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데려다준 동화 속 풍경, 일본 호쿠리쿠
기차가 데려다준 동화 속 풍경, 일본 호쿠리쿠
  • 도선미
  • 승인 2018.02.0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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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멀리, 
호쿠리쿠 기차여행
 
기차는 언제나 더 낯설고 매력적인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오래 몸을 실을수록, 멀리 갈수록 그렇다. 
간사이를 벗어나 북쪽으로 조금 더 멀리 달렸다. 
조용하고 그윽한 호쿠리쿠의 풍경을 만났다.
 
동화 속 풍경을 간직한 일본 중부 시라카와고 마을. 두 손을 모은 듯한 독특한 가옥 모양 때문에 합장마을이라 불린다
 

 

호쿠리쿠를 현명하게 여행하는 법
간사이 북쪽, 일본 중부에 속하는 후쿠이현, 도야마현, 이시카와현을 통틀어 호쿠리쿠北陸 지역이라 부른다. 이번 여행에서는 JR 다카야마-호쿠리쿠 관광패스를 이용해 기차를 타고 이 지역을 순회했다. 

AIRLINE 
간사이 IN, 나고야 OUT

일본 중부 지방은 생각보다 가깝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후쿠이시까지는 기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데, 최근 도야마공항, 나고야주부공항에서 서울을 오가는 저가항공 직항편이 생겨 여행하기 훨씬 편해졌다. 간사이로 입국해 도야마 또는 나고야로 출국하면 다시 되돌아올 필요가 없어, 동선도 효율적이다.
 
RAIL PASS 
여러모로 통하는 ‘JR 다카야마-호쿠리쿠 관광패스’ 

오사카 간사이공항역, 교토역, 후쿠이역, 가나자와역, 도야마역, 다카야마역, 게로역, 나고야역까지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기차 패스다. 5일 동안 최대 4개 구간까지 지정석을 이용할 수 있고, 간사이공항-교토 간 고속철도(특급 하루카)와 가나자와-도야마 간 신칸센은 자유석으로 승차 가능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카야마, 시라카와고까지 가는 버스 역시 가나자와역, 다카야마역, 신타카오카역에서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여행 2일 전까지 사전 예매 후, 현지 주요 기차역에서 발권해야 한다. 
가격: 성인 1만4,000엔   
홈페이지: touristpass.jp
 
물을 주제로 삼은 후쿠이시 요코칸 정원
연못 위에 둥실 떠 있는 듯한 본채에서 정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후쿠이 福井
앉아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

교토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비와코 호수를 옆에 끼고 한참을 달렸다. 긴 터널을 통과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창밖의 시골 풍경도 무르익었다. 후쿠이역에 내렸을 땐 이미 오후 4시에 가까웠다. 문을 닫기 전, 서둘러 요코칸(養浩館庭園)으로 향했다.

1656년 지어진 요코칸은 대대로 후쿠이현의 영주였던 마쓰다이라 가문의 별장이다. 지금은 허물어져 후쿠이시청이 된 옛 성에서 겨우 400m 떨어진 거리다. 요코칸은 크고 화려한 정원과는 거리가 멀다. 작은 연못과 후원, 나란히 지은 건물 두 채가 전부라 한 바퀴 빙 둘러보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볼수록 오목조목 아름답다. 작은 목각 상자 속에 든 화과자 같다고나 할까. 작은 정원 안에 서로 다른 풍경을 조화롭게 배치한 감각이 놀랍다. 

요코칸 정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못이다. 별장 본채인 고자노마(御座間)가 연못에 바짝 붙어 있어 둥실 뜬 배처럼 보이고, 연못의 물길은 정원을 휘감아 돌며 여러 개의 시내를 이룬다. 물은 바위와 꽃, 건물 등 정원에 있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제다. 요코칸을 지은 타다마사(森忠政) 마쓰다이라 영주는 처음으로 이 지역에 관개 시설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강줄기를 별장으로 끌어 와 정원에 흐르게 했다. 어찌나 맑은지 먹는 물보다 더 깨끗하다고 할 정도였다. 지금도 요코칸의 물은 계곡물처럼 투명하다.

