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해남을 여행해야 하는 8가지 이유
기꺼이 해남을 여행해야 하는 8가지 이유
  • 김정흠
  • 승인 2017.12.21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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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답사 1번지. 진부하다고도 할 법하지만 이보다 더 잘 나타내는 말이 또 있을까. 수묵화에서 볼 법한 자연 풍경과 전통 예술이 공존하는 그곳에 현대 예술가들이 붓을 더했다. 하나의 거대한 예술촌이 된 해남의 구석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술이 꽃 피는 그곳으로. 
 
 
 
●자연산 버섯과 나물로 차려낸 남도밥상
 
서울을 출발해 약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해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을 먹는 것으로 남도 수묵기행을 시작했다. 남도에서 먹는 음식이라면 길거리 분식도 맛있을 거라는 ‘착한’ 편견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어느 낡은 건물 2층에 자리한 식당 ‘호남식당’이 이번 투어의 첫 번째 장소였다. 
 
 
식당에 들어서자 온통 버섯 사진들로 가득한 벽면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식당 주인장이 직접 수확한다는 자연산 버섯이다. 그 귀하다는 야생 버섯을 잔뜩 넣고 푹 끓여낸 야생버섯탕이 이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버섯 향이 가득 풍기는 뚝배기 그릇에 어떤 것들이 들어갔냐고 묻자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보였던 버섯 사진들이다. 여기에 있는 것들 중 요즘 고개를 내밀고 자라는 버섯이 들어간 것이란다. 테이블 옆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던 주인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곧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버섯 수확부터 식당 운영까지 혼자서 다 해왔기 때문이라고. 더 늦기 전에 한두 번쯤 더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감사 인사를 건넸다. 
  
호남식당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143
전화번호: 061-534-5400
영업시간: 10:00~19:00
주요 메뉴: 자연버섯탕 2인 30,000원, 3인 40,000원, 4인 50,000원, 5인 60,000원 / 별미산채정식(4인 기준) 120,000원(12인 이상 예약 필수)


●버려진 나뭇가지, 예술이 되다

식사를 마친 후 찾아간 곳은 시골의 한 공방이었다. 해남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세일 목수와 함께 목공예 체험이 진행되는 장소다. 이세일 목수는 특별한 방식으로 목공예를 해온 예술가다. 한겨울에 땔감으로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버려진 나뭇가지들로 목공예품을 만든다. 
 

   
그가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숲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러지고 굽은 나뭇가지로 숟가락을 만들거나, 세 발 달린 스톨 의자를 만드는 활동이 이곳에서 진행된단. 숲에서조차 버려진 나뭇가지들은 그의 손을 통해 예술이 되는 셈이었다. 각기 다른 재료를 들고 어떤 모습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생각하며 숟가락을 완성해 나갔다. 눈앞에 놓인 목재를 통해 내 의도를 오롯이 드러낼 수 있었다. 이세일 목수의 말처럼 결과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어쩔 줄 몰랐던 처음과는 달리 점점 더 힘 있게, 자신 있게 조각을 계속해나갔다. 시끌벅적했던 공방은 어느새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목수 이세일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목신길 64-6
이메일: ywbirch@hanmail.net
문의전화: 010-3746-9941

●바다의 창고에서 빚은 술

삼산천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 바다의 창고라는 뜻의 ‘해창(海倉)’이라는 지명답게 논밭이 이어졌다. 그 사이로 오래된 건물이 하나씩 눈에 띄었다. 적산가옥이다. 적들의 재산,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을 목적으로 이곳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만들었다는 창고가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생산한 쌀과 농산물을 잠시 보관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터. 그들은 내륙 깊숙이 들어오던 바닷길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쌀을 생산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해창주조장도 적산가옥 중 하나다. 해창 마을에 쌀 창고를 두고 일본을 오가며 미곡상을 했던 시바다 히코헤이가 1927년에 지은 건물이다. 광복 이후 시바다와 함께 일했던 장남문씨가 이 건물의 주인이 되었고, 1961년 즈음에는 양조장 면허를 취득했다. 그 뒤로 강진에서 막걸리를 빚던 황의권씨가 건물을 인수해 이곳에서 해창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수많은 단골 중에서도 오병인씨, 박리아씨 부부의 관심은 남달랐다. 2008년부터는 이 부부가 주조장을 매입, 지금까지도 해창막걸리가 이어지고 있다. 
 

   
해창주조장에서는 막걸리 시음 체험이 있다. 어찌 보면 막걸리도 하나의 예술이 아니던가. 묵직한 식감만큼 찹쌀 본연의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아름다운 정원 너머 들판을 향해 판소리 한 곡조가 울려 퍼졌다. 해남 지역의 소리꾼인 이병채 명창이 부르는 춘향가의 한 구절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구성지게 꺾일 때마다 한 잔씩 스리슬쩍 넘어가는 막걸리 한 사발. 해창주조장에서 내려다본 고천암 간척지는 붉게 물들어갔고, 해남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해창주조장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 1
전화번호: 061-532-5152
영업시간: 09:00~18:00 (방문 전 전화 필수

●상다리 부러지게, 남도 한정식

저녁은 남도 한정식이었다. 식탁 위에는 홍어삼합을 포함해 30여 가지의 크고 작은 반찬이 줄지어 등장했다. 고급 한정식 전문 식당에 못지않게 하나같이 정갈한 요리였다. 서울에서라면 한 사람당 5만 원 이상은 족히 주어야 했을 텐데, 이곳에서는 약 절반 수준으로 이런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었다. 어느 것부터 먹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이게 끝이 아니라는 말이 들려왔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수십 가지 반찬은 그저 애피타이저였을 뿐. 생선요리와 밥, 국 등에 이어 수정과까지 연달아 이어졌다. 해창주조장에서 따로 구매해 온 막걸리와 함께 겨울밤이 익어간다. 
 

