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파리 고성의 낮과 밤
겨울 파리 고성의 낮과 밤
  • 신중숙
  • 승인 2018.02.0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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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ace of Winter
겨울 낮의 성(城) vs 겨울 밤의 성
 
이번 파리 겨울 여행이 내 얘기 같지 않고 남의 얘기만 같았던 건 바로 지나칠 정도로 호사스러운 성 때문이었다. 왕권을 신성시하여 왕이 살았던 궁 안에서의 활동이 현재에도 한정적인 동양과는 달리 프랑스의 성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선 다채로운 액티비티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잠시나마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허용된다. 
 
보-르-비콩트성은 베르사유 궁전의 원형이 되었다
성의 내부는 니콜라 푸케가 수집했던 그림, 조각, 타피스리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이었던 보-르-비콩트성 
 

●베르사유가 지닌 웅장함의 원형

파리를 에워싼 외곽 지역에는 수많은 성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성은 당연히 베르사유 궁전이겠지만 베르사유의 원형이 되었던 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파리에서 50km 떨어진 맹시(Maincy)에 루이 14세 때의 재무상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는 보-르-비콩트성(Chateau de Vaux-le-Vicomte)을 건설했다. 푸케는 성의 부지를 1641년에 구입했고 1661년 완공했다. 보-르-비콩트성은 당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프랑스 최고 예술가들의 합작품이다.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 화가 샤를 르브룅(Charles Lebrun), 조경 예술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이 웅장하고 휘황한 성을 만들었다. 당시의 모든 재력가와 권력자가 부러워했던 대단한 성은 루이 14세 프랑스에서 유행한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건축 스타일의 원형으로 당대 건축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 
 
푸케의 성은 프랑스 문화와 사회의 중심지가 됐다. 푸케는 이곳에서 루이 14세를 위한 성대한 연회를 열었는데 바로 이것이 루이 14세의 질투와 화를 불러일으켰다. 독직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니콜라 푸케는 국외 추방을 선고 받았으나 루이 14세는 푸케에게 종신형을 내렸다. 푸케가 정부의 돈을 횡령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이 14세는 보-르-비콩트성을 지었던 3인방, 루이 르 보, 샤를 르브룅, 앙드레 르 노트르를 불러 베르사유 성을 짓게 했다. 

보-르-비콩트성은 여러 주인을 거쳐 1875년 경매를 통해 알프레드 소미에(Alfred Sommier)에게 넘어갔다. 알프레드 소미에와 후손들은 보-르-비콩트성이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복원에 힘썼다. 현재에도 소미에 가문의 후손인 비기에(Viguier) 가문이 성을 관리한다. 보-르-비콩트성은 1965년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역사 기념물이 되었으며 1968년부터 일반 방문자에게도 개방됐다. 

언제나 ‘성은 박물관의 또 다른 이름’으로만 여겼던 내게 이번 여행에서 보-르-비콩트성을 방문했던 건 평생 기억될 역대급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성주의 초대를 받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곱게 꾸민 성의 곳곳을 함께 돌아보고 성 안의 주요 시설을 성주의 어린시절 기억과 프랑스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보는 특별한 가이드를 받았다. 그리고 꿈같은 만찬까지. 여행을 하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게 이렇게나 행복할 줄이야. 처음에는 요상한 행복감에 도취해 성 안을 활보하다가 문득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푸케도 그랬겠지. 이 아름다운 성을 혼자만 보기는 아까우니 사람들을 초대해 자랑하고, 왕까지 초대해 과시하다 참변을 당했겠지. 그리고 그 성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나처럼 감격에 겨워 호들갑을 떨며 성주에게 선택받은 우월감을 이리저리 자랑했겠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 다를 것이 없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다행히도 이 근사한 이벤트는 성주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성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레 샤르미유(Les Charmilles)에서는 조경 예술가 앙드레 르 노트르가 조성한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잊지 못할 만찬을 즐길 수 있다. 일정은 웹사이트에서 확인해야 하며 2018년은 5월5일부터 10월6일 토요일 저녁에 예약을 받는다. 5월에서 10월 보-르-비콩트성에서는 토요일 저녁마다 촛불 축제(Soiree aux chandelles)가 열리기 때문이다. 디너 코스의 가격은 59.50유로부터. 보다 캐주얼한 경험을 원한다면 셀프서비스 레스토랑 르 르레 드 레퀴뢰유(Le Relais de l’Ecureuil)나 샴페인 바, 피크닉 등을 신청해 일행들과 오붓한 성에서의 한때를 만끽하면 된다. 
 
