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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친근한 저장성 여행

  • Editor. 김진
  • 입력 2018.03.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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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과 역사의 숨결 속으로
 
대륙인의 기세는 거대한 자연에서 비롯된 건가 싶다. 
아찔한 잔도는 끝없이 이어지고 
폭포의 시작점은 까마득하기만 했다.
 
신선거의 백미, 관음봉을 보기 위해서는 남천교를 건너야만 한다. 협곡을 연결하는 다리의 길이는 120m에 이른다 
 
중국 양쯔강 하구, 저장(浙江, 절강성)에 대한 이야기다. 상하이에서 세 시간 떨어진 닝보(寧波, 영파)는 당나라로 향한 거점 지역이라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은 한편, 펑화(奉化, 봉화)는 우리가 아는 장제스의 발자취로 가득하지만 관광지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 여행이 낯설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진 까닭이다. 저장성 이곳저곳에는 익숙한 역사와 따스한 인간미가 묻어 있었다.
 
 
희뿌연 산안개 속에 자태를 드러낸 관음봉은 신비롭다. 바라보노라면 마음속이 저절로 비워지는 기분이다
거대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신선거는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신선거 神仙居
신선의 거처에서 그저 감탄사만

신선거(神仙居)는 북송의 진송 황제가 수려한 산수를 보고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 세계 어디든 빼어난 경치는 그만큼 곁을 쉽게 주지 않는 법. 신선거로 가는 길 역시 녹록치 않았다. 상하이에서 신선거까지는 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데만 일주일이 꼬박 걸리는 중국에서 3시간 정도는 옆집 놀러 가는 수준이라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동했다. 상하이가 등 뒤로 서서히 멀어지면 세계 최장(35.7km)의 해상대교인 항저우 대교를 건너게 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개통한 항저우 대교는 상하이와 닝보를 연결해 기존에 6시간이 걸리던 거리를 2시간으로 단축했다. 차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몇 번이나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도 아직 다리 위다. 왜 이리 오래 걸리나 했더니 중국의 고속도로에서 밤 10시 이후엔 시속 80km가 최대 속도란다.

‘태산이 높다 하되…’라는 시 한 소절을 읊조리지 않더라도 신선거에서는 “와!” “너무 멋있다!” 정도의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런데 신선은 왜 이리도 높은 곳에서만 사는 걸까? 웅장한 풍광에 압도되면서도 까마득한 높이에 한숨이 나온다. 신선거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두 다리로 걸어 올라가거나 케이블카를 타는 것. 산을 좀 탄다 하는 사람도 신선거에 걸어 오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가파른 계단을 세 시간 넘게 올라야 한다고 하니, 아무리 신선이라도 구름을 탔을 게 분명하다. 갈 길이 깜깜하기만 한데, 구세주처럼 케이블카가 나타났다. 
 
신선거는 워낙 거대해서 케이블카로 이동하며 풍광을 바라보기 좋다
신선거 어느 찻집. 빼곡이 적혀 매달린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들
천층병은 해초와 계란을 넣어 만들어 담백하고 건강에 좋다
아찔한 절벽은 잔도로 이어져 있다 
 
 
신선거는 산이라기보다는 지면에서 90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절벽의 집합체에 가깝다. 아찔한 절벽의 허리쯤 되는 곳에는 잔도(棧道)가 벨트처럼 빙 둘러 설치돼 있다. 잔도는 절벽을 깎아 낸 길이 아니라 가로장(bar)처럼 길을 이어 붙인 것이니 사실은 허공에 붕 떠 있는 형태다. 그러니까 잔도가 무너지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철근을 박고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길이니까. 그러나 철근 울타리가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몸을 기대거나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은 길이지만 울타리에서 최대한 멀어져서 벼랑에 몸을 밀착해 쭉 따라 걸었다. 걷는 내내 등골이 오싹하다. 발밑에는 여전히 산과 협곡이, 머리 위에는 기울어진 바위가 시선에 닿는다. 잔도는 북관대에서 시작해 동관대, 중관대까지 여러 봉우리를 지그재그로 말아 돌아 또 다른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연결된다. 

