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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옛 실리콘밸리, 오카와치야마

  • Editor. 권라희
  • 입력 2017.12.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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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tery Village  
코발트 블루빛 슬픔,
도자기의 옛 실리콘밸리

  
오카와치야마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이마리시에서도 가장 안쪽의 산간벽지에 자리해 있다. 에도시대에 바닷길을 따라 서양으로 전해졌던 아리타, 이마리, 하사미 도자기는 생산지가 아니라 출항 도시의 이름으로 각인된 것이다. 실제로 도자기가 생산되었던 곳은 오카와치야마처럼 작은 오지 마을들이다. 
 
산골 깊숙이 자리한 도자기 마을 오카와치야마의 초입
전통적인 것부터 모던한 것까지 다양한 도자기를 팔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에 도자기 장식이 있다. 골목 구경에 푹 빠진 원정대가 잠시 모였다
마을 입구의 도자기 다리. 그 너머로 고려인 도공들을 포함해 연고를 알 수 없었던 도공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과 ‘도공무연탑’이 보인다.
도자기 다리 중앙에 서 있는 백자는 화려한 코발트 블루빛이다.

오카와치야마(大川内山)에 도착하니 바람결을 타고 도자기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흰 구름이 산 중턱에 걸린 거대한 바위뵤부이와, 돈고이와와 산세이라마야을 뒤로한 신비로운 풍경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려면 도자기 다리나베시마한 가마하시를 건너야 한다. 다리에는 백자에 코발트 블루빛 염료로 그림을 그린 도자기가 중심에 있다. 난간은 조각난 도자기로 장식하고 다리의 벽면은 도자기 타일로 총총히 박아 두었다. 도자기로 화려하게 장식한 다리 하나만으로도 이곳의 예술적 분위기는 이미 짐작된다. 숨겨진 가마터, 즉 ‘비요(秘窯)의 마을’이라는 별칭이 잘 어울린다.

다리를 건너니 도자기 타일로 크게 만든 마을 지도가 보인다. 도공들을 지켰던 관문, 도공의 집, 가마터, 도공의 묘, 번요 공원 등이 표시되어 있다. 나베시마 가마를 포함해 30여 개의 가마가 곳곳에 있어 도공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임을 알 수 있었다. 34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품은 곳인 만큼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라 덩달아 차분해진다.

1675년 사가 나베시마 영주는 도자기의 높은 품질과 기술력을 유지하려 애썼다. 당시 도자기 산업은 서양에서의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번성기를 맞았다. 도자기 제작 기술이 있으면 팔자를 바꾼다 할 정도로 큰 부를 쌓을 수 있었다. 당시에 도자기 기술은 현대 IT 기술과 맞먹을 만한 첨단 기술 산업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영주는 그 기술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아리타에서 험난한 지형의 오카와치야마로 가마를 옮겼다. 입구에 관문을 설치하고 도공들을 감시했다. 1871년까지 이곳에 일반인은 출입도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도자기는 다이묘나 장군, 조정에 바치는 헌상품으로 ‘나베시마(鍋島) 도자기’ 라 불렸다.

경사진 마을길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생각보다 꽤 가파르다. 여기에 아기자기하게 지어진 일본식 전통 가옥이 마주보고 줄지어 있다. 창 안팎에 전시된 각양각색의 도자기들이 제멋을 뽐내며 보아 달라고 손짓한다. 마을 전체가 도자기 전시 및 판매장이지만 상업화된 느낌보다는 예술가의 작은 공방에 들른 느낌이다. 

걷다 보니 마을 길 중간에 벽돌로 지어진 높다란 굴뚝이 떡하니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 굴뚝에서 연기를 피워 내며 매일같이 도자기를 구웠을 수많은 도공의 숨결이 느껴진다. 생애를 도자기에 바쳤던 한국과 일본의 도공 880여 명이 묻힌 ‘도공의 묘’는 굴뚝의 대각선에서 마을을 바라본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사연만큼 도자기 속 그림의 코발트 블루빛 같은   애잔한 슬픔이 배어나는 곳이다. 연고가 없는 묘지 석주를 모은 ‘도공무연탑’과 매화동산에 세워진 ‘고려인의 비’가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0년 동안 강제 연행된 조선의 사기장들은 대략 10만명에서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일본 내에서도 도자기의 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도조 이삼평(출생년 미상~1655년)도 그중 한 명이었으며, 사가현 서쪽에 위치한 아리타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아리타 도자기의 역사를 열었다고 평가된다. 이삼평은 처음에는 가라쓰 부근에서 도기를 제작하다가 조선 백자를 만들 수 있는 흙을 찾아서 아리타로 이주했다고 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터전을 일구고 꿋꿋하게 살아간 이들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전한다.

오카와치야마의 가옥을 살피다 보면 명패를 대신하여 도자기 오브제를 세워 둔 것을 볼 수 있다. 도공들이 사는 도자기 마을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도자기를 만든다는 도공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비요 마을에서 본 도자기는 백자에 빨강, 초록, 노랑 등으로 색을 입혀 화려하다. 이는 이마리 도자기의 특색이다.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이마리야키를 처음 수출하면서 유명해졌는데 당시 유럽인들이 좋아했던 중국풍이나 유럽의 취향을 반영해 제작되었다. 또한 아리타 도자기가 이마리 항구를 통해 수출되면서 통칭 이마리야키가 되었다 한다.

이 마을을 둘러싼 세이라마야에서 흘러 내려오는 실개천을 따라 경사길을 쭉 걸어 내려온다. 계단 연방식 가마를 발견했는데 옆에 장작더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사용 중인 가마였다. 이곳에는 오래되어 폐쇄된 가마도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30여 채의 가마에서 도자기를 제작하고 있다. 까맣게 그을린 가마처럼 여러 세대를 거쳐 비요의 마을 오카와치야마의 ‘시간의 더께’는 그렇게 쌓여 온 것이다.

오카와치야마에서는 해마다 도자기 시장이 열린다. 2월에서 3월 중순경 자기히나마츠리(瓷器雛祭り), 풍령 축제는 6월에서 8월, 나베시마 번요 가을축제는 11월1일에서 5일, 국제아마추어도예전도 7월1일에서 5일 사이에 열린다. 도자기의 매력에 빠졌다면 이때 이곳을 찾아도 좋겠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어귀에 다다르니 논밭이 눈에 들어온다. 벼가 노랗게 익어 간다. 마을 입구에 놓인 도자기 다리에 총총 박힌 꽃잎처럼, 자기를 뜨겁게 구워 내는 가마 속의 불길처럼 붉은 해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주소: 1806 Okawachichootsu, Imari-shi, Saga
전화: +81 955 23 7293
찾아가기: JR 이마리역에서 택시로 15분, 버스로 20분(하루 5편)
홈페이지: www.imari-ookawachiyama.com
 
 
글 사가현 원정대 권라희  사진 권라희, 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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