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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마르 시난의 역작이 있는 도시, 에디르네

  • Editor. 홍경찬
  • 입력 2018.01.0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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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개 창문에 빛이 걸렸다
터키 건축 대가, 미마르 시난을 만나는 여정
 
999개 창문에 동방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스며든다. 
에게해와 지중해를 지나 강을 거슬러 온 동양의 타일 2만2,000개로 장식됐다. 
오스만제국을 대표하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건축가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이 걸작으로 남긴 
셀리미예 사원은 이로써 더 특별해졌다. 미마르 시난 건축기행을 다녀왔다. 
한반도에서 7,000km 떨어진, 오스만제국의 두 번째 수도 에디르네가 첫 도착지였다. 
 
8,000년 된 도시 에디르네에 해가 지고 있다. 에스키 사원에서 바라본 우츠 셀리펠리 사원과 도시 전경. 건축의 대가 미마르 시난의 걸작인 셀리미예 사원도 이 도시에 있다 
1575년에 완공된 셀리미예 사원으로 향하는 길.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에 버금가는 미마르 시난의 역작이다

●Edirne 에디르네
미마르 시난의 역작이 있는 도시 

이스탄불 공항에서 승용차로 3시간. 불확실한 시대에도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내 왔던 이 도시는 1453년 오스만제국이 통일될 때까지 수도였다. 8,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도시의 존재가 두드러지는 두 가지 이유는 바로 미마르 시난(Mimar Sinan, 1489~1588년)의 동상과 그의 걸작인 셀리미예 사원(Selimiye Mosque)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땅을 파면 바로 유물이 나오는 곳이 바로 에디르네다. 
 
셀리미예 사원의 999개 창문에서 빛이 쏟아지고 있다
격자 창문이 아름답다
셀리미예 사원에 주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오스만제국 시대 건축의 대가인 미마르 시난의 동상과 그가 설계한 셀리미예 사원
술탄 메흐메드 2세의 동상 뒤로 보이는 셀리미예 사원
 
 
술탄의 삶과 죽음이 깃든 건축 역작 

에디르네에서 그리스와 불가리아 국경까지는 10km가 채 되지 않는다. 수많은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지리적 환경으로 도시는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오스만제국에 불행한 소식을 알리는 봉화 역할을 했다. 

오스만제국의 첫 번째 수도였던 부르사(Bursa)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에디르네에 이어 이스탄불, 즉 당시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원 안에 들어온다. 에디르네는 1361년부터 동로마제국의 수도(현 이스탄불)가 정복되는 1453년까지 공식적인 수도였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30년을 더 연장해 1483년까지 수도의 역할을 했다. 이 도시에서 태어난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이곳에서 동로마제국을 점령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오스만제국의 건축 유물은 무수히 많지만 미마르 시난이 지은 셀리미예 사원은 압도적이다. 술탄 셀림 2세의 명령으로 건축에 착수하여 시난의 나이 86세 때인 1574년 완공했으나 셀림 2세의 갑작스런 승하로 1년 뒤인 1575년에 문을 열었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터키에서 열 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공원 잔디밭에는 술탄 메흐메드 2세의 동상과 시난의 동상이 나란히 함께 세워져 있다. 

에디르네를 대표하는 셀리미예 사원과 에스키 사원은 공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이미 세워져 있던 에스키 사원(Eski Cami, Old Mosque)의 실내가 어두웠기에 셀리미예 사원에는 무려 999개나 되는 창문을 만들어 빛이 환하게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높이 43.28m, 지름 31.28m의 사원 돔은 ‘코끼리 발’이라 불리는 지름 6m의 기둥 8개가 받치고 있다. 지진도 견딜 만한 무게중심이다. 사원 실내 입구 앞에는 동그란 표식이 있는데 이는 사원 안 설교자와 예배자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보내는 전달자가 서 있던 자리다. 마이크나 전기가 없던 시절, 사원 안 정원과 사원 밖 정문에도 각각 이런 장치를 마련해 사원 밖에서도 예배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사원의 출입구는 모두 여섯 곳인데 이는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여섯 개의 할 일’을 뜻한다고. 술탄의 삶과 죽음, 그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만큼 얇다. 술탄의 예배장소 뒤에 그가 영면에 든 묘지가 자리한다. 
 