진일관
위치: 전남 해남군 해남읍 명량로 3009
전화번호: 061-532-9932
영업시간: 매일 11:30~21:00 / 넷째 주 월요일 휴무
메뉴: 한정식 2인 기준 60,000원, 3인 기준 80,000원, 4인 기준 100,000원

●천년고찰에서의 하룻밤
 
해남 시내에서 강진으로 건너가 청했던 백련사에서의 하룻밤은 따스했다. 아랫목을 뜨겁게 데우던 이불은 길었던 하루를 충분히 보듬어 주었다. 밤이 지나고, 새벽녘부터 청아하게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시각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단잠을 깨웠다. 문을 열자 밤새 차가워진 공기가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상쾌했다. 옷을 껴입은 채 문 앞에 나섰다. 강진 앞바다를 따라 짙게 낀 안개가 주변을 감싸 안았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둔 듯 수평선 따라 섬들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백련사부터 다산초당까지는 오솔길이 나 있다. 강진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다산 정약용이 그의 절친한 친구인 혜장선사를 만나러 오갔던 바로 그 길이다. 밤사이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거닐었다. 어느 날 적적한 마음을 풀고 싶었을 때, 친구의 얼굴을 보며 차 한 잔 나누고 싶었을 다산과 혜장선사가 그랬던 것처럼. 
 

   
마침 다산(茶山)이라는 그의 호와 어울리게도 주변은 야생 차나무로 가득했다. 겨울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동백나무숲도 그들의 발걸음을 함께 하지 않았을까. 
 

 
백련사
위치: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전화번호: 061-432-0837
웹사이트: http://www.baekryunsa.net
휴식형 템플스테이: 1인 50,000원, 초중고생 40,000원, 미취학아동 30,000원 (1박 2일 기준)

●비자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 때
 
우거진 비자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자 ‘쏴아’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고산 윤선도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겠지. 고택 사랑채에 붙은 ‘녹우당’이라는 이름도 바로 그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하니 말이다.
 

녹우당과 그 일원은 윤선도의 자택이자, 해남 윤씨의 종가가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다. 이 고택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지는 않았다. 효종이 그의 스승의 노고를 기리며 하사한 집을 낙향하며 옮겨왔던 것이다. 왕이 지어준 집을 함부로 방치할 수 없었던 당시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남도로 내려온 윤선도는 녹우당보다 보길도에 지어 놓은 세연정과 낙서재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지만.
 
 

녹우당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등 해남윤씨 집안에 내려오는 작품을 비롯해 여러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을 지나 녹우당을 중심으로 한 마을 길을 따라 들어섰다. 마을 뒤로는 산비탈을 따라 한겨울에도 짙은 녹음을 자랑하는 비자나무 숲이 이어졌다. 산을 오를수록 오래된 비자나무가 푸른 잎을 흩날리며 손짓했다. 적막과 고요가 공존했고,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녹우당이라는 이름을 연상케 했다. 비자나무 잎이 푹신하게 내려앉은 숲길과 고즈넉한 돌담길을 한 바퀴 휘이 돌고 나니, 어느새 수묵기행도 끝자락을 향하고 있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전화번호: 061-530-5548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운영 시간: 09: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미황사에서 받은 선물
 
남도 수묵기행의 마지막 장소는 미황사다. 거칠게 솟은 달마산의 능선은 오래된 대웅보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했다. 고요한 정적이 사찰의 분위기를 한껏 평온하게 했다. 어디선가 스님들의 수행하는 모습만 이따금 눈에 띌 뿐이었다. 
 

대웅보전과 마주 보고 있는 자하루미술관에서는 마침 달마고도라는 길을 조성한 과정을 담아낸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 내걸린 한국화가 조병연 작가의 작품 ‘천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각양각색의 모양인 돌 천 개에 불상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썰물 때마다 바닷가로 나가 돌을 구해 그렸다는 이 작품에는 왠지 부처보다는 인간의 고뇌가 더 담겨 있는 듯했다. 
 

   
미황사의 주지인 금강스님이 손님들을 반갑게 맞았다. 인자한 미소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눈 녹듯 풀어졌다. 세심당 제일 끝 방에 들어가 앉았다. 방에는 미황사와 달마산을 그린 수묵화가 걸려 있었다. 미황사의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것이 남도 수묵기행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차를 나누어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에게는 조언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건넸다. 한 마디마다 짙은 여운이 남았고, 여행이 직업이라고 하자, 스님은 붓을 들어 글귀 하나를 써 내려갔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이곳저곳 돌아다니니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이라는 설명과 함께.
 

  
미황사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전화번호: 061-533-3521

▶예술이 꽃피는 해안선-예술가와 함께 하는 남도수묵기행
 
 
전라남도 해남군의 행촌문화재단에서는 지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통문화체험관광프로그램으로 선정한 ‘예술이 꽃 피는 해안선 - 예술가와 함께 하는 남도수묵기행’이라는 제목의 해남 아트투어를 진행했다. 총 20여 회에 걸쳐 진행된 남도수묵기행은 지역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현대적인 관점과 함께 아우르는 투어프로그램. 행촌문화재단 이승미 관장이 직접 큐레이터로 나서며 깊이 있는 작품 설명과 해남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남도수묵기행은 2018년에도 계속 진행된다. 2018년 개최될 ‘전남국제수묵화비엔날레’와의 연계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쯤 참여해 보자. (문의: 행촌문화재단 061-530-0114)   

글 = 김정흠, 김예지 / 사진 = 김정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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