사실 높이로만 보자면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는 흔하다. 그러나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은 봉우리를 형성한 것은 신선거만이 가진 신비하고 웅장한 풍광이다. 봉우리들은 각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다. 

협곡을 두고 서로 연결된 형태인데, 그 협곡이 깊어 별개로 보일 뿐이다. 규모도 형태도 다양한 봉우리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남천교(南天橋)에 다다른다. 길이가 120m나 되는 이 출렁다리는 높이가 100m가 넘는 협곡을 연결한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말 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다리를 툭 치고 가면 다리가 출렁거리니, 신선거에선 뭐 하나 아찔하지 않은 게 없다.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잔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신선거의 백미, 관음봉(觀音峰)(높이 919m)이다. 관세음보살이 합장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해 이름 붙여진 관음봉은 희뿌연 안개 속에서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비현실적인 장면 앞에서 “하아…” 하는 가느다란 감탄사만 입에서 새어 나왔다. 실루엣이 어렴풋한 산봉우리가 겹겹을 이뤄 거대한 병풍처럼 보이는 게 꼭 관세음보살을 에워싼 형상이다. 더군다나 안개 때문에 거리감이 모호하고 현실 감각도 무뎌지는 기분이다. 어떤 이는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대고, 또 어떤 이는 절벽 쪽에 붙어 앉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여기서는 누구든 그렇다. 봉우리가 된 관세음보살은 저기 까마득한 곳에 있지만, 중생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줄 것만 같다. 
 
선녀가 살았을 것 같은 천장암 폭포와 연못에는 무지개가 뭉게뭉게 떠올랐다 
중국 옛 마을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장씨고거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연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음악에 빠져든다
장제스가 태어난 옥태염포 
 
 
●설두산 雪窦山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우리나라 한라산과 천지연폭포처럼, 신선거와 설두산은 저장성을 대표하는 쌍두마차다. 신선거가 직선적인 바위들로 이루어져 육중하고 단단한 느낌이라면, 설두산(雪窦山)은 폭포와 계곡, 연못이 많아 좀 더 푸근하다. 

설두산의 ‘두’는 머리 두(頭)가 아닌 ‘구멍 두.’ 자를 쓰는데, 우윳빛(雪)의 맑은 샘물이 날마다 흘러나오는 구멍.이라는 뜻을 가졌다. 설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무난하고, 산중 부는 바람에 대나무 숲이 서걱대는 소리가 시원하다. 설두산은 15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숨어 있는, 그야말로 폭포의 천국이다. 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쯤, 정상 가까이 다다라 모노레일을 탈 수 있었다. 

설두산의 진면목은 천장암(千丈岩) 폭포에서 정점을 찍는다. 190m가 조금 못 되는 천장암 폭포는 고개를 위로 완전히 쳐들어야만 아스라한 시작점이 보인다. 엄청난 속도로 하강하는 물길은 절벽에서 연못으로 수직으로 꽂힌다. 공중으로 흩어진 물방울들은 초록빛 연못 위에다 살포시 무지개를 걸어 놓았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어깨에 걸치고 노닐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이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묘고대(妙高臺)로 향했다. 묘고, 그러니까 ‘오묘한妙’ 경치를 자랑하는 ‘높은高’ 건물이라는 뜻이다. 원래 사찰이 있던 곳이었지만 명당이라는 점을 눈치 챈 장제스(蔣介石, 장개석)는 이 건물을 별장으로 사용했다.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터는 평탄하고 전망이 빼어나 별장 자리로는 이만한 데가 없을 듯싶다. 

