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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를 닮은 툴루즈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8.02.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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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에 대하여
당신은 분명 툴루즈에 온 적이 있다. 당신이 말한 따뜻함은 분명 툴루즈의 것이었을 테다. 빨간 지붕 위로 내려앉은 붉은 노을을 홀로 바라보고 있자니 당신이 생각나 서럽다.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다본 툴루즈 풍경. 필터를 씌운 것처럼 도시 전체가 붉다ⓟ문미화
툴루즈 여행은 카피톨 광장에서 시작한다. 주말이면 플리 마켓 등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샤를마뉴 대제가 세르냉 성인의 유골을 기증한 생 세르넹 성당
자코뱅 수도원은 도미니크 수도회가 지은 최초의 수도원이다
퐁 네프 다리에서 바라본 가론강의 야경

●장미 한 송이를 전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툴루즈에 다시 왔다. 툴루즈는 3년 전 남프랑스 기차 여행에서 가장 애정한 도시였다. 툴루즈는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 많아 ‘장미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애칭으로도 불린다. 마치 카메라에 필터라도 씌운 것처럼 도시 전체가 붉다. 오래 전 가론(Garonne)강 기슭에서 채취한 연한 핑크빛 돌을 건물을 짓는 데에 사용하면서부터다. 이후 장미의 도시라 불리며 툴루즈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벽돌 공장에서는 아예 더욱 붉은 벽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툴루즈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붉은 색이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참고로 붉은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려면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이 훌륭한 뷰 포인트다(옥상에는 최근 레스토랑도 오픈했다). 

툴루즈는 프랑스에서 파리, 마르세유, 리옹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지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카피톨 광장(Place du Capitole)부터 생 세르넹(Basilique St-Sernin) 성당, 퐁 네프 다리, 자코뱅 수도원, 아세자 저택까지 모두 하루 안에, 그것도 도보로 둘러볼 수 있다.
 
툴루즈 여행의 중심은 카피톨 광장에서 시작한다. 광장의 정면에 자리한 시청사는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안으로 잠시 들어가 보면 기품 있는 장식들이 멋을 더한다. 1층 첫 번째 방 일러스트룸(La Salle des Illustres)은 가장 큰 규모로 과거 파티 공간으로 사용됐다. 그림의 방은 결혼식을 위해 사용했던 방이다. 프랑스 화가  폴 장 제르베(Paul-Jean Gervais)가 ‘사랑’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이 벽과 천장에 가득하다. 실제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일도 많단다. 툴루즈 시민만 이용할 수 있지만, 6월처럼 날이 좋은 계절에는 주말 하루에만 30쌍이 이곳에서 혼인 서약을 올리기도 한다고. 

툴루즈 여행의 낭만은 가론강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센강, 론강, 루아르강과 함께 프랑스 4대강으로 꼽히는 강이다. 툴루즈 풍경을 잔잔히 수놓는다. 특히 은은하게 비추는 노란 조명이 닿으면 퐁 네프 다리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 낸다. 다리 아래로는 서울의 청계천처럼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 여름밤이면 더위를 잊기 위해 맥주나 와인을 들고 모인 젊은이들로 활기를 더한다. 
 
 
에어버스 본사에는 비행기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에어로스코피아’ 항공 박물관이 있다. 특히 럭셔리 항공기의 대명사 A380 투어가 인기다
툴루즈에 있는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붉은 색감의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A380을 품은 툴루즈 

질문 하나. 하늘 위의 호텔이라 불리는 A380 비행기 한 대 값이 얼마인지 궁금해한 적 있는가. 전 세계 하늘길을 누비는 에어버스의 본사가 툴루즈에 있다. 지난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에어버스 본사는 라이트형제가 처음 발명한 비행기부터 현대 최신 기술을 적용한 초대형 항공기, 전투기까지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역사와 기술, 지식을 총정리한 ‘에어로스코피아(Aeroscopia)’ 항공 박물관을 2년 전 오픈했다. 

하지만 이보다 흥미로운 건 직접 A380 한 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들을 수 있는 프라이빗 투어다. 물론 요즘은 가장 최신 항공기인 A350이 뜨겁지만, 항공업계 럭셔리 항공기의 대명사인 A380을 조립하고 있는 공장을 살펴볼 수 있다(기술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사진촬영은 철저히 금지돼 있다). 가이드를 만나자마자 물었다. 그래서 대체 A380은 얼마입니까?라고.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약 4억7,000만 달러, 그러니까 약 5,000억원에 달하는 값이다. 깜찍하게도 몇 대를 주문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흥정은 가능하단다. 에어버스의 최대 고객사는 싱가포르항공이고, A380을 가장 많이 주문한 항공사는 중동의 큰손 에미레이트항공이다. 기체 길이만 50m 이상인데 항공사의 정책이나 노선에 따라 수용인원은 최소 400명에서 최대 600명까지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A380은 지난해 11월 열 살 생일을 기념했다. 

비행기의 모든 것이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에어버스는 독일, 영국, 스페인 등의 합작 회사로 각국에서 생산 과정을 분담한다. 영국과 스페인에서 꼬리와 날개 등 기체를 만들고 프랑스에서 조립하며 독일에서 페인팅과 인테리어를 마무리하는 식이다.
 
툴루즈에서 A380을 조립하는 데에는 약 4개월이 걸린다. 날개 하나에만 볼트 2만개가 필요하다고. 툴루즈에서는 최대 8대까지 조립이 가능하다. 조립을 마친 A380은 꼬리에 녹색 딱지만 붙인 채 독일 함부르크로 날아가 외관 페인팅과 기내 인테리어를 진행한다. 이 과정도 약 3~4개월 소요된다. 그 후 엔진이나 기술 등을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치고 문제가 없다면 고객사에 배달된다. 에어버스에 다녀오고 나니 비행기만 보면 툴루즈가 떠오른다. 말랑말랑한 감성을 가진 붉은 도시에 의외의 반전 매력이 숨어 있었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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