두 채의 건물을 하나로 합친 본채에는 10여 개의 방이 있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영주의 생활상이 좀 더 생생하게 그려졌다. 맹장지에 그린 세필화, 미닫이 문 위의 란마(欄間) 장식, 가마처럼 생긴 삼나무 목욕탕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고 기품 있다. 사진을 찍느라 부산한 내게 현지 가이드는 서성이지 말고 ‘오쓰키미노마’에 잠깐 앉아 보라고 했다. ‘영주가 달을 본다’는 뜻처럼, 영주가 창밖 풍경을 감상하던 방이다. 과연 앉아 보니 서 있을 땐 몰랐던 창밖 풍경이 단정하게 펼쳐졌다. 삼나무로 만든 구름 모양 창틀 안에는 아까 지나온 정자와 돌탑, 찰랑이는 연못이 한폭에 담겨 있었다. 가을에는 단풍잎이, 여름에는 창포꽃이 이 풍경을 수놓을 것이고, 봄과 겨울에는 매화꽃과 눈송이가 하얗게 흩날릴 것이었다. 자연이라는 화폭에는 어떤 예술 작품도 흉내 낼 수 없는 무수한 변화가 있다. 방금 전만 해도 눈앞에 있던 청둥오리 한 마리가 어느새 화폭을 빠져나갔다.
 
요코칸
오픈: 09:00~16:30(9월 중순~11월 말, 금·토·일요일은 17:30~21:00 야간에도 개장)
주소: 3-11-36 Hoei, Fukui, Fukui Prefecture 910-0004, Japan
찾아가기: 후쿠이역에서 도보 12분
전화: +81 776 21 0489  
입장료: 210엔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가나자와 겐로쿠엔. 가을뿐 아니라 눈 덮인 겨울 풍경도 황홀하다

●가나자와 金澤
우산 쓴 겨울 소나무의 품격

가나자와에는 ‘도시락은 잊어도, 우산은 잊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여름에는 비,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고장이다. 가나자와 기차역에 내린 여행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도 세찬 빗줄기와 우산이다. 알루미늄과 유리로 만든 ‘모테나시(おもてなし), 환대’ 돔은 빈손으로 도착한 여행자들에게 훌륭한 우산이 되어 준다.

가나자와의 대표 명소인 겐로쿠엔(兼六園)의 명물 역시 우산이다. 150년 수령의 거대한 소나무가 새끼줄 우산 ‘유키즈리(雪づり)’를 쓴 모습은 가나자와의 상징과도 같다. 일본의 정원은 대부분 벚꽃철인 봄, 단풍철인 가을에 감상하지만 겐로쿠엔만큼은 바로 이 유키즈리 덕분에 겨울에도 이색 매력을 뽐낸다. 하얗게 눈 덮인 정원과 유키즈리 소나무는 가장 가나자와다운 풍경이다. 처음 보는 소나무 우산에 눈이 휘둥그레진 외국인들에게 문화 해설사인 카토 치카라씨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가나자와의 눈은 수분이 많아서 크고 무겁답니다. 그래서 겨울을 앞두고 11월부터 1달 동안 유키즈리 작업을 해줍니다.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새끼줄로 동여매 우산살처럼 만들어 주는 거죠. 이 소나무는 가라사키마쓰 소나무(唐崎松), 당기송라고 합니다. 여러 그루 같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뿌리가 하나랍니다. 아주 튼튼하고 멋지게 자라난 소나무죠. 이 나무를 보호하는 건 정원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그래서 유키즈리 작업을 앞두고 일찌감치 체력 훈련에 들어간답니다.”

겐로쿠엔은 가나자와 지역을 지배하던 마에다 가문 영주에 의해 1676년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대를 이은 영주들이 200년에 걸쳐 꾸준히 확장, 보완하면서 지금의 훌륭한 정원으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13대 영주였던 마에다 나리야쓰의 역할이 컸다. 그는 독창적인 용수 기술을 사용해 언덕 위에 호수를 만들고, 다양한 꽃과 나무를 가져다 심었다. 150년 전 가라사키에서 소나무 종자를 가져와 호숫가에 처음 심은 사람도 바로 그였다. 

그러나 사람과 나무의 시간은 각기 다르게 흐른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정작 그 나무가 완전하게 자라난 모습을 보지 못한다니, 아이러니다. 마에다 가문의 부귀영화는 사라지고 지금은 소나무가 정원의 주인이 됐다. 그 짙푸르고 늠름한 모습 앞에서 사람의 짧은 청춘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겐로쿠엔
오픈: 08:00~17:00(1월 말~2월 중순에는 야간에도 개장)
주소: 1 Kenrokumachi, Kanazawa, Ishikawa Prefecture 920-0936, Japan  
전화: +81 76 234 3800
입장료: 310엔
*관광순환버스를 이용하면 가나자와의 주요 관광지를 더욱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총 3개의 노선이 있으며, 1일 자유 승차권은 500엔이다. 가나자와역에서 관광순환버스를 타면 겐로쿠엔까지 18분 정도 걸린다. 
 