저장성의 펑화(奉化, 봉화시) 시커우(溪口, 계구)는 장제스의 고향이다. ‘계곡의 입’이라는 의미처럼 시커우는 수많은 계곡과 강이 휘감고 있다. 그중에서도 장제스의 발자취가 특히나 알차게 모여 있는 곳은 장씨고거(蔣氏故居)다. 대대로 장제스와 후손들이 살았던, 600년 장씨의 역사가 서린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옥태염포(玉泰鹽鋪)는 장제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운영하던 소금가게로, 바로 이곳에서 장제스가 태어났다. 장씨고거는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장제스와 대립을 이뤘던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이 장제스의 생가와 이 지역의 건축물을 파괴하지 말라는 명령을 했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강을 따라 1km 정도로 쭉 늘어선 거리는 보존 상태가 생각보다 좋다. 중화민국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과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초로의 남자, 붉은 천으로 머리를 가린 자전거 수레는 끊임없이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가게에서는 화덕에서 천층병(千層餠)이라는 과자를 구워 낸다. 해초와 밀가루, 계란을 치대어 식물성 기름으로만 굽는다는 천층병의 맛은 고소하고 담백하다. 
 
1 설두사의 불상은 황금빛이라 멀리서도 눈에 띈다  2 설두사를 찍으려는데 난데없이 뛰어든 아이가 귀여워서 찰칵  3 길거리에서 뜨끈뜨끈한 옥수수와 감자, 토란을 맛보는 것도 저장성 여행의 즐거움이다
 
 
한편 문창각(文昌閣)은 아름다운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장제스와 그의 마지막 부인이자 타이완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남은 쑹메이링(宋美齡, 송미령)이 함께 지냈던 곳이다. 중국 역사에 정통한 일행이 장제스와 여인들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냈다. 중국 역사를 뒤흔든 송씨 세 자매-돈을 사랑한 여자(송애령, 공상희의 부인), 조국을 사랑한 여자(송경령, 쑨원의 부인), 권력을 사랑한 여자(송미령, 장제스의 부인)-는 동상이 되어 강가에 나란히 서 있다. 

설두산에서 이동하는 중에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불상이 눈에 띈다. 설두사(雪窦寺)는 중국 5대 불교 사찰 중 하나로 초입에 자리 잡은 세계 최대 규모(높이 57.74m, 청동 500여 톤)의 미륵대불에서 이미 압도된다. 1,7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고찰은 최근에 복원돼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불상이든 대웅전이든 워낙 거대해서 사찰이라기보다는 궁궐에 가깝다. 미륵불상은 한없이 태평스러운 표정이다. 불상으로 다가가려면 까마득한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을 택했다. 대웅전 앞에서 불자들은 향을 피우며 도솔천에서 왕생할 수 있는 방도를 빌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이긴 하지만, 고색창연한 천년고찰의 흔적을 느낄 수가 없어 좀 아쉬웠다. 부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중생이 만든 작품은 자족自足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카메라 앞에서 해맑게 포즈를 취하는 꼬마들이 황금 불상보다도 더 순수하게 와 닿은 건. 
 
▶TRAVEL INFO 저장성
 
WEATHER
아열대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큰 추위는 없지만, 신선거는 안개와 비가 잦다. 산행 중에는 방수 기능이 있는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AIRLINE
신선거, 설두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하이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편하다. 항저우를 거쳐도 되지만 상하이에서의 항공편이 더 많다. 

SCENE
신선거와 설두산 둘 다 중국 5A급 풍경명승구(風景名勝區)다. 중국은 자연 자원의 가치에 따라 1A부터 5A까지 등급을 매겨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5A급이면 보존 가치가 최고 등급인 곳을 말한다. 신선거나 설두산 모두 관광시설이 완료된 것은 4~5년 전으로, 중국 내에서도 덜 알려진 관광지지만 산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STOP-OVER
상하이에서의 시간여행
칠보노가(七宝老街)

상하이를 거쳐 가는 일정이라면, 오랜 수상마을 칠보노가에 가 보자. 작은 수로에는 소박한 나룻배가 떠다니고 강의 양쪽에 밀집한 식당과 집, 가게들이 수십년 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현대적인 상하이 시내와는 확연히 다르다. 취두부, 달콤한 과일꼬치, 향신료로 뒤덮인 족발, 속이 알찬 만두, 재료를 알 수도 없는 기묘한 음식까지 온갖 먹을거리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강가에 늘어선 집들은 시간에 바랜 듯한 멋이 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잇츠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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