1414년에 세워진 에스키 사원. 문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캘리그래피가 유명하다
1447년에 완공된 우츠 셰레펠리 사원. ‘3개의 발코니’라는 의미다
 
이집트 대리석, 강을 거슬러 오르다

99세에 영면에 든 시난은 477개의 건축물을 남겼다. 81개의 사원과 55개 기도소를 비롯해 다리와 학교 등을 지었다. 이 위대한 건축가는 동양에서 바다와 강, 수로를 거쳐 온 이집트와 사이프러스 대리석을 건축 재료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빛까지 건축에 활용했다. 마침 셀리미예 사원을 방문했을 때, 999개의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빛이 흰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찰나마다 발자국 그림자를 남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원 내부에는 창의 무늬와 문양이 윤슬처럼 반짝인다. 촉감으로는 이집트 대리석을 만지고 시각으로 빛을 감지했다면, 청각으로는 하루 다섯 번 울려 퍼지는 순결한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집트의 대리석이 어떻게 에디르네까지 올 수 있었을까? 마리차강(Maritsa River, Meric Nehri)을 타고 에게해로부터 배들이 거슬러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생된 수로를 통해 다시 에디르네를 휘감아 흐르는 튠자강(Tundzha River)까지 건축 재료를 옮겨 올 수 있었다.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사이프러스섬의 돌들도 이 뱃길을 따라 에디르네로 운반되었다. 

나라의 인프라를 장악할 수 있었던 권력이 건축과 호흡을 맞춘 사례를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정조가 지은 수원화성이 그러하다. 정약용은 거중기를 발명하며 돌의 체감 무게를 십분의 일로 줄여 옮길 수 있었고 수원성은 더 웅장해질 수 있었다. 정약용이 정조의 총애를 듬뿍 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술탄의 총애를 받은 시난의 시대는 이보다 217년이나 앞섰다. 수로는 유사시 술탄의 피난로가 되어 제국의 수도를 벗어날 수 있는 통로로도 활용됐다. 셀리미예 사원 지하에도 작은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가 존재한다. 
 
셀리미예 사원의 내부 모습
 
마호메드 2세가 선전포고를 했던 그곳

에디르네에는 셀리미예 사원 외에도 눈길을 끄는 사원들이 존재한다. ‘오래된 사원’이라는 뜻의 에스키 사원은 셀리미예 사원보다 160년쯤 전 건축물로 일명 캘리그래피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신은 하나다’, ‘신은 위대하다’ 등 단순한 종교적 메시지의 검은색 글씨들이 회화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  

에스키 사원은 1403년에 건축을 시작해 1414년에 완공됐는데 이 사원에서 21살이던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이스탄불, 즉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겠다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성소피아 성당에 갇힌 마지막 황제를 압박해 동로마제국을 정복했다.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역사다. 

또한 1447년 완공된 우츠 셰레펠리 모스크(Uc Serefeli Mosque)는 4개의 첨탑에 3개의 발코니가 있는데 12명의 설교자가 발코니에 각각 오를 수 있지만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설계했다. 이들이 총 12번의 기도를 하게 된다. 4개의 첨탑은 나선 문양의 것, 네모난 타일을 붙인 것 등등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시선을 모은다. 
 
에디르네 마리차 강변에 위치한 랄레자르 레스토랑의 테라스. 에게해와 지중해를 건너온 이집트 대리석이 마리차강을 통해 운반되어 건축 재료로 사용됐다
의과대학과 예배당으로도 이용됐던 복합건축물. 지금은 건강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건강박물관 정원에 있는 우물
 
불확실한 시대의 확실한 존재, 에디르네

실크로드 순례자들은 반드시 에디르네를 통과해야만 유럽으로 갈 수 있었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과거 정복자들도 이스탄불을 정복하기 전에 에디르네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관문도시의 숙명으로 수천년간 전쟁이 이어졌기에 도시의 흥망성쇠는 항상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르네는 젊은 학생들과 여행자들이 붐볐던 도시다. 14세기경 에디르네는 인구 55만여 명의, 대학이 66개나 있었던 교육 도시였다. 주민 825명당 대학이 하나씩 있었던 셈이다. 