 
도야마현 미술관에는 현대미술 전시뿐 아니라 옥상 놀이터 등 관람객을 위한 즐길거리가 많다
도야마현 미술관 옥상에서 본 후간 운하 공원의 야경
 
●도야마 富山
미술관, 놀이터가 되다

예술 작품과 공장제 상품, 작가와 관객, 주류와 비주류. 현대미술에서 이들을 구분 짓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미술관도 더 이상 젠체하는 공간이 아니다. 자연, 지역 문화, 체험을 누릴 수 있는 놀이 공간으로 다채롭게 변모하고 있다.

작년 8월 말 전면 개관한 도야마현 미술관(富山県美術館, Toyama Prefectural Museum of Art & Design(TAD))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현대적인 미술관이라고 할 만하다. 3개 층, 5개 전시실로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현대미술 거장들의 회화 작품부터 포스터, 디자인 가구까지 소장품만 1만 점이 넘는다. 마티스, 샤갈, 피카소, 앤디 워홀, 호안 미로, 데이비드 호크니까지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격월마다 바뀌는 소장품 전시를 보기 위해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가구 전시실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안락의자, 안토니오 가우디의 나무 벤치는 천재 건축가들의 또다른 재능을 여실히 보여 준다. 다키구치 슈조 컬렉션도 흥미진진하다. 도야마현 태생의 미술평론가 다키구치 슈조가 뒤샹, 재스퍼 존즈, 쿠사마 야요이, 골드 베르크 같은 유명 예술가로부터 받은 선물, 작품을 소장한 전시실이다. 그중 호안 미로가 그림을 그리고, 다키구치 슈조가 시를 쓴 작품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낙서처럼 자유롭게 쓴 글과 그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마치 두 사람의 순수한 우정을 표현한 듯하다. 미술관의 분위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계단과 2층 복도를 도야마산 삼나무로 감싸서 내 집 마루처럼 정감 있고 아늑하다.

도야마현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만큼 지역의 색채도 최대한 흡수했다. 2층 로비에선 통 유리창을 통해 눈 덮인 다카야마 산봉우리가 보이고, 야외 전시 공간에는 귀여운 백곰 가족 세 마리가 싱긋 웃고 있다. 동물을 주로 조각하는 미사와 아쓰히토의 작품으로, 목각용 조각칼로 통나무를 수천 번 다듬어 완성했다. 곰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맞추면, 오드아이(odd-eye)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쪽 눈은 파랑색, 나머지 한쪽은 초록색이다. 각각 도야마의 깨끗한 물과 푸른 산을 상징한다. 

아이들에겐 미술관이 동네 놀이터다. 컬렉션 전시를 제외하면 모든 공간이 무료로 운영되고,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다. 몸 동작으로 그림을 그리는 3D 애니메이션 코너,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보는 아틀리에가 있고 건물 옥상은 아예 놀이동산이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디자인 조형물을 놀이기구 삼아 신나게 뛰놀 수 있다. 

저녁 무렵 옥상에서 보는 후간 운하의 야경도 눈부시다. 야간 조명이 켜질 때쯤, 미술관 앞 환수 공원을 산책해 보자.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로 꼽힌 환수공원 스타벅스에서 잠시 몸을 녹이는 것도 좋겠다.
 
*르 코르뷔지에│프랑스 건축가. 스위스에서 나고 공부했으며, 유럽 도시 곳곳을 다니며 건축물 연구에 몰입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신조는 그의 합리주의 건축사상을 보여 준다.
 
도야마현 미술관
오픈: 09:30~18:00(매주 수요일 휴관)
주소: 3-20 Kibamachi, Toyama Prefecture 930-0806, Japan
전화: +81 76 431 2711   
입장료: 300엔
*도야마 시티투어버스(구롯토 버스)가 시내의 미술관, 박물관, 공원을 연결한다. 1회 탑승시 200엔, 1일권은 700엔이다. 도야마역에서 도야마현 미술관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린다.
 
글·사진 도선미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일본국토교통성 주부운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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