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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을 보다 오름에서 보다

  • Editor. 김선주
  • 입력 2017.12.0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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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르는 맛을 알아버렸다. 이참에 오름 완등에 나서볼까…. 
객쩍은 결심도 서슴지 않게 만드는 오름의 매력! 
오름 초짜의 오름 오른 이야기! 
 
백약이오름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오르면 보이는 오름의 맛

제주 오름은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았다. 봉긋한 것 뾰족한 것 도도록한 것 주저앉은 것 볼록한 것 큰 것 어중간한 것…. 사람들 말과 기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 많기도 하거니와 생김새도 제각각이니 그것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관조의 미에 먼저 끌린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제주 오름을 오롯이 조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호사 아닌가!

오름에 오른 적이 아예 없지는 않다. 오름인지도 모른 채 몇 곳 올랐다. 도두봉이나 어승생악처럼 오름인데 오름으로 불리지 않는 오름들 말이다. 산굼부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얼마나 바보스러웠단 말인가! 오름은 제주도 방언으로 언덕, 봉우리 등을 뜻하니 ‘악’이나 ‘봉’이라는 글자에도 주목했어야 했다. 산굼부리의 ‘굼부리’가 제주도 말로 분화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을 그마나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제주의 모든 오름은 한라산에서 비롯됐다. 한라산에 딸려 함께 만들어진 기생화산이다. 한라산이 완성된 뒤 땅 속 마그마가 제주 이곳저곳으로 가지를 치며 솟구친 흔적이 바로 오름이다. 부풀었던 대지가 꺼지거나 그대로 굳어서 오름이 되기도 했다. 성산일출봉처럼 바닷물과 만났을 때는 더 크고 높게 솟구쳤다. 산이어도 보통 산과 다르고, 같은 오름이라도 모양과 크기, 생태가 모두 제각각인 이유다. 그렇게 ‘오름의 왕국’ 제주가 탄생했다.

오름에 해박하지는 못했지만, 괜찮다. 의도치 않은 등정 덕분에 뜻하지 않은 감흥을 얻었으니 말이다. 바라봤을 때는 그저 하나의 단조로운 곡선이었던 오름의 능선은 다가갈수록 입체의 다면으로 물결처럼 넘실댔다. 멀리서는 밋밋해 보이기만 했던 오름의 속살은 수많은 동식물의 터전으로 생동했다. 무엇보다, 오름에서 바라보는 조망미가 오름을 바라보는 관조미 못지않게 컸다. 이 맛에 빠져 오름만 파고드는 ‘오름꾼’이 되는가보다. 더 이상 바라만 보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오름 오를 생각에 조바심이 일었다.
 
백약이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주변에 봉긋봉긋 솟은 오름들이 멋진 경치를 선사한다

●백약이오름 
이토록 정겹고 포근할 수가

백약이오름으로 향한다. 제주의 오름은 한라산 산자락부터 해안까지 도처에 산재해 있는데, 그 와중에도 무리를 지은 ‘오름 군락’이 대여섯 군데 있다. 백약이오름이 있는 송당 오름 군락도 그런 곳이다. 오름 군락지는 오름에서 오름으로 오가기 편한 것은 물론 오름과 오름이 서로의 풍경으로 서기 때문에 인기가 좋다. 백약이오름은 도로변에 바로 붙어 있어 접근성까지 좋으니 첫 등정 오름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한산하던 도로가 정체를 빚을 만큼 여행객들로 붐빌 줄이야…. 심지어 관광버스도 관광객을 연신 뱉어낸다. 얼마 전 TV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나오더니 그 덕에 인기가 더 높아진 게 분명하다. 꼬마를 앞세운 가족, 손잡은 연인, 백발의 노년부부, 한 무리의 동창생…. 모두들 퐁퐁퐁 설렘 가득한 발걸음으로 백약이오름 꼭대기를 향한다.

백약이오름, 이 얼마나 호기심 자극하는 이름인가. 예부터 백가지 약초가 많이 난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약재로 쓰이는 초피나무, 방아풀, 꿀풀, 쇠무릎, 인동덩굴 등이 오름 안에 자란다고 한다. 백 가지 즐거움도 함께 머금었으리라. 다른 오름들 이름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지어미와 지아비가 서로 따르는 모양새라 해서 따라비오름, 소가 누워 있는 모습 같다 해서 누운오름, 사슴이 내려와 살았다고 해서 노꼬메오름, 오름 앞 샘 이름에서 따온 정물오름, 정상에 각시바위가 있다 해서 각시바우오름…. 이토록 정겹고 포근할 수가!

백약이오름은 다소 가팔라 보이지만 쉬엄쉬엄 걸어도 30분이면 넉넉하다. 높이 357m. 오름 치고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정상에 있는 분화구는 딱 봐도 제법 큰 축에 속할 크기다. 정상에 오르니, 주변 다른 오름들이 층층이 겹을 이루며 저 멀리 바다로 무리지어 나간다. 먼저 올라와 있던 연인은 그곳으로 나란히 시선을 던진 채 노을을 기다린다.
 