보-르-비콩트성 찾아가기
파리 동역(Gare de L’Est)에서 베르뇌유 레땅(Gare Verneuil l’Etang)역까지 35분, 샤토 버스로 갈아타면 성 앞에 정차한다. 총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 
홈페이지: www.vaux-le-vicomte.com
 
베르사유 거울의 방
베르사유 궁전 의 작품들은 고개를 들어야만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했고 자연광을 무시하고 작품 속 루이 14세에게서만 빛이 나오는 듯하게 연출했다고 
파이프 오르간과 화려한 장식의 왕실 예배당
베르사유 궁의 모든 장식은 ‘절대왕정’을 의미한다
미로처럼 연결된 왕의 아파트

●당시 서민에겐 재앙, 현재의 관광객에게는 축복 

프랑스에서 가장 이름 난 성은 누가 뭐래도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일 것이다. 원래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3세가 1623년에 사냥을 위해 만든 여름 별장으로 건설한 것을 루이 14세가 지금의 호화찬란한 궁으로 변모시켰다.
 
푸케의 성에 대한 질투심으로 만들어진 만큼 왕의 궁전은 더 웅장해야만 했다. 만리장성이며 피라미드며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세계의 유적지가 그러하듯 베르사유 궁전 역시 태양왕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건설에는 무려 3만6,000여 명의 인부가 매년 동원됐다.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와 왕실 가족들이 거주했고 1789년 혁명과 함께 왕실이 강제로 파리로 되돌아갈 때까지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의 구체제를 말하는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베르사이유 궁의 극에 달한 사치와 향락 생활은 왕의 아파트(Grands Appartements du Roi)에서 벌어졌다. 미로처럼 연결된 왕과 왕비의 주거 공간과 각각의 이름을 가진 6개의 살롱과 리셉션 역할을 했던 거울의 방까지, 지동설에 따라 국왕의 상징인 태양과 주변의 행성처럼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공간을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 주는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은 벽과 천장이 거울로 된 길이 73m의 방이다. 너비 10.4m, 높이 13m의 스펙만으로도 ‘억’ 소리가 난다. 루이 14세가 친정을 한 17년을 기념하고자 정원을 향해 17개의 창문을, 반대편 벽에는 17개의 거울을 배열했는데 이 방에만 578개의 거울을 사용했다. 정원과 대운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루이 14세가 기상 후 미사를 드리러 가면서 이 방을 지나갔다고 한다. 을씨년스럽게 비와 눈과 우박이 내리는 창밖 풍경이 극도로 사치스러운 거울의 방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파티의 장면과 겹쳐지며 입맛이 씁쓸했다. 

예전에 베르사유 궁전이 한 사람과 그의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이제 이 성은 그 자체가 전 세계의 관광객을 위한 놀이터이자 테마파크다. 가브리엘이 설계했으며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뜨의 결혼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던 오페라(Opera)는 연중 끊이지 않는 공연 스케줄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루이 14세가 죽기 전 완공된 왕실 예배당(Royal Chapel of the Chateau)은 왕이 매일 아침 새벽 미사에 참석했고 프랑스 왕자들의 세례식과 루이 15, 16, 18세 등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다. 이 왕실 예배당에도 뮤지컬 스케줄이 빼곡하다.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정원에는 ‘겨울여행(Voyage d’hiver)’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현대 예술가 17명의 세계관, 감수성, 시(詩)를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감상하는 특별전으로 추위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베르사유 궁전 찾아가기
RER C라인을 타고 베르사유 리브고슈(Versailles Rive Gauche)에서 하차. 
홈페이지: www.chateauversailles.fr 
 
글·사진 신중숙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 관광청 kr.france.fr 파리 일드프랑스 관광청 www.visitparisreg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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