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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살이와 앓이 사이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01.31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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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주말에 광주 양림동에 다녀왔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일단 와서 며칠 살아 보라는 백지수표 같은 초대에 달랑 왕복 기차표만 끊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혼자 2박 3일을 살다 왔습니다. 여행의 주제가 ‘양림 살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뭘 했겠습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뒷산 오솔길에 숨어들었습니다. 까치는 분주히 나뭇가지를 나르고, 동백은 활짝, 호랑가시나무는 붉은 열매를 야무지게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면 식탁의 통유리창 풍경을 독점할 수 있었습니다. 70년 전 만들어진 선교사 주택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의 광목 이불커버도, 원목 테이블도 촉감이 좋았습니다. 저녁에는 벽난로 앞에 앉아 무등산 막걸리를 홀짝이며 오랫동안 불이 노는 모양을 응시했습니다. 
 
낮은 낮대로 바빴습니다. 양림동에서 10분만 벗어나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입니다. 오랜만에 고요한 마음으로 예술을 응시했습니다. 점심은 동네 주민들과 셋이서 1만5,000원짜리 닭볶음탕을 배부르게 먹었고, 사진관에서 커피도 얻어 마셨습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양림동에는 스타일리시한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가 부쩍 늘어나 있었습니다. 20분이면 한 바퀴를 돌 만큼 작은 양림동에 뭐가 이렇게도 많은 걸까요. 
 
‘양림 살이’ 후에 찾아온 것은 ‘양림 앓이’였습니다. 여행이 본래 그러한 것이겠지요. 그 앓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여행은 끊임없이 기록되고, 회자되고, 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양림동의 모든 순간을 어루만지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양림동이 있을 겁니다. 고향일 수도 있고, 아직 가 보지 못한 미지의 곳일 수도 있겠지요. 2월 설 연휴에는 내내 끙끙 앓아 왔던 그곳으로 편히 다녀오시길 빕니다. 거기에도 좁은 오솔길이, 분위기 좋은 카페가, 낡은 집이, 가성비 좋은 동네 맛집이 있겠지요. <트래비> 2월호에 담은 것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구상 어느 곳에선가 우리 각자가 앓았던 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트래비> 팀장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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