용눈이오름에 방목된 조랑말. 뒤로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용눈이오름은 산책하듯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용눈이오름 
때로는 우리가 보듬어야 할

백약이오름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길 한쪽 언덕이 온통 하얗게 빛난다. 은빛 솜털이 돋아난 듯 가을 억새꽃이 찬란하다. 억새꽃은 언덕을 넘어 오름 저 높은 곳까지 은빛으로 물들인다.
 
용눈이오름이구나,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가을마다 억새꽃이 만발해 사방을 포근하게 감싸는 것으로 유명하니.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 같다, 하늘에서 보면 용의 눈을 닮았다 해서 용눈이오름이다. 높이 248m, 백약이오름보다도 낮으니 산책하듯 가볍게 오르면 그만이다. 건너편에는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오르는 내내 멋진 풍경을 선물한다. 용눈이오름 자체로도 빼어나다. 세 개의 봉우리가 겹쳐져 형성된 복합 화산체여서, 오를 때마다 또 보는 각도에 따라 능선과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2012년 송중기 박보영 주연의 영화 <늑대소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국민 오름’으로도 불린다.

하도 많이 봐와서인지 용눈이오름에 방목된 조랑말들은 사람이 지나쳐도 시큰둥하다. 제 갈길 가고 제 먹을 풀 뜯을 뿐이다. 그렇다. 오름은 그렇게 제주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가축을 기르고 약초를 캐고 마을을 형성해 기대어 산다. 용눈이오름 한쪽 구석에 들어앉은 무덤은 죽어서도 오름에 잠들 정도로 제주 사람들과 오름은 밀접하다 말한다. 

오름에는 아픔도 서려 있다. 인간과 부대낀 상처다. 멀게는 고려 삼별초군이 몽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현장이고, 가깝게는 제주 4·3사건 당시 양민 학살과 시신암매장의 장소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군이 땅굴 진지를 만든다며 오름 이곳저곳을 헤집었다. 가마오름에는 일본군 사령부가 파 놓은 땅굴 진지가 여전히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우리가 보듬어야 할 오름의 아픔이다.
 
 
지미오름에 오르면 우도와 종달포구, 밭담, 성산일출봉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지미오름은 올레 코스이기도 하다
 
●지미오름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한 눈에

백약이오름이나 용눈이오름과 비교하면 지미오름은 한산하다. 한갓진 오름 탐방을 원한다면 오히려 요즘이 적기일 수 있다. 한산하다는 게 볼품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지레 실망할 필요도 없다. 특히 제주의 동쪽 바다를 한 눈에 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 일이다. 그만큼 바다와 가깝다. 높이 164m로 야트막한 대신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우도와 성산일출봉, 바다와 밭담,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거친 숨을 다독인다. 어선들은 끊임없이 종달포구를 드나들며 풍경화를 완성한다. 전망대에서 혼자 독차지하기에는 아까워 셀카를 여러 장 찍어 보낸다. 과거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연기 신호 대신 카톡이 쉴 새 없이 오간다.
 
한라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록담. 맑다가도 먹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리기 일쑤다
한라산 오르는 길은 고도에 따라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마지막 대피소인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한라산 정상에 이르는 등산길 풍경
저 산 꼭대기가 한라산 정상이다

●한라산
오름 대장을 만난다는 것

제주도 368개 오름이 기생화산이라면 ‘숙주화산’은 한라산이다. 높이 1,950m(레이더 실측 1,947m)의 남한 최고봉 화산체. 아무래도 대장격인 한라산을 먼저 오르는 게 순서이겠다 싶어 오름 대신 한라산 등반으로 여정을 바꾼다.
 
등산 5시간 하산 4시간 도합 9시간 코스로 잡는 성판악 코스. 성판악 입구에서 마지막 대피소인 진달래밭대피소까지 7.3km, 여기서 다시 백록담 정상까지 2.3km다. 편도 총 9.6km이니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여름철에는 12시30분까지, 겨울철에는 12시까지 진달래밭대피소를 통과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출발 시각에도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언제였던가, 눈보라와 추위에 막혀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려야했던 기억이 생생해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 잘한 일이다. 입산통제 시간보다 훨씬 여유 있게 도착한 덕분에 대피소 매점에서 한 명당 2개씩만 판매하는 컵라면을 즐긴다.
 
오름의 대장답게 한라산은 산자락에 많은 오름을 거느렸다. 등산길에도 산정호수 분화구로 유명한 사라오름이 유혹하고, 저 아래로는 성널오름이 제 분화구를 훤히 드러낸 채 앉아 있다. 성판악 코스의 진면목은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면서부터다.
 
숲의 나무에서 벗어난 한라산의 속살은 여느 오름처럼 키 낮은 나무와 잡풀로 뒤덮여 단출하고, 한발 한발 오를수록 사방의 시야도 확 트여 호쾌하다. 감동의 탄성은 정상에 선 순간을 위해 아낀다. 다행히 먹구름보다 한발 앞서 도착한다. 백록담과 처음 마주하지만 호들갑 떨지는 않는다. 지긋이 한라산의 2만년 세월을 가늠해본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뭉치여행사 [오름보러 제주愛올레?]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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