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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굴개굴 일본 3대 온천, 게로 온천 마을

  • Editor. 도선미
  • 입력 2018.02.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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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카야마 五箇山
낭만적인 겨울 동화의 기억

갓쇼즈쿠리(合掌造り) 마을은 이번 기차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일정이었다. 깊은 산골짜기의 눈 덮인 초가집 마을, 창문에서 새어 나와 푸른 밤공기 속으로 퍼지는 은은한 화롯불. 겨울 여행 사진에서 여러 번 봤던 그 낭만적인 설국의 풍경은 유럽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이노쿠라 갓쇼즈쿠리 마을. 200여 년 전부터 지어진 합장가옥이 이색적이다
 
갓쇼즈쿠리를 번역하면 ‘합장가옥’이다. 특유의 뾰족한 지붕 모양이 합장한 손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붕의 각도를 정삼각형에 가깝게 높이고 두터운 억새로 덮어서 눈이 쌓이지 않도록 한 것이다. 산세가 험준해 깊은 산골짜기가 많고, 겨울에는 폭설이 내리는 일본 중부 지방에 갓쇼즈쿠리 가옥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아이노쿠라(相倉), 스가누마(菅沼), 시라카와고(白川郷) 마을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기차와 신칸센이 모두 지나는 타카오카(高岡)시는 갓쇼즈쿠리 마을로 가기 위한 관문 도시다. JR 타카오카역 또는 신칸센 신타카오카역에서 아이노쿠라, 스가누마, 시라카와고를 순환하는 세계문화유산 버스가 출발한다. 신타카오카역에서 세계문화유산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 산길을 달려 아이노쿠라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500m 정도 걸어 들어가니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마을이 나타났다. 

주민 50명 남짓인 아이노쿠라에는 200년 전부터 100년 전 사이 지어진 갓쇼즈쿠리 가옥이 15채 남아 있다. 두께가 70cm에 달하는 억새 지붕은 약 20년마다 한 번씩 교체된다. 집을 짓고 지붕을 이는 모든 과정에는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동참한다. 어렵게 지은 집이어서일까. 집집마다 유스케, 조요몬, 소시치, 산고로처럼 사람 이름으로 부른다. 그중 ‘유스케’는 관광객들에게 유료로 개방한 집이다. 집 안에 들어선 방문객들은 우선 일본식 전통 화로 ‘이로리(いろり)’에 둘러앉아 집주인 이케하라씨가 주는 차를 마신다.
 
마을 이장인 이케하라씨의 집은 1868년 지은 전형적인 갓쇼즈쿠리 가옥이다. 에도시대까지는 양잠이나 화약 제조, 종이 제작을 했지만, 지금은 갓쇼즈쿠리 건축 과정을 보여 주는 전시실로 바뀌었다. 유스케가 아니라도 아이노쿠라에는 찻집이나 음식점, 민박을 겸한 가옥이 많다. 주차장 뒤편 언덕 위 전망대도 방문해 보자. 동화 같은 마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노쿠라 갓쇼즈쿠리 마을
주소: Ainokura, Nanto 939-1915, Toyama Prefecture, Japan
고카야마관광협회 +81 763 66 2468
스가누마와 시와카라고는 아이노쿠라에서 세계문화유산 버스로 각각 15분, 1시간 거리다. 아이노쿠라에 비해 스가누마는 규모가 작고, 시와카라고는 규모도 크지만 관광객도 많은 편이다.
 
세계문화유산 버스
운행시간: 08:10~16:00
타카오카역 출발, 신타카오카역 경유
요금: 편도 1,800엔(JR 호쿠리쿠 패스 이용시 무료 탑승) 
 
조용하게 산책하기 좋은 게로 온천 거리. 개구리 모양의 맨홀 뚜껑을 찾아보자
100만 달러를 쥔 복고양이 ‘제임스 고로베 주니어 10세’

●게로 下呂
개굴개굴 마을에서 아침 산책을

아침잠이 많은 나도 게로 온천 마을에선 일찍 눈이 떠졌다. 산에서 내려온 상쾌한 아침 공기를 놓치기가 싫어서 9시도 안 된 이른 시각에 거리로 나섰다. 마을은 간밤에 내린 비에 여전히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산기슭에선 물안개가 솔솔 피어올랐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에도시대의 유학자였던 하야시 라잔은 효고현의 아리마 온천, 군마현의 구사쓰 온천, 그리고 게로 온천을 일본 3대 온천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훨씬 전에 이 온천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으니, 승려이자 시인인 반리 슈쿠였다. 그는 “게로 온천이야말로 일본 최고의 온천”이라고 극찬했다. 알칼리성 온천인 게로 온천은 실제로 피부염과 류머티즘,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에 약간의 점성이 있어 목욕할 때 촉감이 부드럽고, 그래서 ‘미인탕’으로 불린다.