지금의 에디르네는 수백년 숨결을 간직한 건축물이 도시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고 길 따라, 강 따라 맛집도 자리잡고 있다. 그들만의 문화를 오롯이 보존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사원에서 만난 예배자들도, 길에서 만난 주민들도, 학교를 오가는 어린 아이들도 행복해 보였다.
 
유대교 교회당(Grand Synagogue of Edirne, Buyuk Sinagogu)에서 출발해 이방인이 많은 여행자 거리(Kaleici), 성벽 안 거리로 산책을 계속 이어갔다. 유대교 교회당은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07년 재건되었는데 지금은 유대인들의 결혼식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1960년대까지 3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이곳에 거주했었다고. 한 편으로는 가톨릭과 정교회 건축물도 자리 잡고 있다.
 
거리를 걸어 보니 동서양을 아우른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목조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에 트라키아(Trakya), 그리스령과 터키령으로 나뉘는 발칸반도 동부 지방 관광청의 신축 청사도 곧 완공될 예정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한가로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생선시장에는 상인들의 흥정이 오갔고, 채소도 알록달록했다. 빵 굽는 냄새를 뚫고 지나가면 선물가게가 즐비하고 그곳에서 터키 양탄자와 스카프를 1만원 이내에 득템할 수 있다. 터키식 커피도 이방인의 지갑을 열게 했다. 그중에서도 아기가 태어나면 40일간 발라 준다는 장미오일이 특히 인기였다. 이 오일을 발라 주면 사후 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도 잘 팔린다고. 

이 거리는 무려 600년의 역사를 지녔다. 길을 잃어 버려도 황홀하련만, 에스키 사원이 골목마다 하늘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나침반이 되어 준다. 드디어 종착지다. 일몰 전에 에스키 사원에 올라 에디르네 풍광을 사진에 담아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에디르네의 유대교 교회당. 터키에서 가장 큰 규모다
성벽 안쪽 거리라고 불리는 여행자 거리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상인들. 오래된 목조 건물이 종종 보인다
 
걷기 좋은 도시를 걷는 재미

에디르네는 맛집, 멋집을 겸비한 걷기 좋은 도시다. 한국어 여행가이드 훌랴(Fulya)가 추천한 음식은 소간과 마른 고추 요리.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만이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라고 했다. 양고기 완자와 요구르트도 크게 낯설지가 않았다. 터키식 커피와 홍차까지 곁들이니 마치 에디르네의 주민이 된 것 같다. 훌랴의 설명에 의하면 에디르네는 땅이 비옥해 해바라기와 밀이 잘 자란다고 한다. 

귀나이 외즈데미르(Gunay Ozdemir) 에디르네 주지사를 만났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에디르네까지 45분이면 연결되는 기찻길이 2020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고속철은 2025년까지 터키 전역에 개통될 예정이라는 소식도 덧붙였다. 이 철로가 완성되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중국 자치주를 연결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실현되는 것이다. 

셀리미예 사원을 소개해 주었던 후세인 외제즈(Huiseyin Ozez) 교수는 에디르네의 경우 유적의 극히 일부분만 발굴된 상태지만, 현재까지 발굴한 유적만으로도 베네치아 유적의 99퍼센트와 맞먹는다고 주장했다. 

▶Edirne Info
 
랄레자르 레스토랑(Lalezar Restaurant)
에디르네 마리차 강변에 위치한 레스토랑. 터키 전통 음식과 피자, 닭고기, 양고기를 추천한다. 
전화: +90 284 223 06 00 
홈페이지: www.lalezaredirne.com
 
하네단 레스토랑(Hanedan Restaurant)
에디르네 툰자 강변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야경이 환상적이다. 생선요리와 호박요리 등이 특별하다. 
전화: +90 284 214 21 22 
홈페이지: www.hanedanedirne.com
 
에디르네 타소달라르 호텔(Edirne Tasodalar Otel) 
셀리미예 사원과 도보로 1분 거리의 호텔로 셀리미예 사원 야경 조망이 가능하다.
전화: +90 284 212 35 29
홈페이지: www.tasodalar.com
 
글 홍경찬  사진 Photographer 이승무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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