성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산했다.
 
사찰 경내에 만개한 붉은 꽃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행지, 그 이상의 의미

“예산을 간다고? 예산 하면 수덕사지!”
예산이 고향인 지인이 말했다. 임존성에서 만난 현지인도 다음 일정이 수덕사라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때문에 더 큰 기대를 하게 된 건 사실이다. 수덕사는 행정구역 상 예산군에 포함되지만 홍성군과 경계점에 위치해 있어 일반적으로 홍성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게 시간 절약에 더 효율적이다. 

사찰에 들어서기 전부터 수덕사의 위엄이느껴진다. 축구장 규모의 커다란 주차장에 한 번, 사찰 매표소까지 이어진 거대한 상권에 두 번 놀랐다. 사찰의 시작점을 알리는 일주문에는 ‘덕숭산수덕사’와 ‘동방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을 나란히 걸어 7교구 본사의 품격을 높인다. 짙은 녹음으로 뒤덮인 금강문과 사천왕문 샛길에는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꽃무릇이 만발했다. 예상치 못했던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한참을 붉은 꽃무릇과 함께하다가, 황하정루 넘어 계단길에 올라선다. 곧 보게 될 계단 너머 전경은 어떤 모습일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기대감은 한층 더 높아진다.
 
덕숭산의 정기를 품은 고고한 수덕사의 건축물들 그리고 푸른 하늘의 조화가 멋스럽다. 그중 단연 돋보였던 수덕사 대웅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조건물답게 고귀한 멋을 뽐낸다. 대웅전 편액을 기준으로 층층이 위치한 삼층석탑과 금강보탑, 삼층석탑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백련당과 청련당은 수덕사의 정밀한 건축양식을 보여 준다. 그저 바라만 봐도 평안해지는 수덕사의 전경을 백련당 툇마루에 앉아 눈과 마음속에 담아 낸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30분, 1시간을 그 자리에 앉아서 말이다.
 
고요함이 머문 사찰 경내. 스님이 극락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밤이 되자 포룡정으로 이어진 목조다리에 조명이 켜진다

●부여 扶餘 
무량사 가는 길

3일차 첫 여행지는 무량사였는데, 무량사가 있는 ‘부여군 외산면’은 보령시와 청양군이 만나는 접점에 있어 3개 시군의 시내버스가 외산을 지난다. 하지만 보령은 기차와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고, 부여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남은 건 청양뿐. 오전 8시, 외산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금세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에 들어선다. 시간은 30분쯤 걸렸으니 생각보다 빠른 도착이다. 이제 외산에서 무량사까지 1.6km의 거리는 부지런한 두 발이 담당한다. 

졸졸 실개천을 따라 무량사에 도착했다. 만수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무량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답게 운치 있는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천왕문 앞까지 이어진 만수산의 나무 그늘은 느긋한 분위기를 더한다. 하나의 작품처럼 가지 내린 소나무와 느티나무 아래로 2층 건축물인 ‘극락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한한 것을 나타내는 ‘무량’과 아무 걱정 없는 세상 ‘극락’이 만났으니 극락전은 무량사의 걸맞은 본전이었다. 우화궁 사잇길에 오르니 무량사에서 생을 마감한 설잠스님,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화를 모신 영정각의 모습이 드러난다. 절로 경건해지는 발걸음, 종교는 없지만 가벼운 인사를 한다. 시간은 어느덧 오전 10시, 고요함이 머문 사찰 경내에 목탁소리를 시작으로 스님의 의식행사가 시작된다. 한없이 맑게 퍼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벼운 산책에 나선다.
 
가지가 하트 모양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사랑나무. 나무 너머로 주변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극락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오층석탑의 꼭대기를 보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젖힌다
 
 
사랑나무 아래 따뜻한 인정

성흥산 트레킹은 부여와 강경을 잇는 소박한 마을, 임천에서 시작된다. 성흥산의 높이는 260m로 오르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탐방로는 마을 상단부에 위치하는데, 여기서 바라본 마을 전경이 참 예쁘다. 알록달록 빨갛고, 파란 지붕 너머로 가을을 알리는 노란 벼가 가득하다. 

어느덧 사랑나무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몸체 한쪽으로 하트 모양을 띄고 있는 굴곡진 나뭇가지를 눈으로 확인하니 가히 ‘사랑나무’라 불릴 만했다. 수령은 400년, 이토록 기나긴 세월 동안 느티나무가 품어 온 풍경은 얼마나 다양할까. 사랑나무 너머로는 부여, 논산, 익산 일대가 한눈에 조망됐다. 백제의 가림성이 이곳에 축성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랑나무를 사진에 담고 있는데 한 중년의 남자가 나를 불러 세운다. 사랑나무를 홀로 찾은 청년이 궁금했었나 보다. 내 카메라를 보며, 버스로 성흥산을 찾았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대단하다고 한다. 머쓱한 표정이 나오려던 찰나에 중년의 남성은 내가 ‘나이에 맞는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것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름다운 백제의 정원

2박 3일간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도 날씨가 좋다. 예쁜 노을빛을 상상하며 부여 터미널에서 궁남지로 향한다. 궁남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졌으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연꽃은 없고 연밥만 가득한 공원 사이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볕이 들어온다.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이 시작된 것이다. ‘수려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전경이었다. 잔잔한 연못 한가운데 놓인 포룡정 그리고 땅과 포룡정을 잇는 목조다리는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궁남지의 일몰은 강렬하진 않지만 연못의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나의 마음을 물들여 갔다. 

궁남지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난다. 3일간의 여정이 끝이 난다는 증표다. 떠나는 발걸음을 그윽한 달이 붙잡는다. 백제 무왕의 간절한 마음이 이러했을까, 나 역시도 부여의 달빛 아래 계속 머물고 싶었다.
 
글·사진 안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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