게로 온천은 원천이 하나뿐이다. 50개가 넘는 마을 료칸이 모두 게로역 앞 원천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데, 소중한 온천수를 아끼고 보존하기 위해서다. 료칸 주인은 물을 쓴 만큼 돈을 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은 원천 급탕소에서 원하는 만큼 온천수를 사 갈 수 있다. 한번 목욕하는 데 100엔이면 충분하니, 이른 새벽이면 목욕용 온천수를 받아 가려는 주민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원천에서 게로 다리로 가는 길에는 거대한 마네키네코(まねきねこ), 복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파란색 눈을 한 이 고양이의 이름은 ‘제임스 고로베 주니어 10세’. 믿거나 말거나지만 메이지유신 때 주인을 따라 미국에 건너간 고양이 제임스 고로베의 후손이란다. 백만 달러를 손에 쥔 이 고양이는 부의 상징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게로 다리를 건너 개울 왼쪽으로 이어지는 골목 일대가 바로 게로 온천거리다. 족욕을 하며 온천 계란을 넣은 아이스크림을 맛보거나,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부리기 좋다. 백로와 개구리 모양을 한 맨홀 뚜껑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다. 백로와 개구리는 게로 온천의 상징이다. 전설에 따르면 다리를 다친 백로가 앉았던 자리에서 온천수가 솟았고, 온천수가 닿자 상처가 씻은 듯 나았다. 이때부터 게로 온천은 일본 전역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고. ‘게로게로’를 우리말로 풀면 ‘개굴개굴’ 정도의 뜻이 된다.  

게로 마을의 마스코트라면 귀여운 사루보보(さるぼぼ)도 빼놓을 수 없다. 아기 원숭이인 사루보보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기원하며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는 인형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형이라는데, 히다 지역에는 그 풍습이 아직 남아 있어 어디서든 이 귀여운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다. 빨간색은 순산과 인연, 노란색은 재물운, 파란색은 학업운을 뜻한다고. 게로 마을에는 수백 개의 사루보보 인형을 모신 신사가 있고 사루보보 맥주도 판다.
 
Tip 1 | 게로 온천거리는 게로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다. 가는 길에 ‘분천탕’도 들러 보자. 히다 강가에 만든 자연 노천탕으로 남녀 혼탕이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알몸으로 온천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는데, 지금은 수영복을 입어야만 입욕이 가능하다. 
 
Tip 2 | 시내 편의점이나 선물 가게에서 온천 패스를 구입할 수 있다. 게로 마을의 26개 온천탕 중 3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로, 가격은 1,200엔이다.
 
기후성 옆 나가라강 인근의 ‘가와라마치 이즈모야’. 은어 코스 요리로 유명하다
기후현 가와마치 거리에서 만난 기모노 차림의 소녀들
전망대에서는 기후시를 넘어 멀리 나고야시까지 내다보인다

●기후 岐阜
천하통일을 꿈꾸던 그 자리에서

게로역에서 마지막 여행지인 기후역으로 향했다. 기차는 히다강을 따라 산과 강을 부지런히 헤치며 달렸다. 기후시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은어 요리 전문점 ‘가와라마치 이즈모야(いづもや)’. 나가라강에서 잡은 은어로 다채로운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곳인데, 튀김과 구이는 물론이고 은어 국수, 은어죽, 은어를 통째로 올린 피자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다.
 
점심 특선으로 나온 은어죽 코스 요리는 하나하나가 만족스러웠다. 은어 스프레드와 그리시니(Grissini), 은어구이 초밥과 튀김, 은어죽까지. 비리지 않을까 했던 걱정과는 달리 모두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다.
 
시내를 흐르는 강에 은어가 산다는 사실은 기후시가 얼마나 깨끗한 도시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나가라강에서는 지금도 1,300년 전의 전통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가마우지로 은어를 잡는다.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따뜻한 계절에는 강가에서 은어를 낚는 낚시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식당에서 나와 몇 걸음 걸으니, 산꼭대기에 우뚝 선 기후성(岐阜城)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년)에게 오사카성이 있었다면, 오다 노부나가(1534~1582년)*에게는 기후성이 있었다. 이 성은 해발 329m의 긴카잔산 꼭대기에 세워져 더 높고 웅장해 보인다. 오다 노부나가는 1567년 당시 이나바산성이었던 현재의 기후성을 점령하고 천하통일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는 맹장인 동시에 혁신가였다. 기후 성읍에 자유시장 ‘낙시낙좌(樂市樂座)’를 설치한 덕분에 도시가 크게 번성했다. 포르투갈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당시 기후 시내를 보며 ‘바빌론의 활기찬 모습을 보는 듯했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난공불락의 기후성도 이제는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케이블카 승차장에서 내려 8분 정도 계단을 오르면 천수각에 닿는다. 천수각을 향해 걷다가 무사 복장을 한 사내를 만났다.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 흔쾌하게 포즈를 취해 준다. 농담으로 “혹시 오다 노부나가이신가요?”라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매일 오다 노부나가로 변장해 사람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란다. 그는 보름달이 뜬 기후성의 야경 사진을 기념으로 건네주고는 다른 관광객들 사이로 사라졌다.

오다 노부나가가 서 있던 그 자리에서 기후 시내를 굽어보고 싶었지만 비행기 시간이 촉박했다. 아쉬운 마음을 품고 천수각 대신 하산 하는 길에 위치한 전망대에 들렀다. 날이 맑아서 멀리 나고야 시내까지 시야가 탁 트였다. 드넓은 대지와 구비구비 흐르는 강줄기도 한눈에 들어왔다. 천하를 거머쥐려는 야심은 대체 어디서 솟아나는 걸까. 천하는커녕 눈에 보이는 세상 풍경을 주워 담기도 범인에게는 가슴 벅찬 일인데 말이다. 물론 이제는 영웅보다는 시인이, 호령보다는 위로가 더 통하는 세상이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중세 일본의 삼영걸이라 불리는 인물. 전국시대를 평정하며 세력을 넓히다 1582년, 중신이었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끝내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자살했다.
 
기후성
오픈: 09:30~16:30
주소: 18, Gifu, Gifu Prefecture 500-0000, Japan
입장료:  200엔, 케이블카 왕복 1,050엔(09:00~17:00)
기후역에서 N80 다카토미행 버스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글·사진 도선미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일본국토교통성 주부운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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